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5월 25일 오후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벨리 소재 크루셜텍을 방문해 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유 부총리는 기업의 벤처기업 출자에 대해 세제혜택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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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이 5월 발표한 ‘국내외 스타트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국내 벤처기업 수는 2000년 8798개에서 지난해 3만1260개로 증가했다. 전체 벤처기업의 매출액도 2010년 177조원에서 2014년 215조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벤처기업 수 증가율은 2010년 연 30% 수준에서 2015년에는 10% 이하로 둔화했다. 매출액 증가율도 2010년 연 18.9%에서 2014년 11.2%로 감소했다. 평균 매출액은 2010년 72억2000만원에서 2014년 71억9000만원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평균 영업이익률도 5.9%에서 5.8%로 소폭 감소했다. 벤처기업 당 평균 근로자 수도 2010년 27.3명에서 2014년 24명으로 줄었다. 벤처기업의 수는 늘었지만 질은 양만큼 좋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회공헌식 접근으론 기대효과 적어국내 기업들이 조금씩 기업 제조에 손을 뻗고 있지만 아직은 선진국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사내벤처나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성공 사례가 드물어 투자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평가한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성장 동력과 창조경제 기반 마련을 위한 스타트업 생태계 기반 확충 및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며 “기업 등 민간 주도의 스타트업 활성화 정책과 제도 기반 강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실제 국내 벤처기업은 여전히 정부 정책자금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2014년 벤처기업의 신규 자금 중 정부 정책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46.1%로 가장 크다. 은행 등 일반금융으로 조달한 신규 자금의 비중은 2010년 36.6%에서 2014년 32.9%로 감소했다. 이와 달리 글로벌 스타트업 기업들은 벤처캐피털의 투자 비중이 지난해 기준 25.9%로 가장 많고 기업 벤처캐피털(CVC)과 사모펀드(PE), 엔젤펀드 등 전통적인 조달 방법이 주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국내 기업이 벤처·스타트업 투자를 사회공헌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제대로 된 기업 제조 사례가 나오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에 떠밀려 기업의 사업전략과는 상관 없이 단순히 돈만 뿌리는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기업이 제대로 된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데 소홀한데다, 투자나 인수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적기 때문에 기업 제조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병태 카이스트(경영학) 교수는 “기업 육성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스타트업이나 벤처가 중요한 사업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도 기업이 기업 제조에 적극 나서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한 벤처투자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중견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할 경우 기술이나 인력만 빼가고 버릴 것이라는 선입견이 업계에 깔려 있는 게 사실”이라며 “요즘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과거에 투자를 빌미로 기술을 빼갔던 사례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키운 듯하다”고 말했다.대기업 계열 벤처 규제, M&A 활성화 등 관련 제도 보완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인수될 경우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돼 각종 지원이 끊기고 오히려 족쇄만 차게 되는 현 제도의 문제점을 첫 번째 걸림돌로 지목했다. 일례로 카카오는 올 4월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을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하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대기업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카카오에는 76개의 규제가 적용돼 스타트업 수준인 40여 개 계열사에는 벤처캐피털 투자가 금지되고, 병역특례를 통한 인재 유치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됐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기업에 인수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진다”면서 “결국 상장을 통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데 기업공개(IPO)를 준비할 때 드는 비용과 기간을 생각하면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라고 하소연했다.이런 요구가 끊이질 않자 최근에는 정부도 대기업의 벤처·스타트업 투자에 대한 일부 규제를 조금씩 완화하는 추세다. 지난 5월에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투자 여력이 있는 기업의 벤처기업 출자에 대해 세제혜택을 확대해 민간 자금의 유입을 촉진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벤처기업에 투자한 금액에 대해 법인세를 공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벤처 등에 투자하는 기업에 투자금의 5%가량에 해당하는 세금을 세액공제로 깎아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개인의 벤처기업 지분 투자에 대해서는 투자금의 10∼100%를 소득공제했지만 기업의 벤처 투자에 대해선 혜택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할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정부는 또 벤처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판매할 때도 세금을 일부 공제해 주기로 했다. 지금은 중소기업이 벤처기업의 기술을 인수할 때 매입금액의 7%를 세액공제하고, M&A로 벤처기업을 인수하면 기술평가액의 10%를 법인세에서 깎아준다. 그마저도 M&A 대금에서 현금이 80%를 초과하거나 벤처기업의 지배주주가 주식을 배정받으면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M&A 등을 통해 벤처기업이 개발한 기술이 제값을 받고 거래될 수 있도록 세제지원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벤처투자 세액공제 추진 중일각에서는 기업이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할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 스스로가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선발하고 육성할 만한 역량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성공 가능성이 있는 혁신 업체를 고르고, 잠재력 있는 회사를 키울 수 있는 노하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가령 구글은 투자 기업을 고를 때 ‘칫솔테스트’를 기준으로 삼는다. M&A 업체의 제품이나 기술이 칫솔처럼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고 큰 효용을 주는지를 따져 본다는 것이다. 기업 육성 자체를 사업모델로 만든 Y콤비내이터의 경우엔 해당 업체의 기술과 창업자 인성을 동시에 고려해 투자할 기업을 선발한다. 또 이렇게 선발한 스타트업에 네트워크, 멘토링, 작업 공간을 제공해 성장을 돕는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탄생한 창업자가 다른 동료 창업자를 돕는 문화를 만들었다. 인재와 아이디어가 모여 기업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으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