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거리로 나가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1월 18일 직접 서명했다. 대통령이 민간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노동개혁법과 경제활성화법 등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며 국회를 압박해온 박 대통령의 이번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과 함께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옹호론이 맞선다. 5월 29일 임기가 만료되는 19대 국회는 얼마나 많은 경제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걸까. 경제법안 입법 현황을 조사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 사진:중앙포토 |
|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8일 입법촉구 서명운동에 참여한 뒤, 여당 의원들이 줄줄이 동참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법을 만들고 고치는 권한을 부여받은 국회의원들이 거리로 나가 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하는 꼴이다. 입법 제·개정은 국회의 권한이자 의무다. 국회 홈페이지에는 ‘법치 국가에서 법률은 모든 국가 작용의 근거가 되므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연 19대 국회의원들은 ‘본질적인 권한’을 잘 수행했을까.
본지는 19대 국회의 경제법안 처리 현황을 조사했다. 이번 서명정치 파문의 중심에 노동개혁법과 경제활성화법 등 경제법안이 있기 때문이다. 조사는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19대 국회 개원일(2012년 5월 30일)부터 지난 1월 10일까지 경제법안만 따로 뽑아 분석했다.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7개 상임위원회(기획재정위·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산업통상자원위·국토교통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보건복지위·환경노동위) 소속 국회의원 164명이 대표발의한 법률안을 대상으로 했다.
164명이 9155건 발의지난 1320일 동안 7개 상임위 소속 164명이 발의한 경제법안은 9155건이다. 한 명당 55.8건이다. 그러나 발의한 법안 10건 중 7건은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계류 중인 법안만 6113건, 가결률은 33.2%다. 경제법안 가결률은 같은 기간 국회 전체 성적(가결률 36.5%, 발의 1만6500건 처리 6023건)보다 낮았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 가결률(66.3%)보다는 2배 낮은 수치다. 본지는 원안·수정가결은 물론 다른 법안과 묶여 함께 처리된 대안 반영폐기도 가결로 계산했다.
가결률, 새누리당이 더민주당보다 높아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8일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입법촉구 서명 운동에 직접 서명했다. / 사진:중앙포토 |
|
정당별로 보면 발의건수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많았다. 더민주당은 73명 의원이 4925건을 발의했다. 새누리당은 86명이 4006건의 법안을 냈다. 가결률은 새누리당(36.9%)이 더민주당(30.6%)보다 높았다. 정의당은 3명 의원이 159건을 발의해 21.4%의 가결률을 기록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더민주당이 3417건이다. 그러나 일부 의원이 입법 촉구 서명운동에 나선 새누리당이 낸 법안 중 2526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상임위별로 보면 국토위가 659건으로 가장 많은 법안을 처리했다. 다음으로는 복지위(541건)·산자위(497건)·기재위(433건)·농축산위(396건)·미래위(323건)·환노위(193건) 순이다. 가결률 역시 국토위(36.2%)가 가장 높았다. 그러나 국토위는 계류 법안도 1160건으로 가장 많아 오점을 남겼다. 상임위 중 가결률 2위는 농축산위(33.2%), 공동 3위인 미래위·산자위는 32.5%였다. 기재위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기재위 소속 의원 25명이 발의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법안은 1064건으로 국토위 다음으로 많다. 가결률은 28.9%에 그쳐 7개 상임위 중 가장 낮았다. 국회의원 한 명당 평균 가결건수는 복지위가 27.1건으로 1위였다. 2~3위는 국토위(21.3건)와 농축산위(20.8건)이다. 7개 상임위 국회의원이 1320일 동안 평균 18.7건을 처리했다. 또한 비례대표가 지역구 의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법안을 발의했고, 계류도 많았다. 비례대표 27명은 평균 59.1건을 발의했고 38.5건의 법안을 처리 못했다. 지역구 의원 136명은 평균 46.3건을 발의해 31.2건이 계류 중이다.
개인별 가결률 이한구·오영식·강석호 순7개 상임위 소속 의원 개인별로 보면 이한구(새) 의원이 가장 높은 가결률을 기록했다. 74건을 발의해 53건(71.6%)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영식(민) 의원은 발의 25건 중 16건이 가결됐다. 가결률 64%로 2위다. 다음은 강석호(새, 62.5%), 문정림(새, 59.7), 여상규(새, 56.5%) 의원 순이었다. 더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한 유성엽·문병호 의원은 각각 가결률 10.9%, 11.3%로 최하위였다. 유성엽 의원이 발의한 법안 64건 중 7건 만 국회를 통과했다. 가결률 최하위 1~10위에는 새누리당이 1명, 더민주당(탈당 의원 포함) 7명, 정의당 2명이 포함됐다. 반면 가결률 상위 10위 안에는 새누리당이 9명, 더민주당이 1명이었다. 가결건수에서는 김우남 더민주당 의원과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1·2위였다. 김 의원은 90건, 이 의원은 84건을 가결시켰다. 김태원(새, 72건), 주승용(무, 68), 남인순(민, 61건)은 가결건수 상위 3~5위를 차지했다.19대 국회는 입법 남발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7개 상임위 위원 중 발의건수가 100건이 넘는 의원이 24명이나 된다. 특히 가결건수 1~2위인 이명수·김우남 의원은 각각 261건, 237건을 발의했다. 5~6일에 한 건씩 법률안을 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계류 건수도 많다. 두 의원을 합치면 324건이다. 이들을 포함해 계류법안이 100건 넘는 의원만 9명이다. 50건을 남긴 의원은 31명이다. 이 법안들 상당수는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될 운명이고, 20대 국회 때 또다시 발의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낭비도 없다.
-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