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깨진 유리창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에는 소재는 같지만 배경과 의미가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하나는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범죄가 일파만파로 확산된다고 하는 범죄심리학 이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19세기 중엽에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드릭 바스티아(1801~1850)가 깨진 유리창에 비유해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경제 분석적 오류를 비판한 내용이다.우리가 많이 아는 것은 첫 번째 이론일 것이다. 1994년에 뉴욕 시장에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가 이 이론을 적용해 지하철 낙서를 지웠는데, 그 결과 2년 만에 중범죄 발생률이 급감했다. 지하철 낙서를 깨끗이 지웠더니 강도·살인 등의 중범죄가 확 줄었다는 주장은 정치적으로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괴짜 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에 따르면 뉴욕에서 중범죄가 감소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1973년부터 미국에서 벌어진 낙태 합법화, 경찰병력 증원과 단속 강화 등이 낙서 청소보다 범죄 감소에 더 중요한 원인이었다.경제학적 사고의 오류에 대한 두 번째 이론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바스티아의 비유를 각색하면 이렇다. ‘A는 아들이 거실에서 놀다가 창문을 깨뜨리자, 새 구두를 사려고 모아둔 비상금을 털어 새 창문을 달았다. 상심한 A는 친구 B에게 하소연했다. 그러자 B는 깨진 창문 덕분에 유리장수가 돈을 더 벌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 했으니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한다.’깨진 창문이 사회적으로 포지티브 섬 게임이라고 하는 B의 주장은 맞는 말일까? 여기에 대해 바스티아는 사회적으로 아무 이득이 없다고 비판한다. 경제현상을 올바르게 분석하려면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분간해야 한다. B는 눈에 보이는 이득만 계산했기 때문에 명백한 오류이다. 깨진 창문 때문에 구두장수가 보이지 않는 손해를 입었음을 생각해보면 깨진 창문의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결론은 달라지게 된다.바스티아에게 깨진 창문은 사회적으로 제로 섬 게임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학에서 깨진 창문은 다른 생산적 활동의 기회를 앗아간 것까지 감안해서 제로 섬이 아니라 네거티브 섬 게임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평가야 어떠하든 바스티아 이론이 깨진 창문의 오류로 불리며 지금도 교과서 첫 머리에서 강조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경우 경제 분석에서, 경영전략 또는 정부 정책의 선택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야기하기 때문이다.최근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모 연구소에서 김영란법이 오는 9월부터 시행되면 약 12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발표하자, 비리를 규제하면 경제가 망가진다는 게 경제학적 논리이냐며 인터넷에서 비판 댓글이 넘치고 있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를 금지하자는 취지인데 적용 대상에서 문제의 핵심인 정치인·정당을 빼고 민간 언론, 사학을 넣은 것은 심각한 결함이다. 그러나 경제적 파급 효과에 국한해 보면, 이 보고서는 바스티아가 150년 전에 비판한 그대로 보이는 것(손실)만 계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득)을 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만약 이런 논리라면 창조적 파괴를 수반하는 어떤 혁신도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다고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