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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닉슨의 원기 회복 도운 ‘펑황단총’ 

갈증 해소 등에 효과 ... 108가지 종류 넘고 진품 구하기 어려워 

서영수

▎펑황단총이 생산되는 차오안현의 펑황산은 ‘산이 높고 안개가 짙어야 한다’는 명차 생산의 중요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다.
펑황단총(鳳凰單叢)은 광둥성을 대표하는 반 발효차다. 한 번 마시면 다른 차는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고 할 정도로 치명적 매력을 가진 펑황단총은 22년 간 단절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복원시킨 계기가 된 ‘핑퐁외교’에도 등장한다. “작은 탁구공 하나가 지구라는 큰 공을 움직였다”는 저우언라이의 말처럼 ‘핑퐁외교’는 스포츠 외교의 정수를 보여준 일대사건이었다.

펑황단총 산지 차오현, 중국 차수출 기지로 선정

펑황단총이 담긴 찻잔을 들기도 힘들 정도로 닉슨 대통령은 심신이 피곤했다. 1972년 2월 21일 죽의 장막을 넘어 베이징에 도착한 닉슨은 마오쩌둥을 만나고 항저우를 거쳐 상하이에 도착했지만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국익을 위해 베트남에서 미군이 안전하게 철수하려면 중국이 필요했다. 대신 어제까지 우방이었던 타이완을 버려야 했다. 2개의 중국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닉슨에게 저우언라이는 “국제사회에서 2개의 중국은 이미 없다. 타이완은 중국의 1개 성에 불과하니 중국이 주장하는 평화 5원칙에 명시된 ‘상호 내정 불간섭’ 항목의 해당사항으로 더 이상 미국이 걱정할 사안이 아닌 중국의 문제다”라고 퇴로를 열어주며 닉슨에게 따뜻한 차를 권했다.

펑황단총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신 닉슨은 거짓말처럼 피로가 사라지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인삼처럼 원기를 북돋아주는 훌륭한 차”에 감사하며 연이어 펑황단총을 마신 닉슨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차”라고 감탄했다. 원기를 회복한 닉슨은 1972년 2월 28일 상하이에서 중국이 요구하는 평화 5원칙을 포함한 중·미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냉전의 시대가 저물고 데탕트 시대가 열렸다. 닉슨은 같은 해에 치러진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지만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임기 중 사퇴하는 불명예를 안고 정계를 은퇴했다. 이런 닉슨의 후계자로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자처하고 나섰다. 트럼프 진영은 2016년 세계 정세가 1970년대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분석한다.

펑황단총은 광둥성 차오조(潮州)에 속한 차오안현 펑황산 일대에 분포한 ‘수선’종 차나무로 만든다. 송나라 시절 펑황산은 황실공차원으로 지정됐다.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 황실군대가 직접 주둔하며 펑황산의 차나무를 관리했다. 900년 전부터 세상에 알려진 펑황단총은 맛과 향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해 시중에 유통되는 펑황단총이 108가지 종류가 넘고 앞으로도 새로운 펑황단총의 출현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제조공법·기술에 따라 전혀 다른 차로 탄생


▎1~2. 수령700여 년 된 송종 차왕수(왼쪽)와 펑황단총. / 3. 닉슨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1972년 중국 방문 때 펑황단총을 마신 후 거짓말처럼 피로가 사라지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펑황단총이 생산되는 차오안현은 사방이 천연요새처럼 산봉우리로 겹겹이 둘러싸여 해발 400~1498m에 이르는 굴곡진 산악지형 속에 있어 평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흘 연속 해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비가 잦은 차오안현은 하루에도 햇살과 빗줄기를 번갈아 뿌리기도 하고 수시로 안개를 피우며 날씨가 시시각각 변화무쌍하다. ‘산이 높고 안개가 짙어야 한다’는 명차 생산의 중요 조건에 부합하는 펑황산은 일조량이 짧아 겨울이 빨리 찾아오고 봄에도 추위가 늦게까지 머물다 간다. 연평균 기온이 20~22℃인 아열대기후에 속하지만 첩첩산중에 위치한 차오안현은 여름에는 폭염이 없으며 겨울에도 한파가 없는 차나무 재배지로 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다. 다양한 유기물질이 풍부하고 비옥한 토양은 차나무 성장 과정에서 폴리페놀 형성과 다양한 방향물질 생성에 도움을 준다. 산골짜기마다 다른 생존환경은 같은 수종의 차나무라도 여러 해 동안 각기 다른 발육 과정을 거치며 찻잎 속에 저마다 다른 맛과 향을 갖도록 변이된다. 수령 200년 이상 된 고차수가 3700여주나 되는 차오안현은 1986년 중국 차수출 기지로 지정됐다. 1995년에는 중국 명차 고향으로 공식 지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펑황단총은 알려진 독특한 향이 80여 가지가 된다. 꽃과 과일은 물론 꿀과 오리똥까지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차나무 형태와 생장환경을 구분하고 찻잎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심지어 시대적 배경에 따라 같은 차도 ‘송종(宋種)’과 ‘동방홍(東方紅)’으로 달라진다. 펑황단총의 맛과 향을 좌우하는 것은 원료의 차이뿐 아니라 제조공법과 기술에 따라 전혀 다른 차로 탄생한다.

펑황단총은 찻잎이 새의 부리를 닮아 니아오쭈이차(鳥嘴茶)로 알려졌는데 송나라 말기에 ‘송종’이라는 이름을 황제로부터 하사받았다. 남송의 마지막 황제 자오빙(趙昺, 1272~1279)이 원나라 군을 피해 우둥산에 도달했을 때 심한 구갈을 느껴 물을 마셔도 갈증이 멈추지 않았다. 니아오쭈이차를 구해온 시종이 차를 끓여 황제에게 바쳤다. 차를 마시자마자 황제는 바로 생진현상이 생기며 갈증이 멈추고 기력을 회복했다. 7살배기 어린 황제를 구한 니아오쭈이차는 그날 이후 ‘송종’ 또는 ‘송차’로 불리며 황실의 차가 됐다. 며칠 후 어린 황제 자오빙은 원나라군에 대패하며 자결한다. 송나라는 역사에 묻혔지만 700여 년 묵은 ‘송종’ 차나무는 아직도 건재하다. ‘송차’는 문화혁명 시절 정치적 이유로 한때 ‘동방홍’으로 불리기도 했다. 펑황단총의 맛과 향이 다양한 원인은 자연환경뿐 아니라 집집마다 차를 만드는 기법이 달라서다. 최근에 유행하는 제차기술은 동결건조 공법으로 찻잎의 수분을 제거하는 건조방법이다. 불 맛 대신 신선한 맛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펑황단총은 연간 3000여t 생산되는데 그중 1t 미만이 특급 펑황단총이다. 얼핏 많은 수량 같지만 15억 중국 국민을 생각하면 결코 많지 않아 시중에서 진품을 구하기 쉽지 않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48호 (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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