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흥분해선 득 될 게 없다 

 

김해동 비브라운 코리아 사장

보복 운전에 손도끼가 등장하고, 층간소음 다툼으로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40억년 전 지구에서 태어난 단세포 생명체는 약육강식 밀림의 법칙에 적응하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 가까스로 자연선택을 받아 인간으로 진화했다. 진화 과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 원시환경에서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잡혀 먹히게 마련인데, 매번 기적같이 도망쳐 살아난 조상을 둔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존재한다. 등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소름 끼치게 겁나고, 흥분한 뇌는 아드레날린을 분출시켜 근육능력을 최대로 높여 도망치든지 적을 물리쳐야 살아남는다.

부스럭 소리에 피했는데 별일 없는 경험을 몇 번하면 머리로 확률계산을 하고 신호를 무시하게 되는데, 그렇게 분노·감정조절을 잘한 조상들은 거의 먹잇감이 되었고, 생각 없이 신호마다 반응했던 분노조절 장애자들은 살아남았다. 우리는 분노조절 장애자들의 후예들이니 손도끼가 등장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21세기 자연을 정복한 인간은 과거의 야생적 환경과 전혀 다른 사회환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게 됐다. 외부와 단절된 채 두개골 안에서 진화한 뇌는 완전히 변한 환경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수백 만년 동안 짐승의 공격을 경험한 인간의 뇌가 뒤 차의 경적소리를 등 뒤에서 나는 늑대소리와 혼동하고 흥분해 아드레날린을 방출하면 파국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원시환경에서는 미세한 신호에도 반응해 화를 내야 살아날 확률이 높았다면, 현대환경에서 화나게 만드는 신호의 99.9%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현대환경에서의 화나는 신호는 근육으로 해결되지 않고, 생각으로 풀어야 하는데 흥분하면 뇌는 분노조절 기능을 멈추니, 바로 행동에 돌입하고 그때마다 후회한다.

분노조절 장애는 이제 개인 문제에 머물지 않고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의 물결을 타고 국가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베노믹스가 지지를 받고, 트럼프 열풍이 불더니 급기야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유럽은 온통 유로컵에 열광하고 있다. 절대 절명의 순간에 인간을 수퍼맨으로 만들어 생명을 구한 신비의 보약, 아드레날린이 신호의 강도를 높이다 보니 이제 맹독으로 변해 분비될 때마다 수만 개의 뇌세포를 죽이는 자상까지 불사한다. 아드레날린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쥐가 호흡한 공기를 농축해 건강한 쥐에게 주입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급상승한다는 연구보고는 이미 상식이다. 원시환경에서 목숨을 구한 생명의 보약이 현대사회에서 주인의 건강을 해치고, 분노조절 장애자로 만들어 ‘왕따’ 시키고,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분노조절 장애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인류가 계속 진화한다면 화나는 신호에 아드레날린이 아니라, 생각을 북돋는 도파민 계열의 호르몬이 분비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진화될 때까지 수만 년이 걸리니 그동안 엉뚱한 신호에 흥분해 맹독을 삼켜 나 자신뿐 아니라 주위를 파괴시킬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드는 신호를 나의 변화를 유도하는 고마운 기회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뇌는 아드레날린이 아닌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도파민 덕에 더욱 신이 나서 급변하는 환경을 스트레스가 아닌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사회에서 개인·기업·국가를 막론하고 흥분해서 이득 볼 상황은 결코 없다.

1344호 (2016.07.2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