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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 6선] 불황을 살아갈 새로운 힘을 얻다 

허니 열풍·리큐르·쿡방·속편·삼성페이·카카오택시 인기 ... 위로 받고 희망 키워 

새로운 제품·서비스·콘텐트는 시대의 유행을 낳고 우리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본지가 2011년부터 주요 연구소의 소비자 동향 조사,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 제품의 판매량과 대중적 인기 등을 종합 평가해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을 선정해온 배경이다. 2015년에는 무엇이 시대의 자화상이 됐을까.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삶이 팍팍해진 탓인지 실용적인 제품과 콘텐트가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허니 열풍은 여전히 뜨거웠고,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부가 서비스가 눈길을 끌었다. 향수를 자극하는 속편이 줄을 이었고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쿡방도 호평을 받았다.

1988년 열여덟 ‘바둑천재’ 택이가 대회 우승상금으로 받은 금액은 5000만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어디에 투자하는 게 가장 좋을지 의논한다. 일산 땅을 사라, 강남 아파트를 사라 설왕설래하는 가운데 은행원 덕선이 아빠가 안전한 은행 적금을 권한다. 그러자 정환이 엄마가 하는 말. “은행이자 그거 뭐 얼마나 한다고. 금리가 15% 밖에 안 되는데.”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온 한 장면이다. 2015년 1%대 ‘저금리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15% 금리는 딴 세상 이야기 같다. 5000만원을 저금하면 1년에 750만원이 이자로 나오던 시절. TV 드라마를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그 때가 좋았지!”

말 그대로 ‘좋은 시절’은 다 갔다. 2015년도 최근 몇 년과 다름없이 어려웠다. 가뜩이나 쪼그라든 살림살이에, 6월 전역에 불어닥친 메르스 사태는 심리적인 불안감까지 키웠다. 본지는 2011년부터 한국인의 삶을 바꾼 히트상품을 선정해왔다. 다섯 해를 관통한 키워드는 ‘불황’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년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제품과 콘텐트가 빛을 봤다. 지난해 히트상품은 해외직구 열풍과 셀카봉·배달앱이었다. 위기를 극복할 강한 리더를 갈망하며 영화 [명량]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았고,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미생]을 보며 위로를 얻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주요 경제연구소의 소비자 동향 조사,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 제품의 판매량과 대중적 인기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히트상품을 선정했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이어진 허니 열풍을 비롯해 리큐르·삼성페이·쿡방·속편·카카오택시가 2015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히트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히트상품의 특징으로는 새로운 제품(작품)이 큰 인기를 얻기보다는 기존 플랫폼을 잘 활용한 제품이나 원작에 기댄 속편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계속된 경기 침체에 업계 역시 무리한 투자보다는 실속을 챙긴 모습이다.

신제품보다는 기능 강화, 신작보다는 속편

허니 열풍을 이끈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은 기존 감자칩에 꿀을 함유한 것에서 비롯됐다. 감자칩이라는 너무도 익숙한 과자에 꿀을 넣는 아이디어로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꿀맛 과자가 인기를 끌자 꿀을 넣은 다양한 식음료와 화장품이 등장했다. 인터넷 상에서도 ‘재미있다’와 꿀을 결합해 ‘무척 재미있다’는 뜻의 ‘꿀잼’ ‘허니잼’ 등 신조어가 생겨나며 허니 열풍을 실감하게 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연동한 결제 방식인 ‘삼성페이’도 기존 제품에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한 예다. 스마트폰에 삼성페이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결제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2011년 본지가 꼽은 히트상품 중 하나가 카카오톡이었다. 이전까지 문자나 전화 중심이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시지 전달 기능에 충실했던 초기와 달리 이제는 안정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쇼핑·게임·결제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그중 가장 돋보인 서비스가 ‘카카오택시’다. 카카오택시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택시 호출 앱이다. 지난 3월 출시 후 6개월 만에 누적 호출 건수 2000만 건을 돌파했다.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를 조명한 [응답하라 1988]를 비롯해 향수를 자극하는 속편의 활약도 대단했다. [스타워즈] [쥬라기 월드]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 시리즈 속편이 개봉돼 전편 못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 문화 콘텐트 생산에서도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한 움직임이 뚜렷했다. 유통 업계에서도 복고 제품의 출시가 잇따랐다. 롯데제과는 1980년대 당시 제품 디자인을 재현한 초콜릿 패키지를 내놨고, LS네트웍스는 운동화 브랜드의 30년 전 인기 모델을 재출시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히트상품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일상적으로 혼자 밥을 먹거나(혼밥족) 집에서 나홀로 술을 마시는 사람(혼술족)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콘텐트와 제품이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혼밥족의 주요 메뉴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배달음식 등 간편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달랐다. 이왕 먹는 밥, 혼자라도 맛있고 건강하게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요리하는 방송 ‘쿡방’을 통해서다.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 탓에 외식을 줄인 대신 쿡방을 보고 손수 요리하는 즐거움을 흠뻑 빠진 것이다.

술값이 부담스러워 홀로 독한 소주만 들이키던 애주가들에게는 다양한 리큐르의 등장이 반가운 한 해였다. 집에서 와인 한 잔 하듯 가볍게 마시기 좋은 과일맛 소주가 주류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청년층과 젊은 여성의 인기를 끌며 전체 소주 소비량을 늘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예년의 히트상품 트렌드가 불황 속 작은 행복을 찾는 데 맞춰졌다면 올해는 장기화된 어려움에 오히려 단련된 모습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과거를 그리워하다가도 실용적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손수 만든 집밥과 달콤한 술 한 잔으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1314호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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