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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이 한 문장] 혀로 설득하고 힘으로 뒷받침하라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개혁자들이 자신의 힘에 바탕하여 행동하는지 아니면 타인에 의존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타인에 의존하는 경우는 항상 실패한다. 자력으로 추진할 때에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래서 무장한 예언자는 승리할 수 있으나, 말뿐인 예언자는 멸망하게 마련이다.’ -군주론 6장
지식인은 논리로 말하고 리더는 결과로 말한다.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지식인이 인정을 받지 못하듯이, 변화를 주도하여 의도했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리더도 평가받기 어렵다. 하지만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변화는 기존 질서의 수혜자로부터 반감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변화의 시도는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새로운 질서에서 오는 현재 기득권층의 손실은 명확하고 반대도 조직적인 반면 미래 수혜자의 이익은 불분명하고 결집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돌파하는 것은 리더의 역량이고 운명이다.

이런 배경에서 리더가 변화를 추구하려면 혀와 주먹을 겸비해야 한다. 혀의 논리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면서 때로는 주먹의 힘으로 강제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리더는 새로운 질서의 도입에 대한 반발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리더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욕과 헌신을 내세워 피렌체를 지배했던 사보나롤라는 새로운 질서가 부상함에 따라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그는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였다. 그는 그를 믿지 않았던 자들을 설득할 수단이 없었고, 그를 믿었던 자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단도 없었다(군주론 6장).

수도사 사보나롤라는 1494년 피렌체의 정치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다. 헌신적 삶과 금욕생활로 명망을 얻었고 부패한 교황과 정치권의 무능을 질타하는 불같은 설교에 힘입어 자신이 주도하는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아마추어 지도자의 명분론에 갇혀 실정(失政)을 거듭하자 지지층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집권 4년 만인 1498년에 실각하여 피렌체 시청 광장에서 화형(火刑)되었다. 한 때의 에피소드로 끝난 사보나롤라와 대비되는 인물이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칼뱅이다. 1509년 프랑스 출생의 칼뱅은 1536년 스위스 제네바로 가서 독일의 마르틴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천국도 지옥도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과 부(富)는 열심히 일한 대가라는 청부(靑富)는 당시 신흥 상인계급의 지지를 받았고, 칼뱅의 통치기간 중 제네바는 ‘프로테스탄트의 로마’로 불리며 종교개혁의 중심으로 부상하였다. 칼뱅의 통치는 후일 신정독재(神政獨裁)라는 평가를 얻을 정도로 엄격했지만 사리사욕 없이 죽는 순간까지 집필과 설교에 헌신하였다. 칼뱅은 사후에 자신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묘석도 세우지 못하게 했다. 제네바를 기반으로 확산된 종교개혁의 흐름은 영-미 계통의 장로교회와 유럽 대륙의 개혁교회로 발전하였고 무장한 예언자 칼뱅은 세계질서를 바꾸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무도 괴롭히고 싶지 않고 아무에게도 손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정의를 존중하는 성질의 표지이기도 하고, 비겁한 성질의 표지이기도 하다”라고 갈파했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모두에게 찬사를 받고 싶어하는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리더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1336호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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