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추석연휴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고향의 동생이 “아울렛에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10월 1일부터 2주간) 전에 초특가 세일을 한다고 해서 가볼 참”이라며 “200만원짜리 아르마니 정장을 45만원에 판다더라”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 동생처럼 세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아울렛으로 가는 길은 연휴 내내 귀경길 정체 못지 않게 막혀 주차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곱씹어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라 하면 대대적 가격 파괴 시즌인데 왜 그에 앞서서 초특가 세일을 한단 걸까요?

이미 정부는 지난 8월부터 대대적인 정부 주도 할인 판매 행사를 진행 중입니다. 백화점·대형마트·전통시장 등을 참여시킨 ‘코리아 그랜드 세일’입니다. 하반기 내수를 촉진하고 내년 생산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 할인 행사입니다. 유통사별로 세일 기간을 따로 정하지 말고 한꺼번에 세일에 들어가란 겁니다. 그래야 경쟁적으로 더 낮은 할인가를 제시할 거란 게 정부 복안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문제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 기간 중에 또 다시 정부 주도 할인 판매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를 겹쳐 시행한단 겁니다. 상식적으로 세일은 정해진 기간에 한번에 끝내야 합니다. 나중에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면 누가 물건을 사겠습니까? 실제 블랙프라이데이 첫날 풍경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해서 유통점을 찾은 소비자들은 미끼상품과 이월상품만 가득한 매장에서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난감합니다. 정부에서 갑자기 가격 제한을 풀어줬지만 이미 세일 중이라 더 이상 가격을 떨어뜨릴 여지가 없단 겁니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로 45만원이 된 아르마니 정장을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해서 더 할인하긴 어렵단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를 예상한 아울렛 등에선 ‘괜찮은 상품을 파격가로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오히려 블랙프라이데이 전’이란 점을 내세웠던 모양입니다. 이번에 처음 시행한 블랙프라이데이 정책은 아쉽게도 ‘세일 중 또 세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좋은 정책도 한번에 강하게 써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번 찔끔찔끔 쓰면 불신만 낳습니다.

1305호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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