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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의 4大 과제] 아직은 불안한 ‘원 롯데, 원 리더’ 

분쟁 불씨 남겨둔 채 ‘포스트 신격호’ 시대 열어 ... 지배구조·이미지 개선, 글로벌 사업 확대 등 난제 

또 한 편의 골육상쟁 드라마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속편’이 개봉될지 알 수 없지만, 두 형제가 벌인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일단 차남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상처뿐인 싸움이었다.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황망한 민낯이 드러났고, 롯데그룹은 깊은 내상을 입었다. 롯데마트에서 장을 보고,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롯데칠성음료가 만드는 소주와 맥주로 시름을 달래고, 롯데월드에서 추억을 만들던 한국 소비자도 충격을 받았다. 일부 재벌의 전근대적인 경영 방식과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롯데그룹 사태가 한국 경제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되돌아 보고, 신동빈 회장의 남은 과제를 취재했다.
“자녀도 많지 않은데 승계 작업을 20년이나 끌었으니 이 사달이 난 것이죠. 롯데는 다른 그룹과 달리 승계를 깔끔하게 정리할 시간이 많았어요. 후계자들의 나이가 이미 꽉 찼고, 경영 능력도 어느 정도 인정받았고요. (신격호 총괄회장이) 노욕을 부린 것이죠. 진즉 다 내려놓고 한국은 차남, 일본은 장남이 맡는다, 아니면 그 반대다, 분명히 했었야죠….” 롯데그룹 계열사 사외이사 출신인 한 경영학과 교수의 얘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이번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원인에 대해 불투명한 지배구조 외에도 ‘신격호의 노욕’ 또는 ‘창업자의 딜레마’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고령의 창업자가 권력을 놓지 않아 기업에 걸림돌이 됐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서구 언론도 이런 프레임으로 롯데 사태를 분석하기도 했다.

주군경영의 폐해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롯데그룹은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승계 작업을 해왔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재계에서는 롯데의 승계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봤다. 지분 관계만 봐도 그렇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자산승계율은 92%에 이른다. 삼성그룹(48%)이나 현대자동차(37%), LG(22%), 신세계(40%), 효성(74%) 등 다른 대기업집단에 비해 훨씬 높다. 대략 20년 전부터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은 줄이고, 자녀들이 지분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이 현재 보유한 지분이 롯데그룹 주식 전체의 0.05%에 불과한 이유다. 자산승계율이란 경영권을 가진 총수 일가가 보유한 전체 주식자산 가운데 자녀에게 이전된 주식자산 비율을 말한다.

그룹 경영 부분도 그렇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 롯데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이다. 당시 신격호 총괄회장은 72세, 신동빈 회장은 39세였다. 신동빈 회장은 2년 후인 1996년 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롯데 경영에 나섰고, 이듬해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이때부터 롯데그룹은 신격호 회장이 한·일 양국을 총괄하고, 장남은 일본, 차남은 한국을 맡는 ‘원 맨 포스트, 투 맨 어시스트’ 구도로 경영돼왔다. 그리고 2011년 초 신동빈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하면서 신격호 회장은 총괄회장에 올랐다.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줄곧 일본 롯데 경영에만 관여했다. 이렇게 롯데그룹 후계 구도는 정리된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2011년이면, 신격호 총괄회장이 89세가 되던 해다. 당시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파다했다.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2013년부터는 거동이 불편해 대부분 한국에만 머물렀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경영권 분쟁 와중에 “신 총괄회장이 3~4년 전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 중”이라는 말이 롯데그룹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차남에게 회장직을 물려준 때와 겹친다. 그럼에도, 그는 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거나,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지 않았을까? 지분을 대부분 넘겨주고도 왜 환갑을 넘긴 자식들에게 경영 전권을 맡기지 않고 영역을 확실히 나누지 않아 분쟁의 불씨를 남겼을까? 시중의 얘기대로 ‘노욕’ 때문이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롯데그룹의 정체성을 봐야 한다. 신동주·동빈 형제의 한국말이 어눌하거나 아예 못하는 것을 두고 롯데가 어느 나라 기업이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 역시 글로벌 시대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롯데그룹이 일본에서 시작됐고 오너 가족의 정체성이 한국보다는 일본에 가깝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일본 기업에는 ‘주군 경영(主君經營)’이라는 전통이 있다. 에도 시대 각 번을 다스리던 우두머리처럼 창업 경영자는 존재할 뿐 군림을 하지 않는 전통이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는 일본 기업 경영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모든 것을 위임하고, 자신은 회사의 상징으로 남아 경영이념이나 경영철학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최근 수 년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에서 열린 주주총회를 앞두고 ‘세키가하라 식 결전’을 준비 중이라고 했던 것이나, 롯데그룹 사장단이 일사불란하게 모여 신 회장 지지 성명을 발표한 것 역시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세키가하라 결전은 160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과 이시다 미쓰나리 가문이 권좌를 두고 벌인 전투를 말한다.

