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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양대 경제단체 수장 중간평가] 대한상의 재벌에도 쓴소리 ... 전경련은 그래도 재벌 두둔 

박용만 회장, 대한상의 위상 강화 ... 허창수 회장, 회장단 영입에 어려움 


▎올 5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 경제인 회의에서 사사키바라 사다유키 일본경제단체연합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왼쪽 세번째). / 사진:중앙포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내 경제 단체 중 가장 비중이 큰 5곳이다. 이들 단체는 재계 이익을 대변하고, 정부의 경제 정책에 호응하는가 하면 때론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적 책임을 진다. 이 가운데 1961년 설립된 민간 종합 경제단체인 전경련이 맏형 격이며, 1884년 만들어진 한성상업회의소가 모태인 대한상의도 정부와 민간 사이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 두 단체는 현재 수장이 재계 오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재계 오너가 회장직을 수행했던 전경련은 허창수(66) GS그룹 회장이, 관록 있는 전임 회장들이 거쳐간 대한상의는 박용만(60) 두산그룹 회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오너가 아닌 경제단체장으로서 두 사람은 얼마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을까. 본지는 2011년 2월부터 제33·34·35대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는 허창수 회장과, 2013년 8월부터 제 21·22대 대한상의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용만 회장의 지난 행보를 짚어봤다. 조용한 리더십을 갖춘 허 회장은 한때 마땅한 리더를 찾지 못해 표류할 뻔했던 전경련을 비교적 착실하게 이끌어오고 있다는 평가다. 박 회장도 특유의 젊은 리더십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대한상의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만점짜리 성적표는 아니다. 각계는 그간 두 회장에게 부족했던 부분과, 앞으로 두 회장이 그려줬으면 하는 청사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공통점


▎올 9월 중국 상하이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애초 두 회장은 구원 등판한 투수 격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허 회장은 2011년 취임 당시 전경련 회장단이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2007~2011년 제31·32대 회장 역임) 이후 좀처럼 차기 회장을 정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중책을 맡았다. 조 회장이 건강 문제로 사임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차기 회장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거절 의사를 나타냈다. 재계에선 “허 회장도 거절했지만 회장단의 계속된 추대에 어쩔 수 없이 회장직을 수락했다”는 말이 나왔다. 박용만 회장도 2005년부터 오랜 기간 대한상의 회장을 역임했던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2013년 외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어려워진 그룹 경영에 매진하고자 사임한 직후 잔여 임기를 수행하면서 대한상의의 새 수장이 됐다. 이후 회장직을 연임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취임 당시만 해도 전경련은 ‘과거와 달리 이름뿐인 재계 맏형’, 대한상의는 ‘전경련에 비해 위상이 낮은 경제단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등이 이끌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던 전경련은 시대가 변하면서 재계 오너들의 회장단 회의 참여율이 저조해졌다. 대한상의의 경우 특성상 전경련만큼 유력한 재계 인사들이 그간 회장단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각각 취임 4년째, 2년째라는 반환점을 돈 두 회장이 취임 당시만 해도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이자, 두 회장을 가리켜 “구원투수로서 등판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이들의 취임 이후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올 8월 21일 취임 2주년을 맞았던 박용만 회장의 대한상의는 높아진 위상으로 이전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박 회장의 취임 이후 단체의 중심축인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등 굵직굵직한 재계 인사들이 합류했다. 이들 모두 박 회장이 직접 합류를 제안해 서울상의 회장단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용진 부회장의 경우 젊은 감각의 박 회장이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교류하며 친분을 쌓은 걸로 안다”며 “박 회장이 직접 만난 자리에서 정 부회장에게 합류를 제안했고, 이를 정 부회장이 흔쾌히 수락했다”고 전했다.

박용만 회장, 할 말은 하면서 정재계 소통 강화


단순히 회장단의 네임 밸류만 높아진 건 아니다. 박 회장은 자신의 강점인 친화력을 살려 취임 직후부터 정·재계 간 소통 강화에 힘썼다. 2013년 11월 ‘경제 5단체-여야 원내대표 간담회’ 개최를 주도해 정·재계 실무협의체를 구성하면서 정치권과의 소통의 물꼬를 텄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 대한상의는 정부가 추진한 규제 개혁과 내수 활성화 등의 경제 관련 정책에 모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대한상의가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 부상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외교 때마다 경제사절단으로 빠짐없이 동행하면서 재계 맏형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대한상의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박 회장은 또한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나름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서도 아직까진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회적으로 제기된 재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에 경제단체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호응한 것이 대표적 예다. 예컨대 그는 지난해 다른 경제단체들이 반대하는 정부의 기업소득 환류세제(사내유보금 과세) 추진에 지지 의사를 보여 화제를 모았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단기적으로 필요하다면 부자 증세도 가능하다”고도 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이슈가 불거졌을 때도 “반대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미 취임사에서부터 “경제 민주화는 시대적 과제”라고 선언하며 관심을 모았던 그였다. 회원사로 둔 크고 작은 기업의 이익 대변에만 급급한 경제단체라는 기존 평가에서 벗어나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밖에 정부나 정치권과의 소통에 힘쓰면서도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나 재계에 대한 임금 인상 요청에는 우려의 뜻을 나타내면서 경제단체장으로서 할 말은 한다는 인상을 줬다. 재계 관계자는 “무조건 재계 입장만 대변하기보다, 여론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판단력을 보이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득이란 생각을 (박 회장이) 했을 것”으로 해석했다. 이와 같은 소통에 대한 차별화된 노력이 대한상의의 위상 강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허창수 회장, 창조경제 활성화에 기여


