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중앙포토 |
|
목동들이 콧노래를 부르는 하늘 아래 어느 마을에 공유하는 목초지가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양떼를 방목해 기르면서 문제없이 먹고 살았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욕심을 내어 더 많은 양을 데려와 풀을 뜯게 했다. 다른 사람들도 앞다퉈 양을 더 몰고 왔다. 그러자 목초지는 황폐해졌고, 주민들은 풀 한 포기 없는 목초지에 눈물을 흘렸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란 현상은 1833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가 소개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생물학자 가렛 하딘(Garrett Hardin)이 1968년 [사이언스]에 소개하면서 빛을 보았다. 하딘의 논문은 경제학자들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목초지처럼 자기 양을 더 많이 뜯어 먹이려는 개인의 욕심과 목초지를 보존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공생하는 상황이 충돌하는 경우는 공공재(공유자원) 부문에서 흔히 일어난다. 공공재는 특정인에게 소유권이 없어 구성원 누군가가 이용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기에 무임승차(free rider) 문제가 발생한다. 지하자원·공기·물 같은 공공재를 시장경제에 맡겨놓으면 이기심 때문에 공공재 생산과 소비는 비효율을 초래하고 좋지 못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게 ‘공유지의 비극’의 결론이다. 재원 없는 복지공약 문제도 나라 곳간을 축내는 공유지의 비극의 예로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기심 탓에 공공재 생산·소비 비효율 발생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영국에서 일어났던 엔클로저 운동처럼 공유지를 몰수해 주민들에게 나눠줘 사적 재산권을 부여할 수도 있다. 국가가 몰수해 관리를 맡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여성이 있었다. 2009년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고(故) 엘리너 오스트롬 인디애나대 정치학과 교수다. 그녀는 시장이나 정부가 아닌 지역 주민이나 공동체가 공유 재산을 맡아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자원 고갈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남획 때문에 바다가재를 잡지 못할 위기에 처한 미국 메인 주 연안의 어부들을 관찰했다. 어부들이 통발 놓는 규칙과 순서에 대한 자치 규율을 만들어 어장을 유지하는 사례는 그녀를 매료시켰다. 그녀의 ‘자치 이론’이 현실세계에 맞으려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공생한다고 인식하면서 자율 제도를 만들어 지키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오스트롬은 공유지 비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처벌이나 공적 제재보다는 공동 사용자들의 공동체 의식 강화를 더 강조했다.그녀가 중시한 연대의식과 유대감이 우리가 ‘기억 저편으로 보내 버린 잃어버린 고향의 향기’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사실 이런 공동체에 의한 해결은 말처럼 쉽지 않다. 대부분의 마을 공동체는 자치능력이 부족하다. 오스트롬도 스리랑카의 관개개발 사업을 통해 자치능력 결핍의 원인을 분석한 바 있다. 농부들이 관개사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고 자신의 농토에 대한 애정도 넘치지 않을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 간 인종적·문화적 이질성이 있을 수도 있다. 마을 지도자가 부패해 사적 이익을 취할 수 있고, 주민들을 이간질 시킬 수도 있다.소규모 관개시설도 어려운데 하물며 지구적 문제는 어떨까? 지구 환경이란 공공재를 오스트롬의 원리로 마을 공동체의 자치에 맡기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기후라는 공유자원의 이용과 관리에 대한 제도의 예로 탄소배출권 문제를 들어 보자. 이산화탄소의 배출권 문제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이익이 단기적으로 줄어들 위험에도 지구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이란 믿음이 국제사회에 퍼져 있어야 한다.인터넷은 공유지의 비극일까 희극일까. 2030년 세계 인구의 80%가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인터넷을 공유지로 비유한다. 인터넷은 도입 초기 공유와 개방이 핵심이었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유지에 어떤 디지털 꽃과 나무를 심고 있나? 2001년 개인들이 소유한 지식을 인터넷으로 공유하기 시작한 위키피디아는 최고의 백과사전이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넘어섰다. 세계적으로 ‘전자 도서관’ ‘북카페’ ‘공공 데이터 포털’이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나무가 되어 인터넷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공유경제는 공유지의 비극인가 희극인가요즘 공유경제가 중요시된다. 사전을 펼쳐보니 공유경제란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나 활용하지 않는 물건·지식·경험·시간과 같은 유·무형의 지원을 교환·대여해 거래 참가자들이 서로 이익을 얻는 경제활동 방식으로 나온다. 