2013년부터 경영권 분쟁 조짐


주군이 쇠약해 지는 사이, 두 형제간 분쟁의 불씨가 살아났다.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 회장직에 오르기 직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나 지금이나, 전자회로처럼 복잡한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호텔롯데가 있었다. 호텔롯데는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건설·롯데물산 등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동주·동빈 형제의 지분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룹 경영권의 핵심인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이고, 이곳의 최대주주가 신동주 전 부회장이다. 다시 말해, 한국 롯데의 실권은 신동빈 회장에게 넘어갔지만, 그룹 지배의 열쇠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쥐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에도 한·일 언론에서는 ‘신동빈 부회장의 경영 성과가 부진할 경우 언제든 그룹 경영권을 놓고 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신동빈 회장은 2011년 초 일본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승계 구도에 대해 “형은 일본, 내가 한국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013년 균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와 재벌 순환출자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그 해 6월, 신동빈 회장은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 지분을 매입하며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지분이 0%였던 롯데케미탈 주식도 200억원어치 사들였다. 그룹 순환출자 고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계열사들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2003년 이후 한 번도 개인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산 적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정부와 사회적 압박이 심해지면서 그대로 순환출자가 깨질 경우 형에게 그룹 장악력을 넘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선제 작업이었던 셈이다. 그러자 신동주 전 부회장도 롯데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신 전 부회장은 그 해 8월부터 다음해 9월까지 십여 차례에 걸쳐 롯데제과 주식을 사들이면서 2013년 8월 3.48%였던 지분율을 3.96%으로 끌어올렸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형도 10년 만에 계열사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당시 롯데그룹은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2014년 초 롯데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고, 중순에는 롯데쇼핑 납품 비리 사건으로 집중 포화를 맞았다. 또한 가뜩이나 특혜 의혹을 받던 제2롯데월드에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LIG손해보험 인수 실패, 중국 사업 부진 등으로 신동빈 회장의 경영 능력이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재계와 언론에서는 롯데그룹 계열 분리설과 함께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 장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 초 일본 언론을 통해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주력 자회사 세 곳의 임원 자리에서 해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직후 신동주 전 부회장이 방한해 부친을 만나고, 비슷한 시기에 신동빈 회장은 일본으로 출국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두 형제는 이때부터 경영권 장악을 위해 가족과 한·일 계열사 주주·사장단을 포섭하는 등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였다.

올 1월 14일, 일본에서 돌아온 신동빈 회장은 형의 해임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모든 것이 신격호 회장의 의중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후 신동빈 체제는 굳어지는 듯했다. 신 회장은 2월 25일 한국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 등기이사에 선임된다. 그전까지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누나인 신양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동주 전 부회장만 이름을 올렸던 곳이다. 동시에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한국 롯데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잇따라 해임된다. 더욱이 7월 16일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듯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 즈음을 전후로 그룹 내부에 ‘원 롯데, 원 리더(One Lotte, One Leader)’라는 문구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롯데그룹 오너 일가는 이전투구로 치닫는다. 7월 27일 신격호 총괄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 신영자 이사장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구두 해임한다. 그러자 다음 날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동빈 회장 주도로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격호 회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후 보름 동안 두 형제는 ‘거인’으로 불렸던 고령의 부친을 앞세워 볼썽사나운 여론전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국내 재계 서열 5위인 그룹의 치부가 드러났다. 형제의 난은 8월 17일 일본에서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일단 막을 내렸다. 신동빈 회장의 완승이었다. 이날 일본 롯데홀딩스는 “주주들은 신동빈 대표를 중심으로 현재의 경영진이 안정적인 경영체제를 확립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패배한 신동주 “주주로서 권리 있다”

