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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정석을 알면 세상사가 쉽다 

자기 분야의 기본기가 중요... 바둑의 ‘한국류 정석’ 유명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석(定石)’이란 말을 상당히 좋아한다. 투자의 정석이나 교육의 정석 등과 같이 ‘정석’을 붙인 책이 30여 종 있다. 심지어는 연애의 정석이나 연필깎기의 정석 같은 것도 있다. 사람들은 경영의 정석이나 교육의 정석처럼 세상의 많은 부문에 정석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석이란 무엇인가? 바둑에서의 정석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정석을 알 경우 어떤 점이 좋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정석의 의미: 바둑의 정석은 ‘정해진 돌의 수순(手順)’을 말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정석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네이버사전에는 정석을 ‘사물의 처리에 정해져 있는 일정한 방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정석이다. 한편 사전에는 ‘바둑에서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격과 수비에 최선이라고 인정한 일정한 방식으로 돌을 놓는 법’이라는 풀이도 있다. 바둑의 정석은 프로와 아마추어 간에 개념상 약간 차이가 있다. 아마추어들은 바둑판 전체에 걸쳐 올바른 방식으로 두는 것을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로들은 초반에 귀에서 나오는 형태에 국한시켜 정석이라고 한다.

[1도]는 초반 포석 장면이다. 백1로 흑의 귀에 다가갔다. 이에 흑2로 받아주고 백5까지 되는 모양이 흔하게 두는 정석이다. 흑은 우변을 차지하고 백은 상변을 개척했다. 프로기사들은 포석 단계에서 나타나는 귀의 모양을 정석이라고 한다.

[2도]의 장면은 포석이 어느 정도 끝난 후 백1로 흑진에 뛰어든 상황이다. 이 수에 흑2로 포위하면 백13까지 처리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코스다. 최선을 다한 공방전 끝에 백이 살고 흑은 외곽의 튼튼함을 얻었다. 아마추어들은 이것도 정석으로 본다. 그러나 프로들은 특별히 정석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프로와 아마의 정석 개념이 다른 것은 실용적 측면과 관계가 있다. 프로들은 중반 이후에 나오는 모양에 대해 특별히 정석으로 분류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기업에서 창업 초기에 회사를 세우고,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을 정석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무나 회계를 처리하는 관리 매뉴얼은 빤해서 정석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아마추어에겐 빤한 매뉴얼도 중요 한 정석이다. 그것을 몰라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석의 영어 이름: 정석에 관해서는 에피소드가 많다. 먼저 정석의 국제적 명칭으로 인한 다툼이 있다. 정석을 영어로는 ‘조세키(joseki)’라고 한다. 정석의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석(Jungsuk)’과 같이 한국어 명칭을 쓰기도 한다. 서양인들과 정석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상의한 적이 있다. 공식을 뜻하는 ‘포뮬라(formula)’나 ‘패턴’ 같은 말이 제시되었다. 한 미국인은 ‘코너 패턴(corner pattern)’이 어떠냐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정석에 맞는 단어는 아니다. 그래서 서양의 바둑팬들은 그냥 ‘조세키’로 쓰고 있다.

바둑의 국제 용어로 일본어를 쓰는 이유는 일본 사람들이 바둑을 서양에 보급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바둑문화를 발전시킨 일본은 해외로 눈을 돌려 바둑을 널리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 때문에 센테(선수), 조세키 같은 일본식 전문 용어가 쓰이고 있다. 바둑 보급에 애를 쓴 일본의 프리미엄이라고 할까. 하지만 요즘은 많은 용어를 영어단어로 바꾸었고 15개 정도의 바둑용어만이 일본어 발음으로 쓰이고 있다.

특이하게 정석 중에서 ‘한국류 정석’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정석이란 뜻이다. 정석에 코리안 스타일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말하자면 한국류 정석은 한국식 경영 정석이나 한국식 연애 정석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일본식 정석이나 중국식 정석이란 말은 없다. 정석에 나라 이름이 들어간 것은 한국류 정석이 유일하다. 바둑의 정석에 태극기를 꽂게 된 이유가 있다. 1990년대에 한국 고수들이 새로운 수들을 두게 되었다. 그런데 이 수들은 외국 기사들이 볼 때 이상해 보였다. 기존의 정석과는 사고방식과 성격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 일본 기사는 “한국류 정석은 희한하다. 보기에는 투박해 뵈는데 매운 맛이 있다. 고추장 맛이 난다”라고 평했다. 이 고추장 맛 나는 한국산 정석이 세계 정석시장을 휩쓸게 되었다.

정석을 알면: 바둑의 정석은 얼마나 있을까? 수학의 정석 즉 공식이 여러 가지 있는 것처럼 바둑의 정석도 상당히 많다. 정석을 수록한 [정석대사전]이 있을 정도다. 이 대사전에는 1만 개 정도의 바둑모양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정석은 아니고 여러 가지 변화수까지 포함한 것이다. 정석으로 인정받는 모양은 수백 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석을 알면 어떤 점이 좋을까? 말할 것도 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올바른 수를 두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도]에서 정석을 잘 모르는 아마추어들은 흑1에 백2로 공격을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흑3에 뛰는 수를 둔다. 공격 당하면 달아나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평범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 결과 백6까지 진행되는데, 집없는 떠돌이 신세가 된 흑이 불리한 갈림이다. 그러나 이 모양에 관한 정석을 알면 아래쪽의 흑9과 같이 귀로 뛰어들어 바꿔치기를 시도할 것이다. 흑7 한 점을 희생하고 귀에서 집을 얻는 식으로 대가를 구한다. 흑17까지 진행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특기할 점은 정석을 안 배운 사람은 결코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모양을 보면 정석을 모를 경우 단순한 기초 상식에 의존해서 처리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석을 알면 교환을 하여 유리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비즈니스에 비유하면 정석을 모르는 사람은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대출이나 투자를 받아 수혈할 생각만 하는 반면, 정석을 아는 사람은 다른 회사와 제휴하거나 딜을 하는 방법을 모색한다고 할까.

자기 분야의 정석을 익혀라: 바둑의 정석으로 본다면 어느 분야든 정석을 아는 것이 유리한 것 같다. 정석을 모르면 아무래도 무식한 방법을 택하기 쉽다. 얄팍한 상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능률이 떨어지거나 좋은 수단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경영을 할 때 리더십이나 의사결정 등에 관한 정석을 많이 알고 있다면 그만큼 올바른 수를 고를 가능성이 클 것이다. 투자 역시 정석이 있다. 예를 들어 ‘투자의 정석’에 관한 글에 ‘좋은 주식을 샀다면 팔지 마라’라는 내용이 있다. 많은 사람이 주식을 사자마자 언제 팔까를 고민하는데 이것은 정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기 투자를 할 때만 돈을 벌 수 있다고 이 정석은 말한다.

바둑의 정석 중에는 난해한 것도 있다. 밀어붙이기나 대사천변이라는 복잡무쌍한 정석이 있는데 이 정석들은 프로들도 머리 아파한다. 그러나 세상의 정석은 대부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비즈니스 마케팅을 생각해 보자. 요즘 주택분양시장이 활황을 띠면서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분양이 어려워지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은 기본 정석이다. 이러한 기본 정석을 무시한 채 시류에 휩쓸려 행동하다가 낭패를 당하게 된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41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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