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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주도 TPP 타결, 한국 경제 어디로] 움츠렸던 아베의 결정적 한 방 

세계 GDP 40%의 초대형 자유무역지대 … 엔低·무관세로 날개 단 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0월 6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날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드디어 개막했다”고 평가했다.
summary |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됐다. 발효되려면 최소 1~2년가량 걸릴 전망이라 당장 한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질 것 또한 분명하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매달리던 한국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메가 FTA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뒤늦게 뛰어든 만큼 ‘비싼 참가비’를 내야 할 게 뻔하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아시아·태평양에 자유와 번영의 해역을 이룩할 것’ ‘일본이 협상을 주도,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관세 철폐의 예외를 많이 확보’ ‘앞으로 중국이 TPP에 참여하면 우리나라의 안보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

10월 5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협상에 참여한 12개국 수장 중 가장 먼저 기자회견에 나선 것 역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였다. 그는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드디어 개막했다”면서 TPP에 대한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속도가 더뎌 걱정했던 일본이 TPP로 단숨에 세계 최대 경제블록의 중심에 서게 됐으니 그럴 만하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이란 표현과 중국에 참여를 권유하는 부분에선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같은 날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 경제 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표현과 묘하게 겹쳤다.

자동차 부품 가격경쟁력 약화 우려


TPP는 세계 1·3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이 이끌고, 멕시코·호주 등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참여하는 12개국의 다자간 FTA다. 참가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전 세계 경제의 37%(2013년 기준)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규모의 경제블록이다. 참여국이 전 세계 교역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5.8%에 달한다. 유럽연합(EU)보다도 덩치가 크다. 동시에 서로 다른 무역장벽을 가진 국가를 하나로 묶는 첫 ‘메가 FTA’다. 상품 관세를 대폭 축소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비스와 투자 등 각종 무역장벽을 낮추는 게 골자다. 2005년 칠레·브루나이·뉴질랜드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고, 2008년 미국이, 2013년 일본이 뛰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국가 간 경제 통합에 적극적이던 한국은 TPP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중 FTA 등 다른 굵직한 현안에 집중하던 시점이었고, 극도로 악화된 한·일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 TPP는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메가 FTA지만 사실 한국에겐 일본과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크다. 한국은 TPP 참여국 중 무역 거래가 많은 미국·베트남(발효 예정)·싱가포르 등과 이미 FTA를 맺은 상황이다. TPP에 가입하면 일본과 새롭게 FTA를 맺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무대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품목이 많아 실익이 크지 않다는 현실론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TPP에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추이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업종별 득실은 따져 봐야겠지만 일단 한국을 제외한 첫 메가 FTA가 출범하는 것이니 우리 산업계에 긍정적인 소식이라 보기는 어렵다. 일단 TPP 참여국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업종은 피해가 예상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중간재다. 한국은 기계나 자동차 부품 등에서 일본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 제품이 무관세 등에 힘입어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경우 한국 기업의 수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베트남과 경쟁하는 섬유 업종도 TPP를 호재보다는 악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베트남은 섬유 분야 최대 수출국이다. 다만,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거꾸로 수혜를 입을 수 있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관세에 관한 세부사항이 확정돼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는 관세 철폐에 따른 이득을 얻을 것”이라며 “국내 기업 중에선 한세실업·영원무역·경방·SG충남방적 등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SG 충남방적 주가는 TPP 타결 소식이 발표된 10월 6일 이후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자동차와 전기·전자는 득실 계산이 복잡하다. 일단 TPP가 정식 발효되면 일본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강화되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경우 해외 생산 비중이 약 50% 수준이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일 자동차 업계의 최대 경쟁 시장인 미국에서도 한·미 FTA의 효과를 감안하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학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한국과 미국은 이미 FTA를 통해 내년부터 자동차 수출관세를 완전 철폐하기로 했다”며 “반면 일본은 TPP로 향후 25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해 오히려 한국의 미국시장 선점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개별 FTA, 일본은 TPP 한 방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된 10월 5일 미국 애틀란타에서 미국 등 12개 회원국 무역장관들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전기·전자 업종 역시 한국이 TPP 참여국 중 10개국(발효 예정 국가 포함)과 이미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반도체 또한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이면서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지만 이미 무관세 품목이기 때문에 일본의 TPP 참여에 따른 영향은 거의 없다.


실제 득실이 어떻든 TPP 타결은 우리에겐 썩 기분 좋은 뉴스가 아니다. 업계에선 ‘일본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지난 10년간 국제 무대에서 FTA 전도사를 자처하는 동안 일본은 자국에서조차 ‘미온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큼 움직임이 더뎠다. 그러나 TPP 하나로 일본은 한국이 체결한 FTA(11개국)와 같은 숫자의 결과물을 얻어냈다. ‘TPP 타결 후 일본의 FTA 시장 규모는 42.7%로 증가하지만 여전히 우리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큰 흐름을 읽지 못하고, 개별 FTA에 매진하다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지는 지난 3월 ‘개별 FTA에만 목을 매지 말고, 메가 FTA로 치고 나가야 한다’는 제안을 했었다[1276호 참조].

