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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해외 사업은 어디로] 아직은 적자 속 걸음마 단계 

내수기업 한계 벗어나야 하지만 국내외 경기 상황 호의적이지 않아 


▎중국 쓰촨성 ‘지구중심(Global Center)’에 있는 롯데백화점. 매일 수천명 중국인이 지구중심을 찾지만 비싼 가격 탓에 롯데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중국인은 드물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일어난 여러 배경 가운데 신동빈 회장의 글로벌 경영 실적 부진도 도화선이 됐다. 지난 7월 27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롯데그룹이 현지에서 1조원가량의 적자를 봤고, 이를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며 “이런 내용을 신 총괄회장에게 보고하자 그가 격분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 해임을 지시했다는 설명이다. ‘1조원 적자’ 발언에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 손실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은 롯데쇼핑 측이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원준 롯데백화점 사장은 “롯데쇼핑 중국 사업을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보고했고, 신동빈 회장도 배석했다”며 “2009~2014년 누적 적자는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기준(EBITDA)으로 3200억원이고, 백화점은 2011년 이후 1600억원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 사장은 또 롯데그룹의 중국 진출과 관련해 “오프라인 매장은 1980년대부터 30년간 고성장을 했지만 아울렛과 온라인 활성화로 손님이 빠져나가면서 2011년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면서 “이제 오프라인 매장은 구조조정 단계에 있다”고 적자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인들의 소비 패턴 변화에 따른 적자이고, 적자 폭도 부풀려 졌다는 해명이다.

글로벌 경영 실적 부진도 형제의 난 발생 배경


그러나 실적이 나쁜 건 사실이다. 롯데쇼핑의 백화점·대형마트 해외 법인은 2011년 51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손실액이 2500억원으로 커졌다.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유통 부문의 실적 부진 탓이 컸다. 신동주 부회장은 백화점과 면세점 등 유통 부문의 실적 부진을 언급하며 신격호 총괄회장의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진다. 유통 부문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의 중국 실적도 그리 신통치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 적자 폭은 1조원이 넘는다. 2011~2014년까지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케미칼 4곳의 중국 사업 누적 적자 규모는 1조1513억원에 이르렀다. 적자의 상당 부분은 중국과 홍콩 법인에서 발생했다.

이번 형제간 분쟁에서 롯데의 해외 사업 실적이 논란이 된 건 그동안 신동빈 회장이 글로벌 경영을 주창해왔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두 롯데를 경영하던 신격호 총괄회장의 ‘셔틀 경영’과 뚜렷이 구분되는 경영 스타일이어서 전통적인 롯데 경영과는 이질적이었다. ‘셔틀 경영’이 은밀하고 현금을 중시한 것과 비교하면 신 회장의 글로벌 경영은 좀 더 투명하고 신용을 활용해 레버리지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미 신 회장은 한국 롯데의 조타수를 맡으면서부터 세계 여러 기업을 인수·합병(M&A) 하는 데 주력했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듯, 한국과 일본에서 벗어나려는 신 회장 의중이 반영된 사업 확장 방식이다. 신 총괄회장 스타일과 전혀 다른 경영 방식인데 결과적으로 적자를 냈으니 경영권을 내놔야 한다는 게 신 부회장 주장의 배경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해외 사업을 거둬들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8월 17일 이번 분쟁의 분수령이 된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직후 신 회장은 그룹의 최우선 과제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재상정했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일 롯데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세계 시장에서 롯데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신 회장은 주총 전인 8월 11일에도 한·일 롯데제과를 예로 들며 “둘을 합치면 전 세계 제과 업계 7위~8위로 우뚝 올라설 수 있다”며 “(경영권 논란을 겪은 이후 한·일 롯데의 협력이 강화되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 세계에서 승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히기도 했다.