하버드대 법대 교수 로렌스 레시크 교수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자신의 집을 숙소로 공유하는 에어비앤비,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가 대표적 공유경제 회사로 회자된다. 그런데 정말 이런 인터넷 IT 기업이 ‘공유지의 비극’을 ‘공유지의 희극’으로 만드는 ‘나눔과 배려’의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일단 자신에게 남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생계에는 보탬이 될 듯하다. 저성장으로 신음하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유경제가 부상하는 측면도 그럴 듯하다. 공동체와 협동하고 협업하면서 소비를 공유하는 소비자협동조합같은 정신으로 소비자후생이 증대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카풀의 정신은 이용자의 어려운 살림살이에 도움을 주고 에너지 낭비를 방지하는 데도 기여한다. 사적 재화를 소유하고자 하는 시장의 ‘교환가치’가 협력적 공유사회의 ‘교환가치’로 대체되고 있는 건 유럽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그런데 안심할 수만은 없다. 공유경제의 발달로 노동자의 임금이 줄고, 노동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공유경제의 과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의 배만 불릴 가능성도 두렵다. 최근 에어비앤비가 국내에 진출한 후 숙박을 대여한 국내 가정집이 숙박업 신고 의무 위반으로 벌금 선고를 받았다. 우버는 택시 공급 증가로 요금 인하를 유도하겠지만 기존 택시회사의 파산과 일자리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공유경제를 미래 시장의 트렌드로 이해하면서도 폐단에도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것이 공유경제가 공유지의 비극으로 가지 않는 길이다.남산 톨게이트를 넘을 때 운전자는 돈을 낸다. 교통이 혼잡한 지역에 위치한 시설이나 많은 교통량을 유발하는 시설을 소유한 기업도 해마다 정부에 교통유발부담금을 내야 한다. 인터넷에 과도한 트래픽을 유도하는 경우에도 혼잡비용을 내야 할까? 낸다면 누가 내야 할까? 지난 2월 페이스북은 통신인프라가 부족한 인도에서 인도 통신 사업자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즈와 손잡고 무료 인터넷 접속 서비스 프로그램(Free Basics)을 제공하고자 했다.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데 좋지 않나? 그런데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인터넷의 질과 속도가 다른 인터넷보다 우월적 혜택을 주는 것으로 판정 났다. 전문 용어로 페이스북은 ‘망중립성의 원칙(Network Neutrality)’을 위배했다. 통신망을 제공하는 사업자는 모든 콘텐트가 차별 없이 고객에게 공유되도록 망 중립성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에 따르면 카카오든 페이스북이든 콘텐트를 제공하면서 부당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카카오를 이용하는 소비자나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소비자나 망 이용에서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얼마 전 구글은 미국 내 가입자 점유율 3위 이동통신사인 티모바일이 자사 플랫폼 유튜브의 트래픽 전송에 간섭했다고 주장했다. 한 데이터 분석기관에 따르면 유튜브는 미국 내 무선통신 트래픽의 5분의 1을 유발한다. 구글은 티모바일이 고의적으로 유튜브 트래픽을 제한하고 있다고 보고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통신업자 입장에서 트래픽을 많이 발생하는 콘텐트 업자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망중립성의 논리 뒤에는 어떤 원리가 존재할까?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다. 통신망에 무임승차자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동영상 스트리밍 업체들이 통신사들을 압박하는 발언을 들어보자. “우리는 대형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강력한 망중립성을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이동통신사가 임의적으로 특정 콘텐트 회사나 콘텐트를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속도를 제공하거나 혹은 반대로 속도와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통신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됩니다. 인터넷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그런데 왜 통신사는 콘텐트 업자의 발언을 비판할까? 그들은 인터넷 망도 공유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인터넷 망에 콘텐트 업체들은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매력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몰려든다. 결국 트래픽이 폭증하게 되고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서버 과부하의 문제로 모두가 인터넷 망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공유지가 황폐화되는 것이다. 인터넷 초기에는 트래픽을 많이 일으키는 서비스도 많지 않았고 이용자도 많지 않았다.