내분은 끝이 난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모두 직위를 잃었지만 지분은 그대로다. 신 전 부회장은 주총 직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형제가 사이 좋게 일본은 내가, 한국은 동생이 담당하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나는 주주로서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날 신 전 부회장은 다시 입국해 부친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고, 신 회장은 이틀 후 귀국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은 곪을 대로 곪은 재벌 지배구조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소수 지분을 가진 그들이 어떻게 거대 기업을 경영해왔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는지 드러났다. 사외이사들은커녕 정부도 제대로 견제·감시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온갖 특혜를 받으며 성장한 ‘반한반일(半韓半日)’ 기업 롯데는 왜 ‘재벌 개혁’이 불가피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숨가쁜 내전을 치른 신동빈 회장 역시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됐다. 한국 국민 앞에 세 차례나 고개 숙이며 사과하고 약속했듯이, 신 회장은 추락한 기업 이미지 회복과 불투명하고 복잡한 지배구조 개선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칼을 뽑았다가 다시 칼자루에 넣은 정부나, 롯데에 80조원을 벌어주는 한국 소비자나, 앞으로 롯데그룹의 행보를 더욱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가 ‘포스트 신격호’로 평가받고, 롯데그룹이 진정한 한국 기업으로 인정받는 길은 오로지 신동빈 회장에게 달렸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박스기사] ‘신동빈의 사람’은 누구 - 핵심 3인방 ‘황각규·채정병·이재혁’


▎8월 4일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단 37명이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신동빈 회장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이재혁 롯데칠성음료 사장, 채정병 롯데카드 사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김치현 롯데건설 사장.
‘신동빈 시대’가 열리면서 그의 참모진도 주목받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 정책본부를 컨트롤 타워로 삼아 그룹을 경영해왔다. 그가 총애한 인물 상당수가 이곳 출신이다. 대표적 인물이 신동빈의 가신 3인방으로 불리는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 사장, 채정병 롯데카드 대표, 이재혁 롯데칠성음료 대표다.

신 회장이 신임하는 인물로는 단연 황각규 사장이 꼽힌다. 신 회장이 1990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할 당시 부장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함께 일하며 신임을 받기 시작한 황 사장은 이후 ‘신동빈의 비서실장’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황 사장은 신 회장이 롯데그룹 회장에 오르고 그룹의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꾸준히 공을 세우며 신뢰를 쌓았다. 신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면서 호텔롯데 상장,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체제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을 때, 초안 작업을 지휘한 것도 황 사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사장은 롯데그룹 내 실세 라인으로 꼽히는 서울대 화공과 라인의 수장격이다. 황 사장을 비롯해 임병연 롯데그룹 미래전략센터장 전무, 김영준 롯데상사 대표, 허수영 롯데케미칼 대표가 서울대 화공과 인맥이다.

채정병 대표는 신동빈 회장이 1995년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채 대표는 기획조정실이 정책본부로 바뀐 뒤 신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채 대표는 롯데카드가 정보 유출사고로 위기를 맞자 대표이사로 기용돼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이재혁 대표도 기획조정실 출신으로 ‘신동빈파’의 핵심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사장은 롯데칠성음료 관리본부장, 롯데리아 대표이사 등 식음료 계열사를 거쳐 2008년 정책본부로 복귀했다. 이 대표는 롯데칠성음료 대표로 다시 자리를 옮겨 이른바 ‘신동빈의 맥주’로 불리는 클라우드 맥주의 성공을 이끌었다.

이밖에 소진세 대외협력단장,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도 신 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불린다. 이원준 대표는 신 회장이 중국 사업에서 1조 원의 손실을 내 신격호 총괄회장의 분노를 샀다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주장에 대해 롯데쇼핑 기자실을 직접 찾아와 해명하는 등 신 회장의 입장을 앞장서서 전파해온 인물이다.

신동빈호에 몸을 실은 사람 가운데는 의외로 꼽히는 인물도 있다.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은 ‘신격호의 복심’이라고 불릴 만큼 오랜 기간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롯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 출입을 통제당했다. 여기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회장과 함께 일본에서 발표한 ‘살생부’ 명단에 신동빈 회장, 황각규 사장과 함께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자 롯데그룹 안팎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롯데그룹 승계와 관련해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향후에도 이 부회장은 정책본부를 이끌며 그룹 주요 현안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배경이나 학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실력 중심으로 인물을 평가해왔다”며 “명확한 공로를 세운 사람을 가까이 했을 뿐 특정인을 측근이라 부르긴 어렵다”고 말했다.

1300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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