롯데의 글로벌 경영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재 롯데그룹 총매출의 90% 이상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편중돼 있다. 그 외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매출도 기존 투자비를 감안하면 의미 있는 매출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하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한·일 시장 외 해외 시장을 확대해야 롯데가 지속성장할 수 있다는 게 신 회장 지론이다. 경영권 통합을 통해 한·일 롯데 간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서 해외 사업에 전력한다는 구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신동빈 회장 “글로벌 시장 공략이 최우선 과제”

롯데그룹은 베트남·러시아·인도·중국·인도네시아(VRICI) 중심의 신규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이들 지역에서 신규 점포 개설, 영업망 확대, 글로벌 협력 강화 등에 힘을 쏟았다.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리아·롯데호텔이 해외 사업 개척의 선발대다. 최근엔 이들 지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북미 지역으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세계 21개국에 5만여명의 롯데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중국은 유통을 비롯해 식음료·케미칼·물류 등 거의 대부분의 계열사가 진출해 있다. 동남아시아 쪽은 식음료를 시작으로 유통 부문 진출이 활발하다. 유럽엔 물류를 중심으로 제과와 케미칼이 합작형태로 진출해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경영을 지속성장의 원동력으로 보고 모든 사업 부문에서 해외 사업 확장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의 해외 초대형 복합단지는 글로벌 경영의 핵심 프로젝트다. 식품·유통·건설·서비스 역량을 한 데 모아 여러 계열사가 함께 해외에 진출할 기반을 만들겠단 심산이었다. 롯데는 2014년 9월 베트남 하노이에 ‘롯데센터하노이’를 열었다. 롯데의 첫 해외 복합단지다. 총 4억 달러를 투자해 지상 65층, 지하 5층, 높이 267m, 연면적 25만㎡ 규모의 빌딩에 백화점·마트·특급호텔·오피스 등을 넣었다. 중국 선양에도 복합단지가 조성된다. 현재는 청두에 1조원을 투입해 롯데몰 주상 복합타운을 짓고 있다. 테마파크를 비롯해 쇼핑몰·호텔·오피스·주거단지 등이 들어선다. 연면적 150만m²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2014년에 백화점이 먼저 개점했고, 2017년 최종 완공을 목표로 잡고 있다. 베트남에선 하노이에 이어 호치민에서도 복합단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롯데는 호치민시가 베트남의 경제허브로 개발 중인 투티엠 지구에 2021년까지 ‘에코스마트시티’를 건설할 계획이다. 약 10만여㎡ 규모 부지에 총 사업비 2조원을 투입한다. 백화점·쇼핑몰·시네마 등의 상업시설과 호텔·오피스 등의 업무시설, 그리고 주거시설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복합단지다.

“대규모 투자 후유증 우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중국 경제가 예전만큼 강하지 않고 글로벌 경기 침체도 이어지고 있어 대규모 투자의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가 심혈을 기울인 중국 사업이 여의치 않다. 롯데쇼핑의 해외 종속기업 중 롯데마트차이나는 지난해 1396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기록했다. 2011년에만 12억원 흑자를 냈고 이후 92억원(2012년), 640억원(2013년)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롯데마트는 2007년 글로벌 대형마트 체인인 ‘마크로’를 인수하면서 중국에 진출했다. 이후 급속히 점포 수를 확대해 현재 중국에만 103개 점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매출이 투자에 못 미치면서 손실이 불어나고 있다. 롯데 측은 각 점포가 흑자로 전환하는데 걸리는 시차 때문에 일어난 일시적인 적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내수 경기가 생각보다 살아나지 않고 있어 과잉 투자라는 비판도 나온다.

톈진롯데마트(칭다오)도 2011년 이후 줄곧 적자 행진이다. 4년간 누적 적자가 1403억원에 달했다. 랴오닝성과 지린성 법인도 2012년 각각 86억원, 7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 청두 롯데백화점도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 롯데자산개발의 중국 자회사 롯데프로퍼티(청두)는 2013년 194억원 적자에 이어 지난해에도 73억원 적자를 이어갔다. 이 회사의 홍콩 법인도 지난해 73억원 적자를 이어갔다. 백화점을 개점한 후에도 자산개발사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청두 롯데백화점은 2012년 45억원 적자를 보인 이후 롯데마트차이나 실적에 산입돼 더 이상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전체 적자 규모로 볼 때 청두 사업이 흑자로 전환됐다고 보긴 힘들다. 롯데쇼핑홀딩스(홍콩)는 잇따른 M&A로 적자가 불어났다. 지난해 손실액은 3439억원에 달한다. 2013년(125억원 적자)에 적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중국 본토 마트 70여 개를 운영하던 타임스를 인수하는 데 든 투자비 부담이 컸다. 홍성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2분기 롯데쇼핑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위안화 강세에 따른 중국 백화점·할인점 손실 확대를 꼽았다. 롯데쇼핑은 최근 중국 할인점 5개를 폐점하는 등 적자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롯데제과의 중국 사업도 신통치 않다. 지난해 칭다오에선 2억원 순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제과의 중국 계열사 전체 손실은 186억원에 달한다. 주력인 껌과 초콜릿이 중국 경쟁 업체에 밀려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지난해 93억원 손해를 봤다. 음료의 중국 사업 손실은 10년째 이어져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 받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2005년 중국 현지 음료 업체 베이징후아방식품과 루허창다실업을 인수하며 중국 시장에 발을 디뎠다. 이후에도 중국 회사를 사들이며 법인을 늘려갔지만 영업망 확보에 차질을 빚으면서 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2011년엔 식음료 총괄 지주사인 롯데중국투자유한공사가 자본잠식에 빠져 지분법 인식이 중지되기도 했다.

