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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정 20년’ 이랜드의 새로운 도전] 백화점 틈새에서 10억 대중의 지갑 노려 

위기설에도 상하이에 복합 쇼핑몰 1호점 열어... “中 백화점·패션산업 둔화 전망” 

상하이=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1월 15일 중국 상하이 창닝지구에서 문을 연 이랜드그룹의 도심형 복합 쇼핑몰 ‘팍슨-뉴코아몰’. / 사진:중앙포토
“문 열렸다, 뛰어!” 오전 10시 매장문이 열리자 길게 줄을 서 있던 인파가 소리를 지르며 쇼핑몰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매장 내부에선 걸그룹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같은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니스프리·난닝구·티니위니·스코필드 등 한국 브랜드숍이 즐비하다. 지난 1월 15일 중국 상하이 창닝 지구에 자리한 이랜드그룹의 도심형 복합 쇼핑몰 ‘팍슨-뉴코아몰’의 내부 모습이다.

이랜드그룹은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에 본사가 있는 바이성(百盛, 영어명 팍슨)그룹과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을 설립했다. 그로부터 5개월 만에 중국 내 유통 1호점의 공식 오프닝 행사를 열었다. 바이성그룹이 4년 간 운영하던 백화점을 5개월 동안 300억원을 들여 리뉴얼했다. 팍슨이 건물과 자본금을 제공했고, 이랜드가 200개의 콘텐트로 매장을 채웠다. 명품 직매입 매장과 SPA(기획·생산자가 유통·판매까지 하는 브랜드), 편집숍, 외식 브랜드 등으로 구성했다. 이랜드와 팍슨의 지분 비율은 51대 49다. 지난 12월 19일 일부 패션관을 먼저 개장한 팍슨-뉴코아몰의 이날 하루 매출은 기존 팍슨백화점보다 5배 많은 1525만 위안(약 27억4500만원)을 기록했다. 오진석 팍슨-뉴코아몰 지점장은 “가오픈 후 하루 평균 1만5000~2만 명의 고객이 이곳을 찾았다”며 “월 매출은 당초 목표로 잡은 200억원을 넘어 240억원 정도를 기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하루에만 14만 명이 쇼핑몰을 찾을 정도로 중국인의 반응은 뜨거웠다. 쇼핑객 장샤오칭(28)은 “중국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한국 패션 브랜드가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팍슨-뉴코아몰 1호점을 시작으로 올해 10개의 유통점을 더 낼 계획이다. 새로 건물을 신축해 출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기존 백화점을 리뉴얼할 방침이다. 1호점의 경우 5개월이 걸렸지만 2호점부터는 2~3개월에 한 곳씩 출점할 계획이다. 이렇게 2020년까지 중국 전역에 100개 점포를 낼 예정이다. 최종양 중국 이랜드 사장은 “2호점부터 4호점까지는 베이징과 상하이 지역에 출점해 입지를 굳힐 것”이라며 “이 후 청두·항저우·충칭 등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까지 100개 점포 개점


최 사장은 “중국 내 대표 유통업체들과 협의 중인데 한 달 내 추가 협약 소식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을 짓는 하드웨어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어 한 곳당 20억~50억원 정도면 점포를 열 수 있다”며 “외식·패션·액세서리 등 250개 브랜드의 힘을 바탕으로 중국 최고의 유통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랜드는 국내 기업 가운데 중국 시장 진출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재 249개 도시, 1070개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패션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랜드의 중국 진출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하이에 중국 법인을 세웠다. 생산기지 구축을 위한 포석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패션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1993년 베이징대 특강을 다녀 온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임직원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교수고 학생이고 모두 인민복만 입고 있다. 이들이 패션에 눈을 뜨면 엄청난 시장이 열릴 것이다.”

