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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로 바뀌는 세계 경제지도 | 한국 기업의 ‘中 기업 M&A’는 지금] 세제 혜택 줄고 규제는 강화되고 

인건비 오르고 경쟁도 격화 … 중국 기업 인수 매력 떨어져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ongang.co.kr

“중국 사람들이 셔츠 길이를 1인치만 늘려도 영국의 모든 방직공작은 30년 더 돌아야 한다.” 1840년 영국 의회를 장악한 휘그당의 주전론자들은 중국의 거대한 소비시장을 아편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20척의 함선과 4000여 명의 군인만으로 대륙을 제압한 영국은 중국과 남경조약을 체결한다.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는 한편 상하이를 비롯한 5개 항구 개항, 독점무역 폐지, 수출입 관세 책정 등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사실상 중국 시장을 장악했다. 당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중국을 지배하는 자가 19세기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21세기에도 13억 인구의 중국 내수시장은 값어치가 대단하다. 특히 인구나 경제 규모 면에서 19세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2020년에는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중국 내수시장 커지는데 M&A 건수 줄어

무척 매력적이지만 중국 내수시장을 장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은 제품의 규격과 소비자의 욕구·문화·소비패턴이 다르다. 자동차를 팔아도 중국인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춘 제품을 생산할 공정과 공장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비용과 리스크 증가를 수반한다. 국내 생산품을 중국으로 가져가는 물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좀 더 쉬운 방법은 없을까.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는 쉽고 빠른 길은 현지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이다. 과거 원재료 수급과 인건비 등 생산비용을 아끼기 위해 현지 기업을 인수했던 시절과는 양상이 달라졌다. 이제는 대상 업체가 보유한 고객 정보와 배송망, 업무 관행 등의 노하우를 한번에 흡수하기 위해 M&A에 나서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9월 중국 최대의 냉동물류 회사인 룽칭물류를 인수했다. 인수가는 4550억원. 이 중 2300억원은 단기 차입했다. CJ대한통운이 이 회사를 사들인 건 중국 내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의 소비·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 룽칭물류는 중국 전역에 48개의 터미널과 30만㎡ 규모의 물류센터 22개, 냉장냉동·화학약품·일반운송 등에 필요한 1800여 대의 차량을 보유, 운영 중이다. 1500여 도시를 잇는 배송망을 갖춘, 중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민영 물류기업이다.

CJ제일제당 역시 중국 바이오기업 메이화성우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메이화성우는 현지 MSG(L-글루타민산나트륨)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인수 대금만 1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CJ제일제당은 글로벌 바이오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는 한편 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M&A가 성사되면 CJ제일제당은 중국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CJ의 경우처럼 현지 기업 인수는 당장 소비시장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 2010년대 이후 중국 소비시장은 매년 5%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중국 내수시장 진출이 어렵다면 중국 기업을 M&A하거나 지분을 매입해 활로를 뚫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국내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는 날이 갈수록 부진한 편이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을 사들인 건수는 지난 2011년 179건에서 2013년 156건으로 줄더니, 2014년 76건, 2015년 45건으로 뚝 떨어졌다.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 등 이유는 다양하다.

특히 최근 한국 기업의 중국 기업 M&A가 부진한 이유로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도 꼽을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과거 세제 혜택 등을 주며 외자 유치에 적극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과잉 투자 등을 우려해 긴축으로 돌아섰다. 중국 공산당은 2014년 10월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 회의에서 과잉 공급을 줄이고 내수가 이끄는 경제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 계획을 밝혔다. 제조업과 중간재 수출에 의존하던 한국 기업으로선 악재를 만난 것이다.

법인세 25% 부과 등 외자 혜택 종료

신창타이는 세제·정책·경제구조 등 여러 측면에 파장을 일으키며 국내 기업의 M&A 시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 중국은 2014년 말 각 지방정부에 외국 기업에게 적용하던 세금 감면과 각종 우대 혜택을 재검토하고 25%의 법인세를 즉시 부과할 것을 지시했다. 폭스콘의 경우 정저우시가 20억 위안(약 3667억 원)의 세금 감면을 약속했지만 시가 일방적으로 혜택을 철회하겠다고 밝혀 큰 혼란을 겪었다. 중국 정부는 이런 조치를 통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방정부의 세수 확보 등 여러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외국 기업의 법인 인허가를 비롯한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도 높아지고 있다. 한 중견기업 임원은 “과거 외자 유치로 만든 기업과 공장이 세계화되면서 이제는 과잉 투자를 우려하는 분위기”라며 “인건비 상승과 세율 인상,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 문화가 뚜렷해지고 있어 승부를 걸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빌딩을 세운다면 과거엔 토목공사를 시작한 후 안전·환경 평가를 했지만 이제는 사전 심사를 통과해야 삽을 뜰 수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이후 달라진 점이다. 롯데가 최근 홍콩의 명물인 허유산 망고주스를 인수하려다 포기한 데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롯데는 허유산의 높은 수익성과 브랜드 가치, 국내외 수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독자 법인을 설립하거나 인수를 해도 지분의 90% 밖에 가질 수 없다는 점도 중국 기업을 인수할 매력을 떨어뜨린다.

중국 경제의 급격한 체질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도 현지 M&A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중국은 내수 중심 경제체제로의 변화를 선언하면서 해외직구·해외여행에 쏠린 중국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드는 한편 자체 소비시장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와 연구·개발(R&D)은 물론 중서부 지역 개발까지 아우르는 중장기 플랜을 세웠다. 역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동남아로 이어지는 경제구역을 만들어 신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지 기업의 부침과 이합집산 등 시장 상황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만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전체적인 경제 운용 방향이 거시경제 관리의 틀 속에서 구조개혁을 벌이고 있어 양자가 충돌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ongang.co.kr

1320호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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