망중립성과 공유지의 비극 논쟁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망 서비스 이용자가 크게 늘어났고 동영상 스트리밍이나 인터넷 전화처럼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서비스도 제공되다 보니 트래픽에 대한 망 부담이 커졌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늘어난 트래픽을 고속으로 처리하기 위해 망 시설을 확충하는 데 지속적으로 돈을 들이니 트래픽 유발의 주범인 콘텐트 업체가 곱게 보일 이유가 없다. 자신들이 설치한 망에 이들이 무임승차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미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이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콘텐트 업체들도 망 시설 확충에 대한 비용을 일정량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콘텐트 업체들은 그런 것은 통신업자가 해결할 문제라며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콘텐트 업체는 소비자들이 통신 요금을 내고 있는데 콘텐트 업체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통신사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소비자가 단순히 망에 접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신망에 접속해 콘텐트를 즐기기 위해 통신 요금을 낸다고 주장한다. 정부 역시 산업적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콘텐트 시장에 부담을 줘서 활력을 잃게 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우리의 기억 저편에 있는 과거 사례를 끌어와 보자. 카카오톡의 모바일 인터넷 전화 서비스인 ‘보이스톡’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용한 서비스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라면 해외에서도 가족이나 친지들과 무료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보이스톡의 국내 서비스 개시를 놓고 이동통신사들은 보이스톡이 너무 많은 트래픽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소비자들은 통신사들이 보이스톡 서비스를 제한하는 이유가 트래픽 부담이 아니라 자사 통화 서비스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통신사들을 비난했다. 정부는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을 발표했으나 이후 강제 조항을 만들거나 구체적인 단속 조치를 하지는 않았다. 트래픽 급증으로 망에 과부하가 발생하면 망 제한이 가능한 것으로만 규정했다.외국은 어떨까? 미국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상대로 제기한 ‘망중립성 폐기’ 소송에서 버라이즌의 손을 들어줬다. 통신사들에게 망중립성을 강제하는 것은 현재 미국 통신법상 인터넷이 ‘보편적 통신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것이다. 만약 인터넷이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보편적 서비스라면 다른 판결이 나왔을 것이다. 반대로 유럽연합(EU) 의회는 통신 사업자들이 타사 인터넷 서비스와 자사 인터넷 서비스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단순히 타사 서비스들끼리 차별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자사 서비스와의 차별까지 금지하면서 좀 더 엄격한 수준의 망중립성을 시행하기로 했다.왜 이런 차이가 날까? 통신은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 통신망에 대한 접근성은 너무나도 중요한 척도가 됐다. 통신은 국가기간산업인데 관리는 민간통신업자들이 한다. 민간 회사이기에 수익과 비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업자들이 모순적인 장사 행위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동통신사는 IPTV나 모바일 VOD(주문형 비디오 시스템) 같은 자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한다. 그들이 자사 콘텐트에 우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IPTV 가입에 있어 이동통신사는 자사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결합 상품 식으로 함께 판매하기도 한다. 기존 이동통신이나 유선 서비스 고객에게는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공정거래 문제나 다른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항상 여론의 도마에 오른다.
인터넷은 공유와 개방의 장망중립성을 놓고 통신업자와 콘텐트업자 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고, 그 가운데에 소비자가 있다. 망중립성 문제는 그래서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이 나기가 쉽지 않은 주제다. 이동통신업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콘텐트 업체들이 ‘트래픽 유발 부담금’을 낸다면 얼마나 내야하고, 중소 영세업체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다시 오스트롬으로 돌아가서 망중립성 문제에 대한 그녀의 입장을 상상해 보자. 그녀는 정부의 개입 대신 망 사용자들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 상호 공생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 자율적인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통신사, 콘텐트 업체, 소비자간 망중립성 원칙을 두고 입장이 달라 갈등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다. 인터넷 인프라가 전 지구적으로 갖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인터넷 생태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인터넷을 ‘공유와 개방’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인터넷을 폐쇄적이고 화려한 비밀의 정원으로 만들어 독점하려 든다면 그 담벼락을 과감히 허물어버려야 한다. 오픈 소스를 통해 성장한 위키피디아와 차량 주요 기술 특허권을 독점하지 않고 개방한 테슬라가 너무 예뻐 보인다.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 1933년 8월~2012년 6월) - 2009년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아프리카 주민의 목초지 관리와 네팔 서부 당(Dang) 마을에서의 관개 시스템 관리 연구를 수행했다. 일부 시도는 성공을 못했으나, 천연자원을 관리하고 생태계 붕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시도를 사회가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을 했다. 인간과 생태계 간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무임승차 문제를 국가 또는 시장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접근법에 반대하고, 주민 자치로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