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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헌의 ‘질문 레시피’ | 가치 정립이 왜 중요한가] 일에 열정을 쏟되 매몰되진 말아야 

소중한 가치 버리고 얻은 성공은 의미 없어... 목표 달성 위해 뭘 포기할 것인가 

권귀헌 질문연구소 SMART Q-Lab 소장

▎샘 월튼 월마트 창업자.
“I blew it!(망쳤어)”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월마트는 세계 28개 나라에서 22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매주 1만1488개 매장에서 2억 명의 손님이 장을 본다. 가장 미국적인 기업이자 미국 가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으로 꼽혀왔다. 미국 최고의 기업을 일궈냈지만 샘 월튼은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1992년 초, 그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가족과의 단란했던 시간에서 나오는 추억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손자들의 이름은 절반 밖에 외우지 못했다.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떠오르는 전화번호는 회사 직원과 사업 관계자 뿐이었다. 믿었던 아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내는 의무감에 자신의 옆을 지켰을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병석에 누워 깨달았다. 1992년 4월 5일, 숨을 거두기 전 그는 자신의 인생축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만 유언을 남긴 배경이다.

샘 월튼은 왜 가족을 잃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삶은 대단했다. 막강한 권력을 맛보았으며 오래도록 이어질 명성과 명예도 남겼다. 수백만 명이 그가 일군 기업에서 생계를 해결하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이 쓰인 매장에서 값싼 물건을 구매하며 만족해한다. 월마트는 포춘 500에서 지금도 최고의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 유산은 15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세 명의 아들과 딸은 모두 미국 부자 순위 10위권을 오갈 정도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스스로가 부여한 점수는 낙제점이었다. 사업이라는 목표는 달성했을지언정 그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보살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인생에는 오직 일뿐이었다. 개인적인 삶은 없었다.

샘 월튼의 이야기는 성공 지향적인 한국인에게 생각할 점을 남긴다. 대기업 총수가 아니라 일반 월급쟁이조차도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에 매달리다 파김치로 집에 들어 온다. 주말에 가족과 놀이 공원 가는 일조차 부담스럽다. 자영업자에겐 주말조차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숨가쁜 인생이 어느덧 한국 가장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에 열정을 쏟지 말라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에 매몰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목표는 너무나 눈부시기 때문에 가족뿐 아니라 우리의 자존감, 명예, 건강, 신뢰, 가치관 등을 포기하라고 강요할지도 모른다. 고난이나 역경 앞에서는 이런 압박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곧 목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간절 함이 더할 것이다. 이 때 뚜렷한 가치관과 철학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이 유리와 같아서 한 번 깨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똑같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가족과 성공이라는 두 갈래 길이 나올 수 있다.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존재는 무엇인가?’ 두 개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야 한다.

가치를 버리고 얻은 성공은 의미가 없다. 나아가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다. 가치 없는 성공은 더 큰 갈증으로 다시 돌아온다. 성공이 목적이어선 삶에 의미가 없다. 내 삶을 위해 성공해야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치가 가족이라면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살면 된다. 스스로에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항상 돌아봐야 한다. 자칫 성공 방정식에 빠져들면 성공이라는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모습을 인생 말년에서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이어령 박사도 놓쳐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아쉬워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딸아이가 밤늦게 글 쓰는 자신에게 ‘아빠, 굿나잇’하면서 인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했던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집필 중에는 그 어떤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절대 자유’ 속에서 가족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를 떠나 오직 쓰기와 읽기에 몰입했다.

가족과 성공의 갈림길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고 오직 창조활동에만 집중했다. 그의 문학적 업적에는 바로 이런 자발적 고독이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냉대했던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 종일 아빠만 기다렸다가 상처받았을 딸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2012년 딸을 먼저 보낸 그는 ‘굿나잇’ 인사를 하는 딸을 끝내 안아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너무나 한이 된다고 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만일 지금 나에게 그 3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들어 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이어령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중.

권귀헌 - 어떤 질문을 해야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연구하는 조용한 혁명가로 질문연구소 SMART Q-Lab을 운영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세계를 이끄는 한국의 최고 과학자들], [질문하는 힘], [삶에 행복을 주는 시기적절한 질문] 등이 있다.

1342호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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