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유쾌한 시간이었다. 40대 중반의 여성 두 명과 함께 점심을 했다. 4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고 재밌었다. 수다를 떨면서 이렇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한 명이 말했다. “함께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 나면 온갖 피로가 풀리고 머리가 상쾌해집니다. 이런 게 바로 일상의 행복입니다.” 그랬다. 나도 모처럼 대화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꼈다. 나는 소통에 대한 강의를 10년 넘게 했다. 사람들이 소통이 무슨 뜻인지 자주 묻는다. “소통은 소(牛)하고도 통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동의한다. “그래, 맞아! 소통은 소(牛)하고도 잘 통하는 거지. 우리 모두 소(牛)가 됩시다! 하하하~”소통을 잘하는 사람들은 수다를 잘 떤다. 그들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첫째,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날 딸이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딸은 ‘진짜?~ 와!~ 대박!!~ 헐!!!~’ 이 네 마디를 반복하면서 무려 30분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단지 이 네 마디만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잘 생각해보면, 이 네 마디는 오롯이 공감의 언어다.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게 바로 수다의 비결이다.시도 때도 없이 충고를 잘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첫마디는 ‘그게 아니지!’다. 누가 어떤 말을 하든지, 이 친구는 일단 ‘그게 아니지’라는 말부터 한다. 주변 사람들은 이 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입만 열면 자기 말을 틀렸다고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만약, 주변 사람들에게 첫마디를 무조건 ‘그게 아니지!’라는 말로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삼일도 지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온통 적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반대로, 첫마디를 언제나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로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부탁받지 않은 조언과 충고는 비난D그룹 임원 이야기다. 회사에 들어간 지 1년이 된 딸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딸이 말했다. “아빠, 우리 팀장 이상한 사람이야. 나에겐 허드렛일만 시키고 불필요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내가 한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가로채가기도 해요.” 아빠가 무심코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네가 뭘 잘못했겠지. 너희 회사 팀장이 되려면 실력과 인품이 상당해야 할 텐데, 그 사람이 그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네가 오해한 게 틀림없어.” 딸이 큰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아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엉엉엉, 우리 팀장보다 아빠가 더 나빠!” D임원은 이 사건을 말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부탁받지 않은 조언과 충고는 비난입니다. 저는 딸을 통해 이 말을 절감했습니다.”그렇다. ‘부탁받지 않은 조언과 충고는 비난’이다. 조언과 충고의 밑바닥에는 ‘내가 너보다 더 잘났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조언과 충고는 ‘네 생각은 틀렸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무심코 조언을 하거나 충고를 한다. 조언과 충고는 관계를 망치고, 소통을 어렵게 하는 커다란 걸림돌이라는 걸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수다를 잘 떠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판단하거나, 조언하거나, 충고하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 주고받을 뿐이다. 그들은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좋았겠다! 신났겠다! 화났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둘째, 수다를 잘 떠는 사람들은 잘 웃는다. 며칠 전에 경주에 강의를 하러 갔다. 수강생들은 모두 교육 전문가들이었다.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건 부담이다. 그러나 반대의 측면도 있다. 그들은 잘 듣는다. 그리고 리액션을 잘한다. 항상 웃는다. 준비만 잘 되어 있으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더 즐겁다. 그런데 이번 강의엔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시종일관 화가 난 얼굴로 강의를 들었다. ‘나하고는 처음 만난 사이니까, 나에게 화가 나는 건 아닐 테고.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이 사람은 습관적으로 상대방의 말에 시시비비를 따지고 잘 난 체를 했다. 표정은 심각하게 찡그린 모습이었고, 화가 난 얼굴이었다. 동료들은 이 사람을 기피했다. 이 사람은 자기생각의 감옥에 갇혀있었다.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틀렸다고 말했다. 언제나 화가 난 얼굴이었다.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은 ‘화가 난 세상’ 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지옥인지, 천당인지는 우리의 표정에 그대로 나타난다. 찡그린 얼굴은 지옥이고, 웃는 얼굴은 천당이다. 표정에 따라서 천당과 지옥이 순식간에 변한다.코칭을 하면서 만난 A임원은 직원들이 자기 방에 들어올 때, 반드시 웃으면서 들어오라고 주문한다. “제 방은 ‘스마일 룸’입니다. 문밖에서부터 웃으면서 들어와야 합니다. 스마일 라인을 넘어오세요.” 자신의 이런 조그만 노력들이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도 좋게 만든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상사의 얼굴은 직원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상사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직원들은 불안합니다. 이런 상사는 존재자체로 민폐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합니다. 저는 신입사원 때부터 20년 넘게 웃는 연습을 했습니다.” A임원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인자하고 온화한 얼굴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A임원을 부담스럽지(?) 않은 얼굴이라고 말한다.
술자리의 편한 대화가 바로 ‘수다’수다를 잘 떠는 사람들은 잘 웃는다. 별로 웃기지 않는 이야기도 ‘하하~ 호호~ 깔깔깔~’하면서 반응한다. 심각한 내용도 없고, 시비할 내용도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고받는다. 그들의 대화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존재로서 대화할 뿐이다.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사람을 받아들일 뿐이다.출근하면서 만나는 동료들에게 건성으로 인사하고, 하루 종일 옆자리 동료와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수다를 떨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수다를 떠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선 시비를 가려야 하고, 잘 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경쟁에서 뒤처지는 무능력한 행위로 간주한다. 그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무장하고, 시비를 가리고, 잘 난 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피곤하다. 그래서 술자리를 자주 갖는다. 술자리에선, 시비를 가릴 필요도 없고, 잘 난 모습을 보여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말하고, 그냥 듣는다. 그리고 박장대소한다. 그들은 술자리를 통해 비로소 피로를 푼다. 그들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이 대화가 바로 ‘수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토록 무시하고 비하하던 수다를 떨기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자리를 빌리지 않고, 일상에서 수다를 잘 떨 수 있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다는 결코 하찮은 게 아니다. 수다는 일상의 행복이다. 어떤가? 당신은 수다를 함께 떨 사람이 있는가? 당신은 수다를 잘 떨 줄 아는 능력이 있는가?
김종명 -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다.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리더십과 코칭, 소통 등에 대해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보성어패럴 CEO, 한국리더십센터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리더 절대로 바쁘지 마라] [절대 설득하지 마라] [코칭방정식]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