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국가(Entrepreneurial Nation)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인 창업경제(Entrepreneurial Economy)가 충만한 국가를 일컫는다. 여기서 창업경제는 도전과 혁신을 뜻하는 창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사회 곳곳에 넘쳐나는 경제다. 예컨대 국민 개개인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창업에 도전한다. 기업은 혁신하고 기술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중소기업과 공생성장에 앞장선다. 정부는 창업기업·중소기업 위주의 정책 지원으로 선순환 창업생태계를 조성한다. 대학은 창업가 정신 교육 및 확산으로 청년 창업가를 지속적으로 배출한다. 이런 시스템이 갖춰줬더라도 창업경제는 속성상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실패를 용인해야 성과도 나온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창업가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출세 지향주의만 만연2차 세계대전 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우리는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가 드문 높은 성장을 이루었다. ‘민족-국가-국민’의 체제 하에서 ‘하면 된다’는 강한 자신감도 얻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시발점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도 달성했다. 그러나 소통하고 배려하는 공존의 윤리인 시민성은 형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남을 밟고 일어서려는 출세 지향주의가 만연한다. 왜 그럴까?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미국·영국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사조가 득세했다.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다. 국가 간의 글로벌 경쟁은 자국 내의 경쟁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갓 가난에서 벗어난 나라, 이미 내부적으로 생존경쟁에 몰입했던 우리는 또 다시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으로 빠져 들었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목 기마민족의 후예답게(?) 우리 사회를 점령한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 자신이 좀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 볼 겨를이 없게 만들었다. 자위(自慰) 하자면, 남을 배려하고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시민성이 형성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우리 사회는 점점 더 획일적 가치관에 익숙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 남북과 동서, 이제는 세대 간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반목한다.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농경문화의 전통에서 내려오는 공동체 의식과 이해는 사라지고, 판단과 결정은 진영 논리에 갇혀 내려진다. 유교적 가치관인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때로는 현 시대와 불협화음을 내면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의 생성을 저해한다. 구시대의 유물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직업의 계급의식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 청년들이 의사·법관·공무원에 매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시민성이 당위성과 슬로건만으로 쉽게 형성될 수 있을까? 탁상공론에 그칠 수 있다. 시대상황과 국민의 의식수준에 맞는 시민의식을 목표로 하는 실현 가능한 방법론이 요구된다.그렇다. 불확실한 글로벌 환경과 창의사회, 그리고 성장의 욕구가 분출하는 우리 사회의 시민성 제고의 목표는 ‘창업가 시민’(Entrepreneurial Citizen)이 될 수 있다. 이는 ‘창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으로 충만한 시민을 일컫는다. 창업가정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고, 혁신하며, 남보다 먼저 진취적으로 행동하되 사회적 약자 배려와 환경 보호 등 사회적 가치도 함께 추구하는 정신과 행동을 말한다.왜 창업가 시민이 중요한가? 창업가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기 때문이다. 창업가(entrepreneur)란 말은 16세기 유럽에서 유래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에서 ‘군대 원정을 이끄는 책임자’ ‘연회 개최자’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그 후 경제행위 주체로서 창업가란 말이 널리 쓰이다가, 2000년대 들어서서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창업가(Social Entrepreneur)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근자에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창업 붐이 일고 있는 것도 그 한 예다. 이처럼 창업가는 상업적 의미뿐 아니라 비상업적 의미로도 지칭되는 말이다. 이는 창의적·적극적으로 행동하며, 혁신하면서 경제발전과 조직발전을 꾀하고, 사회적 약자와 지구 환경도 중요하게 여기는 시민과 다름없다.오늘날 미국이 경제적으로도 성장하면서 사회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달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창업가 시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찍이 1948년에 하버드 대학이 창업가정신 연구소를 설립했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가 넘은 시기인 1988년부터 창업가정신 교육을 국가 주요 정책 어젠다로 정해 청소년 창업가정신 교육을 시작했다. 고등학생의 경우 30% 이상이 창업가정신, 또는 창업 관련 과목을 수강한다. 유럽연합도 2006년 오슬로 어젠다를 통해 청소년 창업가정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하도록 권고했다. 현재 전체 회원국 중 절반 정도가 초등학교에 창업가정신 정규 교과목을 두고 있고, 회원국의 3분의 2 정도가 중·고등학교에서 창업가정신 과목을 정규 필수로 지정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대학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창업가정신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대학 학제 개편도 고려해야이제 우리도 창업가정신 교육을 국가 교육정책의 중심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 그 대상을 대학뿐 아니라 청소년 창업가정신 교육으로 확대해 정규 교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 창업가정신 교육목표는 청소년의 창업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다.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함양하고, 다양성과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민을 육성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정부가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인성교육을 숱하게 받아왔다. 거기에는 시민의식 교육도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시민층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발달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한순간에 세상을 바꿀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에 맞는 시민의식 교육을 실시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익과 공익의 조화, 가치관의 유연성을 높이는 창업가 시민 교육이다.대학은 창업가 시민 양성을 위해 창업가정신을 가진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학제 개편에 들어가야 한다. 학부 과정에 독립적인 창업학과(Department of Entrepreneurship)를 개설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커리큘럼은 창의력 함양과 실행력을 키울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학생 선발은 성적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을 갖춘 잠재적 창업가를 선발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전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창업국가 건설을 위해 초·중·고와 대학이 일관된 창업가정신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해 지속적으로 창업가 시민을 배출해야 한다.
강병오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국내 1호로 창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FC창업코리아 대표이사와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로 글로벌 프랜차이즈학과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창업가정신, 벤처창업, 프랜차이즈 전략 및 자영업 창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