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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엄마를 부탁해'의 ‘피크 엔드 법칙’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와 일맥상통... 기억과 경험은 주관에 따라 달라져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일러스트:중앙포토
엄마는 항상 내곁에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짜증과 역정을 내도 다 들어주던 사람. 때론 야단도 많이 들었지만,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그러던 엄마에게 내가 서서히 ‘손님’이 되어가면서 엄마는 멀어진다. 그러다 어느 날 마주한다. 엄마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을. 엄마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 중 두 번째 밀리언셀러다. 첫 번째가 김훈의 [칼의 노래]였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른바 ‘엄마 신드롬’을 몰고 왔다. 나에겐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였던 그녀가 실제로는 나와 같은 유년을, 처녀 시절을, 신혼을 겪었던 ‘여자’라는 것에 새삼 많은 딸이 공감했다. 나를 위해 엄마는 꿈과 미래를 포기했다는 것도. 그리고 나도 엄마가 되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

소설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다’로 시작한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둘째 아들집에 가다가 지하철 서울역에서 실종됐다. 자녀들은 전단지를 돌린다. 엄마는 만 69세. 이름은 박소녀다. 소설은 네 명의 시선을 따라간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세째 딸 지헌의 시선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장남인 형철의 시각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남편의 고해성사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실종된 엄마, 박소녀의 방백이다. 마지막은 엄마를 잃은 지 9개월 째. 다시 지헌의 시선으로 돌아온다.

지헌은 작가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 지헌은 엄마가 지독한 두통에 시달린다는 것과 어느 날부터 무언가를 잘 잊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다. 지헌은 생각한다. ‘나는 정말 엄마를 알고 있었을까’라고. 큰아들 형철은 대기업 건설사 홍보부장이다. 엄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컸지만 끝내 엄마가 바라던 검사가 되지 못했다. 큰 아들이면서 무력하게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편은 젊은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팔도를 돌아다니던 한량이었다. 딴여자와 살림을 차려나간 적도 있다. 평생 아내가 아플 때조차 따뜻한 물 한대접 가져다본 적이 없었다. 집대문 앞에서 “나 왔네!”라고 말해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 텅빈 집뜰에서 그는 깨닫는다. 아내는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한, 고마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사라진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파란 슬리퍼를 신고 거지 같은 낡은 옷차림의 소 눈망울을 가진 할머니가 지나갔다는 소문만 들릴 뿐 어디서도 엄마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희한하게도 그 할머니는 용산2가동 동사무소, 역촌동 서부시장 등 큰 아들의 추억이 담긴 곳을 지나갔다. 그 할머니가 내 엄마가 맞을까.

엄마를 잃어버리자 엄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와 얽힌 추억은 저마다 다르다. 즐거웠던 기억, 화가났던 기억, 섭섭했던 기억…. 지헌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 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이라고. 기억을 통해 가족들이 내린 엄마에 대한 평가는 ‘우리를 위해 희생했던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의 기억은 공정하지 않다.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똑같이 기억하고 저장하지 않는다. 어떤 강렬한 경험만을 선별해서 저장한다. 기억은 종종 사건의 절정기(peak, 피크)와 사건의 마지막(end, 엔드)을 기억한다. 이른바 ‘피크 엔드 법칙’이다. 피크 엔드 법칙은 어떤 경험에 대한 기억은 절정일 때와 끝날 때의 쾌감 혹은 고통의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는 법칙이다. 1999년 데니얼 카너먼이 발표했다. 피크 엔드 법칙에 따르면 경험의 기억은 주관에 따라 바뀌며, 경험의 시간과는 관계가 없다.

박수칠 때 떠나라?

이가 썩어 치과에 갔다. A치과는 망치와 드릴을 쓰는 바람에 지독히 아팠지만 단 10분 만에 이빨을 뺐다. B치과도 망치와 드릴을 써 매우 아팠지만, 치과의사가 서툴러 좀처럼 이를 빼지 못했다. 55분 만에 마취를 했고, 그 후 이를 뺐다. 두 사람에게 “다시 이를 빼러 치과에 오겠느냐”고 물으면 A는 “아니오”를, B는 “예”라고 말한다고 한다. 고통의 시간은 A가 10분으로 B의 55분보다 매우 짧았다. 하지만 A는 극단적인 고통속에서 이를 뺐고, B는 마취가 된 상태에서 이를 뺐다. 극단적인 고통을 기억하는 A는 또다시 치과치료를 받는 것이 두렵다. 이와 달리 B는 길었던 고통은 잊어버리고 아프지 않은 마지막 상태를 기억한다.

연속극을 보면 에피소드의 마지막 순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고는 다음회를 예고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궁금증이 극대화된 시청자는 다음 방송을 기다리게 된다. 올림픽에서 때로 은메달리스트보다 동메달리스트가 더 행복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은메달은 마지막을 패해 짙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동메달은 마지막을 승리해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끝을 맺는다.

주식투자 때도 비슷하다고 한다. A주식은 1년 내내 꾸준히 올라 100만원의 수익을 남겼다. B주식은 계속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다 마지막 한달 간 급상승해 9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때 투자자들은 B를 더 매력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피크 엔드 법칙은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것과 의미가 같다. 처음에는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친구였지만 졸업식날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을 남겨줬다면 그간 기억은 눈녹듯 사라진다. 아무리 싸웠던 라이벌이라도 죽음 앞에서 종종 화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팀 내 의견이 맞지않아 불화가 끊이지 않았더라도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다면 ‘개성이 강한 최고의 팀’으로 기억하게 된다.

가족들이 가진 엄마에 대한 기억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딸들은 엄마가 ‘큰아들 먼저’를 외치는 것이 싫었고, 큰아들은 동생들을 자신에게 모두 떠맡기는게 부담스럽다. 남편도 아내에 시큰둥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사라진 엄마는 모든 가족 구원성원들에게 엄마를 복원시켰다. 엄마를,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그리움’으로 바꿔놨다.

급작스럽게 삶을 마감한 인물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평가가 후하다. 그의 좋았던 모습만을 기억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저격을 당했던 링컨·케네디 대통령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국영·김광석 등은 피크 엔드 법칙의 영향을 받는다. 피크 엔드 법칙은 자기관리에도 힌트를 준다. 정점에 있을 때 내려오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에 대한 기억을 가장 아름답게 남겨놓을 수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1340호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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