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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중남미로 떠나볼까] 인종차별 없고 일한 만큼 보상 받아 

언어가 가장 큰 장벽 ... 비싼 집값·물가·교육비도 흠 


▎브라질 기업들의 점심시간은 12~2시까지로 여유롭다.
브라질 국민들은 연말이 되면 대개 가장 먼저 새해 달력을 구입한다. 이듬해 휴가 계획을 짜기 위해서다. 브라질은 소득에 상관없이 일과 삶의 균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삼바축제인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이 열리는 2~3월에는 모든 일정을 비워둔다. 축제 기간은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다. 브라질의 노동자에겐 1년 동안 30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휴가 때는 미국과 유럽 등으로 장기 휴가를 떠난다. 공휴일 사이에 근무일이 끼면 쉬는 건 기본이다. 브라질 상파울루로 17년 전 이민간 나성주(60)씨는 “브라질 사람들은 일도 중요하지만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일을 할 때도 한국과 다르게 서두름이 없고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업체 갤럽과 컨설팅회사 헬스웨이스가 2013년 135개국 15세 이상 남녀 13만3000명을 대상으로 세계 삶의 질(well being) 지수를 조사한 결과 삶의 질 만족도가 높은 나라로 브라질·우루과이·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가 10위권 안에 포함됐다.

영주권 10년에 한 번씩 갱신해야


외교부에 따르면 브라질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수는 2013년 9월 기준으로 4만8468명이다. 아르헨티나에 2만2580명, 멕시코에 1만1364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중남미 이민 역사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과 함께 반공포로 55명(중국인 5명 포함)이 당시 중립국이었던 인도를 거쳐 브라질로 이주한 게 시작이었다. 1962년 5월 브라질의 한국인 이민 허가가 승인된 이후 1965년까지 농업이민, 1970년 기술이민 등 개별이민을 통해 동포사회가 형성됐다.

1992년 이전까지는 브라질에 이민을 가려면 이민비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1992년 8월 11일부터는 여권이 있는 사람은 90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관광비자가 생기면서 이민을 계획한 사람이 브라질에 쉽게 갈 수 있게 됐다. 대개 이민자들은 관광비자로 브라질에 가서 취업한 후 취업비자를 받아 정착하는 사례가 많다. 취업비자를 받으면 1년씩 연장하면 된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취업비자를 받기란 쉽지 않다. 나성주씨는 “브라질은 자국어인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민 오기 전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브라질 현지 기업에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영주권 신청도 10년에 한 번씩 신청 기간이 돌아올 정도로 이민자에 대해 관대하진 않다. 주 브라질 대한민국 대사관에 따르면 영주권을 받으려면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가족의 초청, 5만 달러 이상 투자한 투자이민, 브라질 내에서 자녀 출산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브라질에 가서 취업비자를 받고 일을 하면서 영주권 취득 요건을 갖춰야 한다. 영주권을 받아도 10년에 한번씩 갱신해야 한다. 단, 60세 이상의 영주권자는 갱신할 필요가 없다. 브라질은 2020년에 영주권 신청 기간이 돌아온다.

한국인은 대개 언어가 능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교민이 운영하는 업체에 취업한다. 브라질에 이민간 사람들은 80% 이상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다. 1970년대 브라질로 넘어간 한국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손 기술이 뛰어난 장점을 살려 유대인에게 의류패션(봉제) 기술을 배웠다. 기술을 습득하고 돈을 모은 이민자들은 의류 도매업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인들의 의류 시장이 커지면서 1990년대 후반 포르투갈어로 ‘좋은 안식처’라는 뜻의 봉헤찌로(Bomretiro)로 옮기면서 한인타운이 만들어졌다.

한국 업체에 취업하면 돈도 벌 수 있지만 생활 정보를 얻고 인맥을 쌓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처음 취업하면 보통 월 1500~2000달러를 받는다. 4인 가족이라면 외벌이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부가 모두 일해야 한다. 브라질에선 집값은 물론이고 학비, 전기세와 같은 공공요금도 비싸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보통 25~30평 아파트에 사는 데 한 달 월세가 2000~2500달러다. 매매가는 4억~5억원 정도로 비싸다. 영주권을 받기 전까지는 은행에서 대출 받을 수 없다.

교육제도는 유치원, 초·중학교(1~8학년), 고등학교(9~12학년), 대학교로 나뉜다. 브라질에는 공립과 사립, 외국인 학교가 있다. 현지 공립학교의 경우 학비는 들지 않지만 교육 수준이 사립학교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편이며 교육 시설 역시 낙후돼 있다. 사립학교는 유치원·초등학교 과정만 있는 학교도 있고, 유치원 과정부터 대학 과정까지 다 갖춘 학교도 있다. 학비는 1년에 총 12번을 지불해야 한다. 매달 등록금 1회+학비 11회로 나눠 지불하는 방식이다. 사립학교 학비는 평균 월 1000달러다. 외국인 학교는 월 평균 2500~3000달러에 달한다.

