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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이 한 문장] 현명한 잔인함은 진정한 자비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군주들은 잔인하다기보다는 인자하다는 평판을 받기를 원하다. 그러나 이런 온정도 역시 서투르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잔인한 인간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의 잔인함은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지방을 통일하여 평화와 충성을 지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군주는 시민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군주론 17장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 때 인기를 끌었다. 해양동물원에서 공연하는 범고래를 조련사가 칭찬으로 훈련시키는 과정을 통해 칭찬의 힘을 역설했다. 동물이 이럴진대 인간이 칭찬받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연인과 리더는 이 점에서도 분명히 구분된다. 자연인의 관용과 칭찬은 개인의 행동방식에 불과하지만, 리더에게는 칭찬과 비난, 관용과 잔인함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리더의 잔인함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리더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엄격함이 개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공인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면 리더에게는 필요한 덕목이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평면적 자애심이 아닌 ‘현명한 잔인함’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진정한 자비가 될 수 있는 리더의 역설을 꿰뚫고 있다.

에틸렌을 많이 분비하는 바나나와 사과는 쉽게 상한다. 썩은 과일을 두면 나머지도 금방 썩는다는 생활상식을 조직론에 접목시킨 ‘썩은 사과 증후군’은 조직 내부의 썩은 사과가 조직 전체를 오염시킨다고 본다. 썩은 사과의 해악을 없애는 방법은 썩은 사과를 제거하는 것이다. 리더는 조직이 유지되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지, 인간성을 개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을 이끌어 가기 위해 인간에 대한 통찰은 필요하지만, 인간 자체를 개선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며, 필요하면 썩은 사과를 제거해 전체 조직을 보호하는 사람이지, 썩은 사과를 계도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애심이 너무 깊어서 혼란을 초래하여 급기야 시민들을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 잡는 잔인한 군주가 훨씬 인자한 셈이다. 또한 후자의 경우는 군주가 명령한 처형이 한 개인을 다치는 것으로 그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국민 전체를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군주론 17장

임진왜란에서 고립무원의 입장에서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은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다. 부하들에게 존경을 받은 장수였지만 군율에서는 엄격했다. 난중일기에는 120여 회에 걸쳐 처벌 기록이 나오고, 중죄의 경우에는 처형하고 효시까지 했다. 처벌 이유는 명령위반, 탈영, 민심교란 등이었고, 군율을 어기면 직속 부하는 물론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처벌해 고위 참모들이 형벌이 너무 엄하다고 진언할 정도였다.

갑각류가 성장하기 위해서 허물을 벗듯이 조직도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는 재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기업이 미래사업을 발굴하고 기존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도 낡은 껍질을 벗는 고통이 따른다. 사업에서 철수하고 직원을 떠나보내는 고통을 감내하기 부담스러워 껍질을 벗지 않으면 화석이 된다. 평온한 현실에 안주할 것인지, 고통스러운 재탄생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리더의 현명한 잔인함에 달려있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1334호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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