중국만 문제가 아니다.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에서도 롯데 유통 부문의 실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롯데쇼핑 베트남법인은 2013년 13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도 74억원 적자를 냈다. 롯데마트인도네시아는 140억원에서 95억원으로 적자폭을 다소 줄였다. 물론 흑자가 난 종속기업도 있다. 롯데쇼핑인도네시아는 2013년 145억원에 이어 지난해 102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롯데쇼핑홀딩스 싱가포르도 재작년 4000만원 적자에서 지난해 1억4000만원 흑자로 돌아섰다.

그나마 롯데가 중국 사업에서 수익을 낸 것은 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이다. 중국에서 2011년 38억원 이후 2012년 75억원, 2013년 29억원, 지난해 14억원으로 작지만 꾸준하게 이익을 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0년 동남아시아권 대표 석유화학 기업인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을 인수하면서 해외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이후 영국의 ‘아테니우스’, 파키스탄의 ‘파키스탄PTA’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미국 앨라배마에도 생산 법인 ‘HPM 앨라배마’을 설립하는 등 해외 생산설비 확충에 주력했다.

주요 주주 신뢰 얻으려면 글로벌 사업 호성적 필요

해외 기업과의 합작 사업도 활발하다. 해외 설비 증설을 위해서다. 2013년 여수에 일본 미쓰이화학과 합작으로 폴리프로필렌(PP)촉매 공장 증설을 완료하고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일본 기업과 합작으로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연 5만t 규모의 합성고무 생산설비도 건설하고 있다. 이탈리아 기업 ‘베르살리스’와 합작해 여수에 합성고무 생산 공장도 만들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수르길의 유화단지 사업은 완공을 2개월가량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2월엔 미국 액시올사와 합작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셰일가스를 이용한 에탄크래커 플랜트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중국을 제외한 롯데케미칼의 글로벌 실적을 뜯어보면 걱정이 적지 않다. 롯데케미칼타이탄홀딩스는 2013년 168억원에 이어 지난해 20억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앨라배마에선 지난해 4억원, 파키스탄은 115억원 적자다. 영국에선 지난해 682억원 적자다. 폴란드 법인도 지난해 9억원 손해를 봤다. 장치산업인 만큼 거액의 투자금이 들어가고 수익이 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게 적자의 배경이다. 문제는 롯데케미칼이 동시 다발적으로 해외 기업을 인수하면서 세계 각국에 진출해 투자금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롯데케미칼 본사 당기순이익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2년 3161억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3년 2858억원, 지난해엔 1436억원으로 갈수록 이익이 줄고 있다. 주당순이익도 재작년 8546원에서 지난해 4359원으로 떨어졌다. 해외 사업에서 이익이 나기까진 시간이 걸리는데 투자금은 계속 들어가고 있으니 유동성 관리가 더욱 절실해졌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한 사외이사는 “경영권이 안정화된 만큼 해외 투자 의지가 강한 신 회장이 또 다른 해외 M&A를 시도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특히 변동이 큰 소비재 산업 외에도 안정적 성장 기반이 될 수 있는 석유화학 등 시설 사업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 사업에 주력하는 것은 내수기업이란 한계를 벗어나려는 롯데그룹에겐 적절한 전략이다. 하지만 적자폭을 줄이고 내실화를 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본 주주의 신뢰가 필요한 상황에서 해외 부실 이슈가 언제든 신 회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1300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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