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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센터링 경제학⑮ 경제 저성장과 탈(脫)압박 전술] ‘원맨’ 지고 ‘팀플’ 뜨다 

압박수비 뚫는 팀 단위 전술 … 저성장 탈출 전술 이끌 정치력 절실 


▎현대 축구의 압박수비 전술은 팀 전체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며 상대 선수를 2중 3중으로 에워 싸는 것이 특징이다. / 사진:중앙포토
축구에서 감독의 역량이 경기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정확한 수치로 나타내긴 어렵다. 그렇지만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흔들리던 팀이 감독 교체 후 완전히 달라졌다거나, 반대로 잘 나가던 팀이 감독이 바뀐 뒤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흔하다.

과거 축구는 한 두명의 스타가 경기를 좌우했다. 마라도나나 펠레 같은 선수 한 두 명이면 우승이 어렵지 않았다. 이 시대의 골·어시스트 등 개인 기록이 잘 깨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메시와 호날두는 지구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외로 치자).

이는 축구의 시대적 흐름과 관계가 깊다. 수비보다는 공격을, 전체 전술보다는 개인 전술에 집중했던 당시 흐름에 따른 영향이다. 특히 수비 전술의 차이가 크다. 과거 축구는 1대 1 마크에 가까웠다. 수비수 한 명이 뚫리면 다음 수비수가 막아서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차륜전(車輪戰)을 벌이는 셈이다. 공격수 입장에서 두 명을 동시에 제치는 것보다 한 명씩 두 번 제치는 게 쉽다. 개인 능력이 좋은 선수 한 명이 화려한 드리블로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내고, 팀과 대회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다.

갈수록 거세지는 압박수비와 경제 저성장


1990년대를 거치며 흐름은 바뀌었다. 대회 규모가 커질수록 안전하고 실리적인 경기 운영이 중시됐고, 그런 가운데 압박수비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압박수비는 단순히 공격수에게 달라 붙어 수비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팀 전체가 한 덩어리가 돼 선수 간 간격을 유지하면서 공간을 나눠 막는다. 각자의 공간 안에 들어오면 다 함께 움직여 공을 잡은 공격수뿐 아니라 공을 받을 수 있는 상대 선수까지 2중 3중으로 에워싼다. 1대 1마크의 차륜전과 달리 진을 치고 상대를 기다린다.

압박전술에 대한 연구와 발전으로 수비망은 더욱 촘촘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간격이 좁아진 만큼 반대로 공격을 위한 공간은 만들어내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두 세 명이 진을 치고 있는 수비진을 공격수 개인이 무너뜨리며 결과물을 얻어내는 건 힘든 일이다.

축구에 팍팍한 압박전술의 시대가 왔다면, 글로벌 경제는 구조적인 저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축구에서 공격수의 적이 수비수라면, 경제 성장의 적은 ‘변수’다. 21세기 경제환경은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심지어 이들 변수는 축구의 압박전술처럼 한 몸이 돼 움직인다. 금리, 환율, 환경, 과학기술, 부채, 인구 구조, 교육, 일자리, 리더십 부재가 얽히고 설켜 있다. 그만큼 개인기로 빠져나가기도 힘들다. 각 분야별로 유용했던 과거의 해결 공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파란 불을 켜는 데 썼던 버튼을 누르면 이제는 파란 불은 켜지지 않은 채 다른 곳에서 빨간 불이 들어온다. 예컨대 과거에는 금리를 내리거나 돈을 찍어내면 당장 인플레이션 걱정을 할 정도로 경기가 살아났다. 지금은 같은 방법을 써도 경기가 꿈쩍도 않고, 애먼 가계부채만 늘어난다.

개별 선수의 영향력도 줄었다. 특정 업종, 기업 하나의 실적이 좋아져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친다. 소수 기업이 국가 경제나 글로벌 경제를 끌고 가기에는 저성장의 파고가 너무 높다. 결국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세계 경제는 극심한 골 가뭄, 즉 저성장의 망망대해에서 표류 중이다.

축구에서 유기적이고 조직화된 수비를 상대로 공간을 찾고 골을 만들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은 압박보다 더 유기적이고, 더 조직화된 공격이다. 이른바 탈(脫)압박 전술이다. 선수의 포진 형태인 포메이션을 비롯해 패스 방향, 전진 속도, 개개인의 임무 부여 등 서로의 움직임에 대한 철저한 사전 약속이다. 팀 단위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팀 단위의 탈압박을 하는 것이다.

탈압박 전술에 정답은 없다. 각 팀은 각자에 맞는 방식을 고안해 쓴다. 티키타카 같은 선수 간 짧고 빠른 패스일 수도, 상대 압박의 덫을 한 번에 건너가 버리는 긴 패스일 수도 있고, 측면에서 선수의 속도를 살린 침투작전 일수도 있다. 자기 팀 사정뿐 아니라 상대 압박전술의 형태에 따라서도 변화를 준다. 이렇게 축구 전술이 진화한다.

축구가 빠르게 변해가는 것에 비해 경제 시스템은 발이 느린 편이다. 고립적 공격 패턴을 적용하면서 현대의 압박수비를 돌파하길 원한다. 어불성설이다. 선수 기용도 그렇다. 과거 우리 경제에는 펠레와 마라도나가 있었다. 수출을 주도한 대기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펠레와 마라도나 위주의 전술을 짠다.

아니, 사실 전술이랄 것도 없다. 그냥 이들에게 공을 몰아준다. 스타 플레이어가 제 몫을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면, 볼 터치 기회가 많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더 몰아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다 스타 플레이어 한 명이 압박수비에 막혀 부진하면 팀 전체가 휘청거린다.

경제가 저성장을 벗어날 탈압박 전술을 짜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몸에 맞는 전술을 찾지 못해서? 아이디어의 부재는 아닌 듯하다. 좋은 아이디어는 넘쳐나지만, 여러 이해당사자를 묶어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할 만한 정치력이 없다. 이는 우리 경제만의 고민은 아니다.

유로존 내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를 분석한 [유로존 경제위기의 사회적 기원]에 따르면 독일과 달리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위기를 겪은 이유는 과도한 복지가 아니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치적 무능이다. [21세기 자본론]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역시 여러 칼럼을 통해 ‘서로 얽혀 있는 유럽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EU의 높은 단계의 정치 통합과 유럽중앙은행의 역할 확대로 정책 추진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명·조율 없는 전술은 실패 가능성 커

탈압박은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팀 전술을 조직하는 건 감독의 역량이다. 서두에서 선수 개인을 포괄해 팀으로 하나로 묶는 지도자의 시대가 왔다고 언급한 이유다. 감독은 보유한 선수의 역량과 특징, 상대 압박전술의 특징에 맞게 전술을 고안하고 그에 맞게 훈련을 시킨다. 시대에 맞는 전술 역량을 갖춘 감독도 중요하지만, 그걸 실행할 만한 선수단 장악 능력도 필요하다. 선수들의 심리 조절과 동기 부여도 감독의 몫이다.

해당 전술로 주축이 될 선수와 소외될 선수 간의 조율과 설득의 과정이 팀 전체의 사기를 북돋고 감독이 추구하는 바에 추진력을 더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 철학과 방향, 전체 얼개를 선수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술은 몰라도 되고 넌 공 오면 이렇게만 하면 돼” 식의 탈압박 전술은 성공 가능성이 작다. 우리 경제가 지금 딱 그짝이다.

- 함승민 기자

1315호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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