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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어디로 | 북한 경제는] 36년 만의 당 대회 개최는 ‘경제 자신감?’ 

4년 연속 플러스 성장... 평양·특권층에 국한된 ‘착시현상’ 반론도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2016년 집권 5년차를 맞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새로운 중장기 비전을 제시해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경제·핵 병진노선을 전면 수정하지 않으면 경제개혁을 이루긴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10월 북한 노동당 정치국은 “2016년 5월에 7차 당 대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예정대로 열린다면, 6차 당 대회 이후 무려 36년 만이다. 이 발표에 담긴 메시지는 간단치가 않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김일성) 수령님께서는 경제 문제만 풀리면 언제든 당 대회를 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5년마다 열리도록 규정된 당 대회는 1980년 10월 6차 대회 이후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7차 당 대회 개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이 경제 성장에 자신감을 가졌다는 뜻이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들은 연일 당 대회 준비 분위기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당 대회를 빛나는 대정치 축전으로 빛내자’라는 구호를 제시하면서 특히 경제 부문을 강조한다.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국가 건설에 대비약을 일으켜나가도록 하겠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당 대회 개최 대대적 홍보


북한은 당 대회 개최의 구체적인 배경이나 의제 등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언급을 토대로 살펴보면 ‘북한이 경제난에서 상당 부분 벗어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계획 청사진도 제시하고 김정은이 강조해온 인민생활 향상의 비전도 밝힐 것이란 전망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의 경제 사정은 당 대회를 개최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은행이 추계한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0.8%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후 2012년 1.3%, 2013년 1.1%, 2014년 1%에 불과하다. 겨우 마이너스 성장을 면할 정도란 얘기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북한 경제가 1990년대 중후반처럼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건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특별히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중장기 경제계획이나 비전을 제시하기에도 역부족이다. 북한은 1993년 12월 노동당 6기 21차 전원회의에서 제3차 7개년 계획(1987∼93)이 목표에 미달했음을 자인했다. 이에 따라 3년간(1994∼1996)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완충기’로 설정하고 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를 경제개발의 전략적 방침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에 대수해까지 겹쳐 사태가 더 꼬이자 이후 경제계획과 관련해서는 침묵해왔다. 이런 상황에 획기적으로 긍정적인 요소가 나타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정부 당국과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이 당 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정책노선이나 경제계획을 제시할 가능성은 있다. 경제 분야에 주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지만 비전 제시 쪽에 무게를 둘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일각에서는 개혁·개방 노선의 제시나 핵 포기와 관련한 중대한 조치가 나올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 이후 밟아온 궤적을 살펴보면 코페르니쿠스적인 변동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3월 제시한 경제·핵 병진 노선에서 이탈해 김정은이 변화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는 측면에서다.

경제·핵 병진노선은 핵 보유로 재래식 무기에 투입될 군사비를 덜 수 있게 됐으니 이를 민생경제에 돌리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북한 스스로 최고인민회의 예산결산에서 국방비 비중이 2013년 16.0%(실제는 은닉예산 포함 30% 수준)에서 2014년에는 15.9%로 겨우 0.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북한의 공식자료를 봐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김일성이 1962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핵 개발에 엄청난 돈이 드는데다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북핵은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중국까지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김정은 정권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김정은의 통치자금 흐름까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등 돈줄 차단에 주력하고 있는 점도 북한 경제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해외에서의 북한 외화벌이 루트를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정은 패밀리의 해외 비자금이나 불법자금도 추적 중인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뿐 아니라 미사일 등 대량살상 무기의 해외 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머쥐고 있다. 검은 거래를 통해 얻은 수익의 상당 부분이 김일성과 김정일 비밀자금으로 해외 계좌에 보내졌고 이를 김정은이 물려받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물론 최근 들어 ‘북한 경제가 좋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나 우리 정부의 5·24 대북조치에도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고 주장하며 무용론을 펼치기도 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식량 사정이 좋아지는 등 상황이 호전됐다는 일부 통계자료도 제시된다. 그동안 북한 경제상황을 설명할 때 관용구처럼 써온 ‘만성적인 경제난’이란 표현이나 식량과 에너지, 외화(달러)의 부족을 일컫는 ‘3난(難)’이란 말도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경제나 민생 전반이 좋아진 게 아니라 평양 등 일부 지역과 특권층에 한해 벌어지는 일종의 ‘쇼윈도’ 효과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특권층만을 위한 체제 운영을 하다 보니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이 ‘1% 공화국’이 돼 버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른바 균빈(均貧)의 붕괴다. 지방의 경우 이런 혜택과 거리가 있고, 식량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식량 상황의 경우 국제기구나 구호단체에 따라 추정치가 엇갈리고 있어 단정하기 어렵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3년 넘도록 손에 잡히는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 2015년 신년사에서 “인민생활 향상에서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 대목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농산·축산·수산을 3대 축으로 제시하며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야말로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핵 문제는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

김정은 체제는 2016년 집권 5년차를 맞는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새로운 중장기 비전을 제시해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시점이다. 손에 잡히는 체감형 정책이나 실적이 절실하다. 하지만 안팎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핵 문제는 북한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 가장 중요한 경제개혁은 주변국과의 긴장 완화”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 않고는 북한 경제의 안정적 성장이나 민생증진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군사비 부담을 줄이고 외부로부터 자본과 기술·시장을 확보하려면 비핵화 궤도로의 복귀가 이뤄져야 한다. 경제·핵 병진노선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정은이 핵과 경제개발을 양손에 쥐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딜레마에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1317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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