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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의 샐러리맨 코칭스쿨] 권한 위임? 업무 떠넘기기? 

하기 싫은 일, 하기 어려운 일 해야... 두 직급 높은 사람 입장에서 고민할 필요 

김종명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D그룹 박 전무의 별명은 ‘박 계장’이다. 시시콜콜 작은 일에 집착하고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는 걸 빗대어 붙인 별명이다. 직장마다 ‘박 계장’들이 꼭 있다. 직장마다 이구동성으로 권한 위임을 강조한다. 좀 더 큰 그림을 보면서 일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권한 위임이라는 말은 엉터리다.

권한 위임은 자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라는 말이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넘겨준다면, 이건 ‘업무 떠넘기기’다. 권한 위임이 아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면, 이건 ‘업무 빼앗기’다. 권한 위임인가? 업무 떠넘기기인가? 업무 빼앗기인가?

직장마다 꼭 있게 마련인 ‘박 계장’

‘나는 회사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바쁜 사람입니다.’ 코칭을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말에 숨겨진 심각한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긴급한 문제들을 멋있게 처리한다. 심각한 문제일수록 이들의 존재가치는 더욱 빛난다. 유능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다. 이들은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하는 정비사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불을 끄는 소방수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미래전략을 수립하고, 직원들의 역량을 개발하는 등 씨앗을 뿌리는 행위를 기대하는 건 사치에 가깝다. 이들은 ‘땜빵질’ 하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미래 먹거리 창출을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효용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저를 버렸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나를 버리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빙빙 도는 생각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비용이 적게 드는 사람을 쓰는 게 조직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 돈값을 하고 있습니까?” 코칭을 하면서 자주 묻는다. 조직 구성원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기대되는 ‘돈값’을 해야 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기대되는 핵심 업무란 무엇인가?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걸 모르고 있다면, 돈값을 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일, 꼭 해야 하는 일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으면 된다.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딱 부러지게 어느 부서의 일이라고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일이 무엇인가?’ 이게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S그룹 K전무 이야기다. K전무는 팀장 시절부터 탁월하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어느 부서가 해야 할지 애매한 일은 자청해서 도맡았다. ‘상무님,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면 팀원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팀장님은 우리가 꼭 안 해도 되는 일을 왜 떠맡아옵니까? 일은 결국 우리들이 해야 되는데…. 팀장님과 일하기 너무 힘듭니다.” K팀장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안 해도 비난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하는 건, 모두 우리 팀원들의 성공을 위해서입니다. 상무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상무님이 어느 팀에게 시켜야 할지 곤란해 할 때, 우리 팀이 자발적으로 한다면 상무님은 우리 팀에 좋은 감정이 생길 겁니다. 나중에 누구를 승진시켜도 좋을 그런 승진 인사가 있을 때, 상무님이 우리 팀원들 중에서 누군가를 승진시킬 거라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실제로, K팀장과 일했던 팀원들은 빨리 승진했다. K팀장은 상무로 승진하고 난 후에도 ‘제가 하겠습니다’는 방식으로 일했다. 자신의 부하직원 중에서 많은 사람이 상무로 승진했고, 자신도 전무로 빨리 승진했다. 어느 조직이든 하기 싫은 일, 하기 어려운 일이 반드시 있다. 이걸 스스로 자청해서 하는 게 바로 ‘돈값’을 하는 것이다.

김 과장이 본부장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어?

왜 조직에는 ‘박 계장’들이 많을까? 불안해서 그렇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다. 그래서 많이 일하고, 많이 챙긴다.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불안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D그룹의 C전무에게 들은 말이다.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건 멍청한 짓입니다.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체계적으로 일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적게 일하고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는 별로 바빠 보이지 않으면서도 항상 좋은 성과를 냈다. 그가 말했다. “급한 일이 모두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일단 멈추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일은 누가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하는 게 더 좋은가? 그런 후에 적임자를 정하고, 적임자가 그 일을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일에 무작정 덤벼들지 말고, 잠깐의 시간을 내어 적임자를 찾는 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입니다.”

‘권한 위임을 하라’는 말에는 전제가 숨어 있다. 자신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거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권한 위임을 하라는 말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라는 게 아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을 그만두고 더 중요한 일을 하라는 뜻이다. 자신만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을 하라는 거다.

지역본부 과장으로 근무할 때다. 결재를 받을 때마다 본부장이 물었다. “만약, 김 과장이 본부장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어?”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짜증이 났다. ‘나는 본부장이 아니라, 과장인데 내가 왜 본부장 입장에서 고민을 해야 돼? 내가 본부장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본부장은 결재를 받으러 갈 때마다 계속해서 질문했다. “만약, 김 과장이 본부장이면 어떻게 하고 싶어?” 결제를 받기 위해선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지점 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점장의 고민이 훤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지역본부는 지점 운영을 감시 감독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부서였다. 지역본부장의 입장에서 2년 동안 고민한 결과, 놀랍게도 지점장의 고민을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긴 것이다.

제대로 된 중요한 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가? 두 직급 높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두 직급 높은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라. 자신이 지금 제대로 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눈이 생길 것이다.

김종명 -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다.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리더십과 코칭, 소통 등에 대해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보성어패럴 CEO, 한국리더십센터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리더 절대로 바쁘지 마라] [절대 설득하지 마라] [코칭방정식] 등 다수가 있다.

1344호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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