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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꺼삐딴 리]의 ‘피장파장의 오류’ 

‘남이 못하니 나도 남만큼 못해도 된다’ ... 비교대상에 따라 평가 달라져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사진:중앙포토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까지. 격동의 20세기 초반 한반도에 산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다. 일본과 미국, 소련, 그리고 남북한으로 한반도의 주인이 바뀌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따라 그저 부평초처럼 이리 나부끼고 저리 나부끼었을 뿐이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빼곡하다. 친일파 처단에 나선 3명의 독립군이나 돈을 받고 이들을 제거하려는 2명의 암살자, 그리고 변절한 친일 경찰까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선택은 제한됐다. [암살]을 보면서 떠올랐던 소설 한 편이 있다. 1962년 발표된 전광용의 [꺼삐딴 리]다. [꺼삐딴 리]는 반일과 친일, 혹은 친소와 친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기회주의적인 삶을 산 한 의사의 이야기다.

격동의 한국 근대사 잘 드러나

꺼삐딴은 러시아말로 ‘캡틴(Captain)’을 의미한다. 광복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한 뒤 ‘꺼삐딴’은 ‘우두머리’ ‘최고’라는 뜻으로 쓰였다. 소련군 스텐코프 소좌는 자신의 얼굴 혹을 제거해준 외과의사 이인국을 ‘꺼삐딴 리’라고 불렀다. 의사로서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인국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의 소련군 점령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겪는다. 1·4 후퇴 때 월남해 서울에 정착하면서 미군과 친분을 쌓는다. 그의 인생 반백년은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중심을 관통해왔다. 그의 보물 1호는 청춘을 함께 해온 ‘회중시계’다. 제국대학 의대를 졸업하면서 받은 것으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평양에서 개업한 이인국의 병원에는 일본인 간부들만이 들락거린다. 이인국은 관선 시의원에, 집에서 대화는 일어로만 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황국 신민이다. 그런데 벼락같이 광복이 찾아온다. 그에게 광복은 달갑지 않다. 불확실성만 커질 뿐이다. 소령군이 진주한 북한에서 그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며 그는 감옥에 갇힌다. 당장 내일 죽을지 모르는 절대절명의 위기. 그를 구해준 것은 ‘의술’이었다.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는 감옥에서 환자들을 치료해주며 기회를 엿보던 그는 소련군 소좌 스텐코프의 얼굴 혹을 제거해준 대가로 자유를 되찾는다. 그리고 닥친 한국전쟁. 이인국은 1·4후퇴 때 청진기가 든 손가방 하나만 들고 월남한다. 그리고 어엿한 종합병원의 원장이 됐다. 이인국은 지금 미국 대사관 직원 브라운을 만나러간다. 미 국무청 초청케이스로 미국을 다녀오기 위해서다. 미국인 교수와 결혼하려는 딸 나미도 만날 겸 의사로서 미국 경력도 쌓을 겸 일거양득이다.

세상은 급변했지만 생존을 위한 삶의 지혜는 달라질 것이 없다. 지배자의 비위를 잘 맞추면 된다. 때로는 아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이 최고의 처세술이다. 그는 아무나 치료해주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간부나 고등계 형사들이 주요 고객이었고, 지금은 권력층 아니면 재벌이다. 일제 강점기에서는 일어를 열심히 배웠고, 소련군 점령 때는 러시아어를 배웠다. 미국이 위세를 떨치니 어느새 영어를 배웠다. 일제 강점기 그는 아이들을 일본 소학교로 보냈다. 소련이 북한으로 진주하자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보냈다. 미국인 들어온 남한에서 딸은 영문과를 나와 미국 유학을 갔다. 일본인들에게는 친절한 진료로, 소련군 스텐코프에게는 의술로 환심을 산다. 미국인 브라운에게는 고려청자를 선물로 건넨다. 국외로 보물이 유출될 수 있지만 그런 걸 생각할 인물이 아니다.

물론 이인국도 찔리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친일파, 민족 반역자 같은 단어는 양심에 찔리긴 하다. “그럼 어쩌란 말이야. 식민지 백성이 별 수 있었어? 날고 뛴들 소용이 있었느냐 말이야. 어느 놈은 일본 놈한테 아첨을 안 했어? 주는 떡을 안 먹은 놈이 바보지. 흥 다 그놈이 그놈이었지.” 이렇게 자기변명을 합리화하고 나면 가슴이 좀 후련해왔다.

이인국의 이런 자기합리화는 정당한걸까. 이인국은 ‘피장파장의 오류(Tu quoque)’에 빠져있다. 피장파장의 오류란 ‘남이 못하니 나도 남만큼 못해도 된다’라는 논리에서 저지르는 오류다. 내 행동이나 판단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지만 남들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내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오류다. 너도 역시 똑같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행위에 따라 결론이 증명되는 것은 논리학에서는 명백한 오류로 본다. 특정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걸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논리학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 철학자 새뮤얼 구텐플란과 미국 철학자 마틴 탬니는 ‘가계에서 점원이 착오로 거스름돈을 많이 줬을 때 한 손님이 모른 척하는 것이 정직하지 못한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만약 그 대답이 ‘다른 손님들도 모른 척했을 것이니 그가 부정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거스름돈이 많다는 것을 밝혔든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정직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정직성은 오직 그의 행동에서만 확정될 수 있다.

피장파장의 오류에 빠지면 비교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이래서는 객관적인 자신의 문제를 파악할 수가 없고 심지어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변명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 홍길동씨가 주식에 투자했다 100만원을 잃었다. 때마침 하락장이라 같이 주식을 한 전우치와 임꺽정도 50만~200만원을 잃었다. 그는 “거봐 다른 사람도 잃었잖아”라면서 자위를 한다. 기분이야 좀 좋아졌을 지 모르지만 자신의 지갑에서 빠져나간 100만원은 변함이 없다. 또 투자 실패의 원인을 냉철하게 찾는 행위를 막아 다음에도 유사한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남기는 사람은 남긴다.

두 개의 잘못이 만든 정당화

피장파장의 오류가 가장 빈번한 곳이 정치권이다. 여야로 나뉘는 정치에서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 ‘너는 안 그렇느냐’는 식으로 물타기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될 때조차 “다른 사람도 받지 않았느냐. 재수 없었을 뿐”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피장파장의 오류는 ‘두 개의 잘못이 만든 정당화(two-wrongs-make-a-right)의 오류’라고도 부른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 놈들 사이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고, 나라가 바뀌었으면 바뀌고,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이인국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해온 자신의 인생을 끝내 ‘피장파장의 오류’로 합리화한다. 미국으로 떠난 이인국은 과연 뜻하는 바를 얻고왔을까. 소설은 그것까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미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위해 반도호텔로 떠나는 장면에서 끝난다. 독자의 상상에 맡길 수 밖에.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304호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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