이후 인사고과에서 A를 받은 우수 직원만 중국 법인으로 보냈다. 2~3년의 단기 근무가 아니었다. ‘아예 중국 사람이 돼라’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중국에서 7년 이상 근무한 직원도 20명이 넘었다. 중국에 파견된 직원들은 그렇게 현지에 녹아 들었다. 중국 관련 책을 100권 넘게 의무적으로 읽었다. 특히 그 무렵 최종양 중국 법인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6개월 동안 중국 내 193개 도시를 돌며 현장 조사를 했다. 중국 전역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물류 시스템을 비롯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최종양 사장은 “작은 도시까지 돌아보면서 중국이 개척되지 않은 광활한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며 “백화점 목록을 작성하고 세밀한 조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역사, 그리고 중국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사장은 또 “방대한 내수시장 규모만 보고 무턱대고 덤볐다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을지 모른다”며 “중국은 지역마다 색깔이 확연히 다른 만큼 어느 나라보다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중국 서적 독파와 도시 순회는 이제 이랜드그룹의 전통이 됐다.

가두 매장→ 백화점 진출로 덩치 키워


▎팍슨-뉴코아몰에 고객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 사진:중앙포토
다른 기업보다 중국에 일찍 진출한 덕에 이랜드그룹은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다. 1996년부터 가두 매장을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백화점 진출’이란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인의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그간 쌓은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 2003년만 해도 130여 곳이었던 매장 수는 지난해 7700개로 늘어났다.

디자인도 철저히 현지화했다. 티니위니 중국 매장에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옷이 유난히 많았다. 로고가 왼쪽 가슴에 작게 들어가는 한국 제품과는 딴판이다. 이승호 팍슨-뉴코아몰 고객만족책임자는 “브랜드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중국인의 성향을 감안해 디자인을 하고 있다”며 “같은 브랜드 제품이라도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디자인은 30%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현지 트렌드 분석에도 주력했다. 중국 본사의 패션 연구소는 매주 상하이 번화가에서 1000명 가까운 현지인의 사진을 찍는다. 이들의 옷차림을 분석해 현지 트렌드 리포트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본사 디자인팀은 중국용 의류를 따로 디자인한다. 디자인 샘플을 보내면 중국 영업·판매·기획 조직이 현지에서 인기를 끌 만한 디자인을 골라낸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매장을 내면서 브랜드를 고급화시킨 전략도 적중했다. 한국에서 이랜드 계열 브랜드가 대부분 중저가인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사회공헌 활동도 이랜드가 중국에서 성공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중국에선 국내와 동일하게 순수익의 10%를 현지 사회공헌에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빈곤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학 사업과 장애인 특수교육을 펼치고 있다. 긴급구호 물품 지원, 직원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으로 한·중 민간외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런 노력 덕에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중국 정부가 수여하는 중화자선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그래서 중국인 절반 정도는 이랜드가 중국 현지 회사라고 믿는다. 이랜드그룹 박성경 부회장은 “모든 직원이 현지인과 똑같이 먹고 자고 생활했다”며 “심지어는 한국 직원의 자녀도 모두 인민학교에 보냈다”고 말했다. 처음엔 잘 믿지 않았지만 군림하지 않는 모습에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 직원 자녀도 모두 인민학교에 보내