물론 TPP가 발효되려면 각국 의회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최소 1~2년가량 더 소요될 예정이라 당장 한국 수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발효 이후 점진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질 것 또한 분명하다. 가뜩이나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과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정부의 대응전략에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쨌든 TPP 타결로 세계 경제의 통상질서가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건 명확해 보인다. 우리로서는 어떤 대응전략을 세울지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주요국 중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다. 2013년 기준으로 82.4%에 달한다. 미국(23.3%)·일본(31.6%) 등과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새로운 통상 규범과 그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단 TPP에 참여할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TPP보다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더 공 을 들 였다. 중 국이 주 도하는 RCEP는 다자간 FTA라는 점에서 TPP와 같다. 중국과 아세안 10개국, 한국·일본 등 16개국이 참여하는데 GDP 규모는 TPP보다 작지만 무역규모는 더 크다. 특히 참여국 인구가 전 세계의 절반 가량인 34억명에 달한다. 10월 부산에서 10차 협상이 열리는데, 관세 철폐 정도를 놓고 국가 간 이견이 커서 올해 중에는 타결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의 최대 경쟁국인 일본이 TPP와 RCEP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이라도 TPP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부도 ‘사실상 참여’ 입장을 재확인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메가 FTA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며 “공청회 등 통상 절차를 거쳐 TPP 참여 여부와 시점을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산물 개방’ 등 비싼 참가비 내야 할 듯


사실 TPP는 우리 산업계에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참여할 경우 TPP 참여국으로의 수출 확대 및 수입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되지만 사실상 일본과 시장 개방에 합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우리 산업계가 일본에 우위를 보이는 분야는 전기·전자와 철강 정도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불참한다고 한국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TPP 심층보고서’에 따르면 TPP에 참여할 경우 발효 후 10년 간 1.7~1.8%가량의 GDP 증가 효과가 있다. 불참할 경우엔 0.12%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전체 경제 규모로 따지면 매우 미미한 수치다.

그럼에도 한국이 TPP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관세 이외의 요소에서 더욱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 메가 FTA는 단순한 관세 철폐의 문제가 아니다. TPP만 해도 노동·환경, 해외 투자자 보호, 지식재산권, 공정거래 등을 포괄하는 상당히 넓은 수준의 국제적 합의다. WTO 등 기존 협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형성 과정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TPP가 단순한 경제 동맹이 아닌 외교안보 동맹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싫든 좋든 안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의미다.

일단 정식 발효 전에 어떻게든 참가국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건 ‘비싼 참가비’다. TPP를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은 ‘가입 논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협상 과정에선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 걸게 분명하다. 이미 합의한 틀에 한국이 끼여 드는 것이니 우리의 목소리만 높이기도 쉽지 않은 판이다. 심지어 협상을 주도한 일본도 TPP 협상 과정에서 끝까지 지키려 했던 농산물 시장을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에게도 똑같은 압력이 들어올 텐데 무언가 얻어내려면 우리도 무언가 내줘야 한다. 그게 농산물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 부총리가 “쌀은 보호하겠다”고 밝혔지만 뜻대로 될진 미지수다.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은 조건이라면 TPP 추가 가입에 성공하더라도 국회 비준에서 난항이 불가피하다. 여러모로 진작 뛰어들지 않은 게 뼈아프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박스기사] 한국이 올인했던 FTA 성적표는?


체결 실적은 ‘화려’ 실속은 ‘글쎄’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총 15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11건은 이미 발효됐고, 한·중 FTA 등 4건은 곧 발효된다. 전 세계 약 50여개국과 무역 장벽을 허문 셈이니 체결 실적만 놓고 보면 ‘FTA 선도국’이라 불릴 만하다. 칠레와 FTA를 맺은 2004년 이후 정권이 3번 바뀌었지만 정부마다 전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모두 ‘경제영토 확장’이란 명분을 내세우며 적극적인 FTA 체결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FTA가 발효 이후 산업별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성과가 어땠는지 분석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정부도 이 부분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본지가 산업별 FTA 성과를 분석(1276호)한 결과, 예상보다 FTA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기대가 컸던 전자 업종은 FTA 대상국으로의 수출액이 2004년 425억 달러에서 2013년 382억 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여기까진 해외 생산 비중이 커진 탓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이 각국 전자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싱가포르를 제외하곤 감소했다. 일례로 칠레와 FTA를 체결했던 2004년 한국 전자 업체의 칠레 시장점유율은 5.6%였지만 2013년엔 1.8%로 줄었다. 또다른 수혜 업종으로 꼽히던 자동차도 기대에 못 미쳤다. 유럽과 아세안(ASEAN) 시장 개척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현대·기아차의 해당 지역 점유율은 FTA 체결 전후로 큰 차이가 없다. 수출이 소폭 늘어나긴 했지만 수입량도 그만큼 늘었다는 분석이 있다. 통신·금융 등 서비스업 역시 별 성과가 없었다. 특히 금융업은 선진국과의 활발한 교류와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지만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 글로벌 금융사의 국내 진출 모두 부진했다.

철강이나 화학 업종이 그나마 재미를 봤다. 화학(고무·플라스틱 포함) 분야는 2004년 FTA 발효 대상국을 상대로 29억 달러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2013년엔 137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철강 역시 2004년 19억 달러에서 2013년 95억 달러로 흑자폭이 크게 늘었다.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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