▎2013년 준공된 전경련 신사옥 FKI타워(가운데). / 사진:전경련 제공
이에 반해 허창수 회장의 전경련은 4년 전에 비해 위상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허 회장이 전경련의 수장으로서 정부와 호흡하면서 그동안 보인 공적(功績)은 컸다. 창조경제 활성화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대표적 예다. 전경련은 2013년 7월 허 회장 주도 아래 민관 공동의 실무 추진체인 ‘창조경제 추진기획단’ 설립을 정부에 제안, 창조경제 활성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전국 각지에서 주요 대기업들이 설립, 운영 중인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전경련의 지원에 힘입어 자리를 잡았다.

정부의 규제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해 7월 기업 활동 관련 규제 개선 과제 628개를 정부에 건의해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여건 개선에 기여했다. 예컨대 전경련은 생수 생산 공장에서 탄산수 생산을 허용하도록 하는 규제 완화를 건의해 환경부가 규제를 개혁, 올해부터 탄산수 생산이 허용됐다. 지엽적으로는 2013년 말 서울 여의도의 지하 6층~지상 50층짜리 초고층 건물인 FKI타워에 전경련 신사옥 입주를 성사시킨 성과도 있다. 앞서 전경련은 회관 신축을 추진했지만 매번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업적을 이뤘는데도 티가 덜 나는 이유는 뭘까. 재계 다른 관계자는 “허 회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리더십을 갖춘 리더”라며 “요란하게 나서기보다 조용히 실천하는 성품 때문에 추진력이 부족한 것으로 비칠 수 있지만 누구보다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전경련 수장인 허 회장을 가로막는 부분은 따로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전경련 회장단의 회의 참석률이 나날이 떨어지는 등 결속력이 와해됐고, 자연히 그 위상도 이전보다 떨어졌다. 허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직을 수행하겠다는 오너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허 회장이 본의 아니게 연임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회원사들이 대내외적인 악재에 시달리면서 오너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것도 있다. 경영난에 몸살을 앓고 있거나(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법의 심판을 받았거나 받고 있고(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회장 등), 숫제 회원사 오너임에도 전경련과 사이가 껄끄러운(구본무 LG그룹 회장) 경우도 있다.

이러다 보니 1970년대 국가 경제 성장과 1980년대 서울올림픽 유치 등에 비중 있게 관여했던 전경련의 위상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에 장외(場外) 오너들도 전경련 회장단의 일원이 되기조차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전경련은 서경배 회장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등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심지어 서 회장은 서울상의 회장단에 합류하면서도 전경련 회장단 합류는 고사했다. 올 초 전경련 정기총회 때는 회원사 오너는 물론 임원급들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아 전경련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졌음을 실감케 했다. 허 회장의 ‘외로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많이 남은 임기 … 더 연임할 가능성

다만, 허 회장의 조용한 리더십이 소통의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전국 각지의 상공인들과 영세 기업인들까지 아우르는 대한상의와 달리, 전경련은 태생적으로 대기업 회원사로만 구성된 경제단체”라며 “이 때문에 허 회장이 섣불리 나설 수는 없겠지만, 과감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친재벌적인 행보만 보이다 보니 각계의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경제 민주화 이슈나 법인세 이슈 등이 불거졌을 때마다 허 회장은 박 회장과 달리 전형적인 대기업 오너로서의 입장만 밝혔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으로 재벌들에 대한 여론이 워낙 악화되다 보니 이런 행보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허 회장과 전경련이 대변하는 대기업 오너들조차도 서로 눈치만 볼 뿐, 막상 전경련에 적극 가세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허 회장은 취임 초기에도 정·재계 간 소통 강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이슈가 불거졌을 때, 당시 동반성장위원회 수장이었던 정운찬 전 위원장이 “손경식 전 대한상의 회장은 만났지만 허 회장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발언했다. 허 회장의 소통 방식이 시대적 흐름이나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상의는 특성상 대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부담감을 덜 가져도 되지만, 대기업 위주로 성장해온 국내 경제 특성상 (대한상의 보다) 전경련이 총대를 메고 더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재계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건 결국 대한상의보다 전경련”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수장이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올 2월 제35대 회장으로 연임한 허 회장의 임기는 2017년 2월까지다. 올 3월 제22대 회장으로 추대된 박 회장의 임기는 2018년 3월까지다. 여기에 두 회장 모두 더 연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아직 임기가 많이 남은 두 회장 앞에는 과제 또한 많이 남았다. 그리고 그 과제의 해결 여부는 지금까지처럼 ‘소통의 힘’으로 판가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 회장은 올 9월 8일 이례적으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 야당 지도부와 만나 남북 간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 회장도 같은 달 22일 경북 경주에서 취임 후 첫 전국상의 회장단 회의를 여는 등, 소통을 향한 두 회장의 발걸음이 한층 바빠지고 있다.

-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

1306호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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