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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조업의 제왕 독일] 판 뒤집고 룰 만들고 핵심 기술 장악 

中·日 따돌리려면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 벤치마킹할 만 

한국 제조업에 위기감이 퍼질 때면 대개 중국·일본·미국과의 수출 경쟁과 역학관계를 따지곤 한다. 이들 못지 않게 경계해야할 대상이자 위기 탈출을 위한 타산지석 대상으로 삼을 만한 나라가 있다. 바로 세계 수출 ‘빅4’ 중 하나인 독일이다. 독일은 중국과 일본 못지 않게 우리와 비슷한 수출 품목으로 경쟁하는 사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쟁력이 탁월하다. 이들은 판을 뒤집고 새로운 룰을 만들고 핵심 기술 장악해 시장을 호령한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일본을 넘어서기 위해 독일 제조업이 왜 강한지,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한국 수출은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단 한 달도 전년 동월 대비 수출이 증가하지 않았다. 2011년 세계 아홉 번째로 달성한 무역 1조 달러 반열에서도 탈락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잠정 집계한 지난해 수출액은 5272억 달러(약 632조 원)다. 전년 대비 7.9% 줄었다. 유가·원자재 가격 급락 등이 영향을 미쳤지만, 우리나라 수출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 경쟁력 약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나빠지면서 ‘샌드위치 위기론’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치고 올라오는 중국 제조업, 엔저를 기반으로 다시 성장하고 있는 일본 제조업 사이에 끼어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전에는 단순히 중국의 싼 가격, 일본의 기술력에 밀린다는 공포였다. 이제는 다르다. 중국에 기술을 추격받고 일본에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신세다. 샌드위치를 넘어 ‘샌드백’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리쇼어링(Reshoring)으로 미국의 제조업이 살아나면 중국뿐 아니라 미국 시장마저 놓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불황형 흑자로 제조업 위기론 팽배

이들 못지 않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자 위기 탈출을 위한 타산지석 대상으로 삼을 만한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지난해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태를 겪었지만 비교적 무사히 위기를 넘겨 건재함을 과시했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3년 6.5%에서 2014년 7.6%로 증가했다. 폴크스바겐 사태에도, 지난해에는 7.9%로 사상 최대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수출이 올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독일 연방무역협회(BGA)는 중국 경기 둔화에도 유로화 약세에 따라 독일 수출이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BGA는 내년 수출을 6% 증가한 1조1910억 유로(약 1533조원)로 내다봤다. 수입은 4% 늘어난 9470억 유로(약 1219조원)로 예상하며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안톤 보어너 BGA회장은 “독일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수출 및 수입 실적을 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독일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은 아니다. 독일은 중국·일본 못지 않게 국내 제조업과 경쟁하는 수출 품목이 점차 늘고 있다. 독일 하면 자동차를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독일의 수출 품목은 기계·생활가전·주방용품·유아용품·화장품·제약 등을 망라한다. 한국의 수출에서 상위 10대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38.8%에 달하는 것에 비해 독일의 수출 상위 10대 품목 의존도는 17.3%에 불과하다. 수출 품목이 다양한 만큼 필연적으로 한국과 겹칠 수밖에 없다.

양국 간 수출입 현황을 보면 갈수록 대(對)독일 수출은 줄고 수입은 증가하는 추세다. 무역수지 적자폭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만큼 독일에 팔 물건은 줄고, 독일로부터 살 물건은 늘어 간다는 얘기다.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도 치열하다. 중국은 독일에도 큰 시장이다. 독일 입장에서는 네 번째로 큰 손님이다. 2014년 독일·중국 간 무역 규모는 1540억 유로(약 198조원)다. 독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5%다. 2014년 중국으로의 수출액은 825억 달러(약 99조원). 2008년 이후 두 배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중국 수출액은 3.3% 증가에 그쳤다. 약 5200개 독일 기업이 중국에서 활동 중이다.

독일은 지금까지 중국에 주로 생산설비·기계부품·반도체 등 중간재를 수출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수입 품목이 소비재로 옮겨가면서 중간재뿐 아니라 환경·청정, 화장품·위생, 영유아 용품, 식음료 제품, 의료용품 등 소비재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우리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있거나, 향후 진출을 계획 중인 분야다.

지난해 중국 소비재 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둔 국내 업체는 대부분 고품질·프리미엄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최근 중국의 로컬브랜드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가격 대신 품질로 차별화하고 눈높이가 높아진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독일의 전략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 중국의 하이엔드 소비자를 두고 독일과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대로라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한국 수출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중간재에 있다. 2014년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은 자본재 비중이 67.3%다. 소비재 비중은 5.3%에 그쳤다. 일본 10.7%, 미국 10.3%, 독일 9%인 대중 소비재 수출 비중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그만큼 내수 위주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달리 독일은 개별 제품의 경쟁력이 탁월하다. 독일은 시장 1위 품목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다. 세계 시장 1위, 또는 점유율 50% 이상인 제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미텔슈탄트)은 1300여 곳에 달한다. 미텔슈탄트는 독일 전체 노동력의 70% 이상을 고용하고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물론 한국은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지리적 접근성 등의 유리함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품질과 브랜드 파워로 승부한다고 가정하면 아직 열세인 게 사실이다.

결국 지금 한국 제조업은 중국·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일 뿐만 아니라 독일의 공세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제조업 입장에서는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제조업이 왜 강한지,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경쟁상대이자 타산지석의 대상으로서 독일이 어떤 전략을 쓰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제조업 혁신의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

1970년대 당시 독일 제조업은 그야말로 샌드백 신세였다. 일본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수출 기업과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고 가격 경쟁에 밀리면서 크게 위축됐다. 독일 업체들은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변신을 시도하는 전략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때 쌓은 경험과 기술력이 2000년대 들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2000~2012년 전 세계 수출액에서 일본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8%에서 4.7%로 떨어졌지만, 독일은 9% 내외의 비중을 유지했다. 유럽 주요국들이 금융위기에 흔들리던 시기에도 유일하게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당시 독일 제조업 위기 극복은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의 산업정책과 노동개혁은 제조업에 활기를 넣었다. 운도 좋았다.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과 약세라는 거시환경의 변화는 독일 제조업 회생이 주요 요인이다. 유럽 역내 국경이 낮아지면서 생산기지를 동유럽으로 확대될 수 있었던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주목할 점은 독일 개별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다.

1970년대에 독일 제조업도 샌드백 신세

당시 독일 제조 업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로 정립했다. 본지는 이를 ‘룰 세터(Rule Setter)’ ‘스마트 매뉴팩처(Smart Manufacture)’ ‘키 컴퍼니(Key Company)’로 분류했다. 룰세터는 전통적인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 기업이다. 이들은 제품의 뛰어난 기능성·실용성·내구성을 바탕으로 시장을 자신의 뜻대로 지배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해당 시장이 나아갈 방향성까지 제시한다. 키 컴퍼니는 해당 분야의 핵심 기술력을 보유한 강소기업이다. 이들은 산업 전체를 좌우할 만한 핵심 기술을 통해 협상력과 수익성을 높인다. 원청업체의 눈치를 보고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당하는 국내 하청업체와 입장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생산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 제조업 위기 극복을 시도하는 스마트 팩토리·매뉴팩처 기업이다. 특히 최근에는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 함승민 기자 ham.seungmin@joins.com

1318호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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