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은 올 상반기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3200억원입니다. 3조원의 영업손실은 이 회사의 10년치 순익을 합친 금액입니다. 이번 적자로 대우조선해양은 투기등급으로 강등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주가도 곤두박질쳤습니다. 한달 새 주가가 반 토막 나면서 투자자도 큰 손해를 봤습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동안 증권가에서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팔라는 매도 의견은 거의 없었습니다. 7월 29일 상반기 실적이 발표되기 전까지 단 한 곳만 매도 의견을 내놨습니다. 기업의 투자 정보를 제공해야 할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겁니다. 투자자의 원성을 충분히 살만 하지만 이들에게도 고충은 있습니다. 나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면 항의·협박에 시달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당시 토러스증권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현대백화점 부사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서울 시내 면세점 7곳의 대기업 후보 중 현대백화점을 꼴찌로 평가한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현대백화점은 갑질 횡포로 뭇매를 맞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곧잘 겪는 씁쓸한 일상입니다. 더구나 영업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어 용감한 ‘을’ 노릇을 하긴 쉽지 않습니다. 한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우리는 기업을 분석해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인데 매도 보고서를 내면 투자자에겐 협박을 당하고 기업으로부턴 자료나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진다”고 하소연 합니다. 이렇다 보니 매도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1~2014년 분석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은 전체의 0.1%도 되지 않습니다.금감원은 최근 증권사의 건전한 리서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매도 리포트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애널리스트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테니 매도 의견도 많이 내라는 겁니다. 취지는 좋지만 정작 애널리스트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습니다. 투자자와 기업의 회유나 협박을 막을 법적·제도적 장치는 없고 무조건 독려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