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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대한민국 참외 명장 1호’ 박진순] “참외 농사는 노란 예술작품 만드는 과정” 

25년째 영농일지 쓰며 데이터 축적해 기술 개발... 최근 고온농법 실험 중 

성주 =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경상북도 성주군의 봄은 샛노랗다. 성주의 들판을 뒤덮은 수만 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참외 때문이다. 성주는 국내 최대 참외 산지다. 성주군의 4200여 농가에서 생산되는 연간 15만t 안팎의 참외는 전국 유통 물량의 70%를 차지한다. 성주 참외 맛의 비밀은 자연 환경에 있다. 풍부한 물과 기름진 작은 모래질 토양에 더해 영남 내륙 분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갖췄다. 분지는 태풍·눈·비·바람을 막아줘 참외가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전국에서 가장 긴 일조시간도 한몫한다. 성주 참외를 더 단단하게, 더 달게 한다.

천혜의 자연명장의 노력


▎박진순씨는 25년째 참외 농사 관련 영농일지를 쓰고 있다.
성주 참외의 맛을 좌우하는 숨은 비결은 또 있다. 기술과 브랜딩이다. 이 지역의 참외 재배 역사는 60년이 넘지만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1990년대부터다. 참외 농사의 영농 기술을 끌어올리고, ‘참외=성주’라는 브랜드를 만든 중심엔 ‘대한민국 참외 명장 1호’ 박진순(56)씨가 있다. 경상북도는 지난 2004년 박씨를 참외 명장에 선정했다. 친환경 농법을 통한 우수 재배 기술로 참외 농가 소득 향상에 기여해서다. 타이틀을 단 지 10년이 넘었지만 전국에 참외 명장은 박씨를 포함 단 2명뿐이다. 지난 5월 10일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참외 농장에서 박 명장을 만났다. 그는 “참외 농사는 노란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끊임없는 관찰로 환경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 농사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후가 계속 바뀌는데 옛날 기술만을 고집했다면 성주 참외를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을 것이다”면서 “참외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사람을 키우듯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그를 명장으로 키운 건 ‘기록(記錄)’이다. 수박 농사를 짓다가 1991년부터 참외 재배를 시작한 그는 25년째 영농일지를 쓰고 있다. 농장 한 쪽에 있는 책장에서 영농일지를 꺼내 온 그는 “여러 번 수확할 수 있고,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 과정이 단순한 참외가 수익을 더 낼 수 있을 것 같아 갈아탔었다”며 “그런데도 기술이 없으니 수확량이 형편없어 참외 씨앗을 뿌리는 과정부터 열매를 딸 때까지 모든 과정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고 했다. 그는 기록을 시작하면서 참외가 자라는 모습 하나하나를 더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나브로 데이터가 쌓여갔고, 기록이 늘수록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졌다. 그는 영농일지를 ‘예보관’이라고 부른다. 박 명장은 “참외는 온도·습도와 같은 환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작물”이라며 “매해 쌓여가는 영농일지를 비교했더니 참외가 자라는 속도나 병충해, 강수량까지도 예측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영농일지가 보물 1호라는 그는 “기억은 부정확하다”며 “농사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깨닫게 됐다”고 했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박 명장은 참외 농사에 최적화된 새로운 영농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옥한 성주 땅에 황토를 객토해 땅 속 수분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게 했고, 참외 부산물을 이용한 친환경 물거름(액체비료)을 제조했다. 참외 식초로 병해충 방제기술도 개발했다. 또 꿀벌 수정을 통해 참외의 품질을 높이고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보온덮개 자동 개폐장치를 농업기술센터와 개발하면서 영농비와 노동력을 절감하는 데도 기여했다. 잡초 억제를 위해 검은 비닐을 최초로 적용한 것도 박 명장이다. 그는 “멀쩡한 땅에 객토를 하고, 이것저것 실험을 하면서 돈도 많이 까먹어 주변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지만 오기가 생겼다”며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귀찮고 힘들어하는 것부터 개선해나갔다”고 했다.

그가 개발한 기술이 보급되고 성주 지역 참외 생산량이 늘어나자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칭찬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5년 전 300곳이었던 성주 지역 억대 매출 농가는 지난해 1000곳으로 늘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박 명장의 참외 농사는 시설하우스 22동(1만4000㎡) 규모로 커졌다. 매출도 꾸준히 늘어났다. 10년 전 1억원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엔 2억5000만원을 찍었다. 명장이라는 명예는 덤이었다.

그는 참외를 ‘인생을 바꿔 준 은인’이라고 했다. 성주 태생인 박 명장은 가난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서 도시로 향했다. 대구에서 알루미늄 주전자 공장과 양산 공장에서 죽도록 일을 했다. 그러다 양복 봉제 일을 배웠고 작은 양복점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만에 양복점이 세 들어 있던 건물이 재개발로 철거되면서 희망이 사라졌다. 그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 명장은 “인생의 바닥에 있던 순간 참외를 만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며 “참외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 신기하고 즐거워 잘 시간도 줄여가며 참외 곁을 지켰더니 어느새 명장이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요즘 그는 지열과 토양수분, 하우스 안의 온도·습도를 관리해 농작물을 재배하는 고온 농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를 참외 재배에 접목시켜 수확을 앞당기고, 수량과 상품성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2006년부터는 참외 농사 교육도 하고 있다. 참외 명장의 농법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그의 농장을 찾아 참외 농사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사람이 연간 수백 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경북 지역 농협을 돌면서 참외 재배 강의를 하는 박 명장은 “처음에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고 적용한다면 누구든 억대 농민이 될 수 있다”며 “농한기에는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의 농장을 찾아다니면서 참외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무료 컨설팅도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에게도 참외 농사를 권유해 농부로 만들었다. 2012년 한국농업대학을 졸업한 박 명장의 아들 상현씨가 가업을 잇기 위해 농장에 합류했고, 농사 기술을 전수받으며 또 다른 참외 명장을 꿈꾸고 있다.

이마트에서 ‘박진순 참외’ 판매


연간 70t의 참외를 생산하는 박 명장은 최근 새로운 도전에도 나섰다. 공판장을 통해 팔던 참외를 ‘국산의 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마트와 계약하고 전량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마트는 그의 이름과 사진이 붙은 ‘박진순 참외’를 5월 19일부터 판매한다. 박 명장은 “농사는 너무 까다로워 혹시라도 품질이 떨어지는 참외를 소비자에게 공급할까 싶어 그동안 내 이름을 단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다”면서 “질 좋은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더 큰 책임감을 갖기 위해 고심 끝에 계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고품질의 참외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작물을 읽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다”며 “더 맛있는 참외 생산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농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 한 권 내는 것이 남은 꿈”이라는 소망을 밝혔다.

- 성주 =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1335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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