그렇다고 이랜드의 중국 진출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중국에 진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져 중국에 있던 한국 기업이 대부분 철수했다. 당시 20~30개 매장을 운영하던 이랜드는 사무실은 철수하는 대신 매장은 남겼다. 당시 남았던 직원 150여 명은 창고에서 먹고 자면서 중국 시장을 지켰다. 백화점에 진출하려고 할 때도 매출 규모가 작은 이랜드에 대한 중국 백화점 관계자의 반응은 차가웠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겪는 공통된 고충이었던 ‘ 시(關係)’도 발목을 잡았다. 이랜드 관계자들은 부정한 접대를 원했던 그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미팅을 하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고, 정부 관계기관의 초청 강의를 주선하고 친필 편지를 보내 성의를 표시했다. 중화권 기업과의 인맥 쌓기에도 충실했다. 박 부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과 비즈니스가 아닌 가족 관계에 가깝다. 그 정도의 신뢰를 20년 동안 쌓아왔다. 팍슨·왕푸징백화점그룹이나 완다그룹 등은 우리의 제안에 대해 신뢰하고 있고, 우린 약속한 것을 어기지 않는다. 다른 국내 기업과 달리 오랜 신뢰와 파트너십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랜드는 유통 1호점을 오픈한 올해를 중국 시장 개척의 원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가 걱정거리다.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도 하락세를 겪고 있어 앞으로의 도전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특히 이랜드는 최근 중국 법인의 실적 저하와 신용등급 강등, 재무위험 고조 등에 따라 위기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이에 대해 “매년 25% 정도의 영업이익률을 내며 중국에서 고속성장을 하다 지난해 12% 정도로 떨어지니 그런 위기설이 나온 것 같다”며 “아직까지 여느 대기업보다 수익성이 높은데 지난해 중화권 유통업 투자 확대로 이익률이 다소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회장은 “위기는 항상 우리에게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백화점과 패션산업의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란 것을 예상하고 2년 전부터 중국 유통 진출과 SPA 사업을 준비했다”며 “차별화된 한국적인 콘텐트를 들여온다면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상류층 중심으로 영업하는 중국 백화점에 맞서 우리는 10억 명이 넘는 대중을 상대로 유통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지역과 상권, 고객의 소득 수준에 따라 상품이나 매장기획(MD)을 달리하는 맞춤형 쇼핑몰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멈추면 바로 낭떠러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상하이=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박스기사]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


“부채비율 200% 초반대로 낮출 것”

이랜드그룹은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웠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랜드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이랜드월드의 2015년 상반기 연결기준 총차입금은 5조2081억원이다. 부채비율은 338.8%다. 지난 1월 14일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박성경(59) 이랜드그룹 부회장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당분간 M&A를 자제하고, 대신 중국 유통에 집중할 것”이라며 “킴스클럽 매각을 마무리하는 대로 부채를 상환할 계획인데, 그러면 부채비율을 200% 초반대로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돈 때문에 킴스클럽을 매각하는 것인가.

“꼭 돈 문제만은 아니다. 국내 할인점에선 1등을 하기 어렵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그동안 가치를 높여놓은 킴스클럽을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패션·유통·외식·레저와 같은 사업에 집중할 것이다.”

면세점에 도전하고 과거 화장품 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면세점에 도전한 것은 언젠가 이랜드도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공부하는 차원에서 진행했다. 상품 공급이나 관광객 유치 등 승리할 수 있는 요소를 갖췄다고 믿었는데 실패했다. 지금은 5년 단위로 면세사업권을 받아야 하는 등 규제가 심해 면세 사업의 적기가 아닌 것 같다. 화장품은 중국 파트너들이 우리가 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 화장품 업체가 너무 많고 아직 차별화된 운영 전략을 펼칠 자신이 없다. 업계 강자인 아모레 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을 넘을 자신이 없고 운영 노하우도 없다. 섣불리 시작하지 않겠다.”

지난해 스카프 브랜드 레이버데이는 이랜드의 브랜드 ‘폴더’가 자사의 디자인을 도용해 판매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그룹 내 디자이너만 1500명이 넘는다. 브랜드마다 엄청난 디자인이 쏟아져 나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디자이너의 양심에 맡기는데, 종종 이런 일이 발생했다. 내부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더니 대부분 퇴사한 경력직 디자이너더라.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교육 등을 계속 강화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사업 계획은.

“2018년엔 중국 매출 비중이 한국보다 더 커질 것이다. 한국은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고 시험하는 테스트 마켓이다.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여행 관련 콘텐트 개발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주력할 계획이다.”

1320호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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