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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에 사활 건 광주] ‘광주형 일자리’ 혁신 성공할까? 

“임금 낮출 테니 현대·기아차 공장 지어 달라” … 기존 노조, 중앙 정부 설득이 관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전경. 자동차는 광주 전체 제조업 매출의 40.6%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다. / 사진:중앙포토
“일할 곳이 없다는 말 맞아요. 그러니 젊은 친구들이 다 서울로 떠나죠. 기아자동차가 있지만 거긴 나이 든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서 새로 들어가긴 ‘하늘에 별 따기’니까. 사실 광주는 기아차와 그렇지 않은 회사로 양분돼 있어요. 임금 격차가 워낙 크니 농담으로 그런 말들을 하는 겁니다. 물가도 싸고, 부동산 가격도 안정된 편이니 연봉 3000만~4000만원만 받아도 충분하다는 말도 맞아요. 뜻대로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젊은 친구들이 고향 지키면서 살고, 광주가 더 발전하면 좋은 일 아니겠어요?”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의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노·사·민·정이 대타협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적정 임금(보통 임금 수준의 약 70~80%)’을 받는 일자리를 늘리자는 것이다. 기업은 적정 임금에 따라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근로자는 연봉 3000만∼4000만원대의 중간수준 임금을 받는 대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 받는 구조다. 간단히 말해 낮은 임금을 약속할 테니 기업들에게 광주로 와 달라는 읍소다.

‘저렴한 물가’ 연봉 3500만원 정도면…


요즘 광주는 자동차 때문에 뜨겁다. 광주시가 추진하는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조성 계획’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조만간 발표되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면 사업 설계비용 10억원을 포함해 최소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돈도 돈이지만 사업성을 인정받은 만큼 중앙 정부의 지원 속에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환경이 마련된다는 의미여서 광주 시민의 기대가 크다.

자동차산업은 광주의 중요한 경제축이다. 광주 전체 제조업 고용의 23.6%인 14만8000명(2013년)이 자동차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자동차산업의 매출 역시 11조9000억원으로 광주 전체 제조업 매출의 40.6%를 담당한다. 독일 볼프스부르크나 일본 도요타시처럼 자동차가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중심에 바로 연간 최대 생산량 62만대 수준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있다.

겉보기엔 별 문제 없지만 최근 도시 전체엔 위기감이 감돈다. 자동차 업체의 해외 공장 증설이 늘면서 정체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생산 비용 증가에 직면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대부분 지산지소(생산 지역에서 바로 소비하는 전략) 방식을 택하고 있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2006년 384만대였던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의 국내 생산량은 2014년 453만대로 17.8%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해외 생산량은 101만대에서 441만대로 무려 337%나 늘었다.

자동차를 제외하면 광주엔 이렇다 할 산업 인프라가 없다.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1인당 지역 내 총생산액(GRDP) 15위, 청년 고용률 14위 등 암담한 성적표를 감안하면 고민이 깊어질 만하다. 그래서 나온 게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조성 계획’과 ‘광주형 일자리’다. 100만대 생산도시 조성의 핵심은 자동차 집적화 산업단지다. 자동차 생산 규모를 100만대로 늘리면서 고부가 핵심부품 산업을 키워 생산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자동차 판매와 출고, 서비스를 한 곳으로 모아 국내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애프터 마켓을 열고, 인근엔 자동차 테마파크를 지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최종일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는 “광주의 자동차산업과 엔진 및 부품 제조업은 다른 지역의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광주에 부품과 완성차를 망라하는 클러스터를 만들면 다른 지역의 생산 증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광주지역 자동차 생산이 2013년 기준 47만대에서 100만대로 늘어날 경우 생산유발효과는 11조800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2조6000억원, 수출유발효과는 56억3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구상이 실현되려면 일단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현대·기아차가 새로운 라인을 광주에 짓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임금 상승과 극심한 노사 갈등에 시달려온 현대·기아차 입장에선 광주보다 해외에 끌리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을 바꿀 만한 확실한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래서 나온게 광주형 일자리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야당에선 문재인 대표가 직접 나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목을 끄는 덴 성공했지만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일단 기존 기아차 노조와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현행 체계와 맞지 않다. 물론 법인을 분리하면 영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미 독일 볼프스부르크나 일본 기타큐슈에서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래서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할 새 공장은 반드시 기존 노사협상이나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법인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기존 기아차 노조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광주시는 노·사·민·정 대통합을 담당하는 기구(사회통합추진단)까지 만들어 기아차 전임 노조위원장을 단장으로 초빙했다.

중앙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다. 박태훈 오사카시립대 교수는 “새로운 라인 증설을 결정할 때 중요한 요인은 공장 부지의 매입과 인프라 시설의 구축”이라며 “정부의 지원 없이 이러한 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조성 계획’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 추진 자체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여당 출신 대통령과 야당 출신 광역자치단체장의 간극이 아예 없을 것이란 기대는 어렵다. 이 때문에 윤 시장이 최근 국회와 정부 곳곳을 방문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중이다. 광주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로 봐 달라는 입장이다.

자동차 생산 100만대로 늘리는 프로젝트 가동

현대·기아차 설득도 관건이다. 현대·기아차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노사갈등도 문제지만 환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리는 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서도 불안감이 있다. 낮은 임금으로 시작하더라도 나중엔 결국 본사 임금과 같아질 것이란 우려다. 이 때문에 광주시 쪽에선 독립법인에 시와 시민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겠다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윤 시장은 “1997년 기아차 부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지역 경제가 한 순간에 붕괴하는 모습을 목도했다”며 “다시 한 번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 왔고, 광주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우리의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 광주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1311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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