4인 기준 식대 등의 생활비는 월 평균 1500달러다. 브라질의 땅은 851만4880㎢로 우리나라의 80배가 넘는다. 땅도 넓고 대중교통 등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자동차가 필수품이다. 국내 현대차 쏘나타급 구입 가격은 월 평균 4000달러, 자동차세는 1년에 평균 1000달러 정도다. 나성주씨는 “이민 초기에는 비용이 적잖게 들어간다”며 “일을 하지 않고 정착하려면 한국보다 더 힘든 생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30년째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는 정연철(56)씨도 브라질 생활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정씨는 “이민온 후 아이들은 학교에서, 부모들은 학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통 성인의 경우 1년 정도 다닌다. 그는 안정된 이민생활을 위해 초기 정착금으로 보통 2억~3억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도 한국 이민자들의 85% 정도가 브라질처럼 의류 판매와 의류 생산에 종사한다. 물가는 브라질과 비슷하다. 집 월세·식비·교육비 등을 포함하면 한 달에 평균 3500달러 정도가 든다.

초기 정착금 2억~3억원 필요


▎매월 2월 말부터 3월 초에 브라질의 리우데자이네루에서는 리우 카니발 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법정 공휴일로 지정될 정도로 모든 국민이 축제에 참여한다.
주 아르헨티나 대사관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영주권은 영구 영주권과 임시 영주권으로 나뉜다. 영구 영주권은 아르헨티나 출생자, 시민권자의 부모·배우자·자녀, 투자이민자에게 주어진다. 투자이민은 약 4만 달러 이상의 투자 증명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임시 영주권자는 신청인의 부모·배우자·21세 미만의 미혼 자녀, 전문직 업종 종사자, 공식적인 종교 성직자 등이 신청할 수 있다. 발급일로부터 12개월의 유효기간을 가진 임시 영주권이 발급되는데, 3회 갱신 후에는 영구 영주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임시·영구 영주권을 받으면 아르헨티나 자국민과 같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연금 혜택도 마찬가지다. 영주권을 받지 않으면 의료보장을 받지 못한다. 단, 국·공립 학교는 무료이며 국립병원에서 응급실 등을 이용하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민간 병원은 의료비가 비싸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세금 부담도 큰 편이다. 개인 사업자는 복리후생비와 가게세, 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연금을 낸다. 30년간 내면 70세 이후에 받을 수 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이민자들은 대부분 개인 자영업자다. 나성주씨는 “이민을 오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한인 가게에 취직해 일을 배워 나중에 가게를 낸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의류 도매업에서 최근에는 의류 관련한 서비스업이나 디자인 관련업으로 넓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열려면 대개 3억~5억원의 비용이 든다.

에콰도르의 생활비 저렴한 편

중남미의 가장 큰 매력은 여유로운 생활이다. 노동을 한 만큼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문화다. 이런 문화는 이민자들도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다. 정연철씨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휴가를 즐기면서 사는 곳”이라며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신의 시간을 즐기며 사는 이곳의 문화는 매우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의온라인 네트워크 조사기관 인터네이션스가 160개국의 1만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외국인으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로 중남미 에콰도르가 꼽혔다. 에콰도르 한인회 장두진 회장은 “에콰도르 최대 도시인 과야킬은 태평양에 접해 있고 연중 기온은 25~31도”라며 “물가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보다 싸다”고 말했다.

다만, 2000년 에콰도르 화폐가 달러로 바뀌면서 물가가 많이 올랐다. 1800년대부터 수크레(Sucre)라는 화폐를 사용해 왔지만 1999년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2000년부터 미국 달러 공용화 제도를 채택했다. 또 정부가 2008년부터 의류 등 완제품에 대한 특별 관세를 매기면서 의류 종사자인 이민자들이 에콰도르를 많이 떠났다. 장두진 회장은 “특별 관세를 매기면서 세금이 늘어났고 생활이 힘들어지자 이민자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콰도르처럼 최근 몇 년새 중남미로 오는 이민자 수는 다소 줄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현재 재외동포수는 2011년보다 2.8%가 줄었다. 멕시코도 2003년 1만7200만명에서 6000명이 줄었다. 중남미 이민자들은 “영어권이 아니고 물가도 비싸고 거리도 멀다 보니 느긋한 삶을 즐기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언어도 장애물이다. 중남미는 영어도 필요하지만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에선 현지어를 배워야 한다. 글로벌 기업은 영어를 쓰긴 하지만 현지인들은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 나성주씨는 “브라질 현지 기업에 채용되려면 포르투갈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알아야 유리하다”며 “이민을 오기 전에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중남미는 정치 부패도 여전히 심한 편이다. 브라질의 경우 정치 부패·비리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독일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도 지수에서 브라질은 늘 고위험국으로 분류된다.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최근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1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8월 11일 기준으로 달러당 340.09헤알이다.

그러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장점도 있다. 정영철씨는 “언어 장벽이 높고 물가도 비싼 나라지만 중남미는 성장성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2억명의 인구와 넓은 땅, 풍부한 자원이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북부 쪽에는 농사를 짓는 한국 이민자도 슬슬 늘고 있다. 농업에 관심 있는 10여 가구가 함께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있다. 정연철씨는 “땀을 흘린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나라”라며 “자기가 일하고 싶은 분야를 정해 철저히 준비한다면 한국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갖고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

1299호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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