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경쟁 자체를 비난해서야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 교수·카이스트 청년창업지주 대표

최근 카카오가 한글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러자 유사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스타트업 창업자가 들고 일어났다. 그는 “포털 사업자가 기술을 도둑질해 선심 쓰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곧 다음카카오는 서비스를 중단했다.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비난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나타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네이버의 중소기업 업종을 침해하는 사업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공언했다. 대상은 네이버가 제공하는 가격 비교 서비스, 증권, 웹툰 등 광범위하다.

스타트업을 보호하는 정책엔 찬성한다. 하지만 경쟁 자체를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기업이 경쟁하며 영역을 넓히는 일은 생태계의 한 부분이다. 선진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이크로소프트(MS) 수입의 절반은 MS오피스에서 나온다. MS 오피스는 기존 중소기업이 판매하고 있던 문서 작성과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앱)을 묶어서 반값에 내놓은 제품이다. 그로 인해 워드 프로그램인 워드스타, 비스케일, 하버드 그래픽스 같은 소프트웨어가 한순간에 시장에서 퇴출됐다. e메일 프로그램인 유도라가 성공을 거두자 MS는 아웃룩(Outlook)이라는 무료 제품을 출시했다. 유도라를 인수한 퀄컴의 투자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MS는 경쟁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배포하며 수많은 스타트업의 앞길을 막았다.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는 구글 지도는 어떨까? 구글이 내비게이션을 무료 구글 지도에 결합하자 글로벌 내비게이션 시장이 사라졌다. 스타트업의 기술을 베끼고 가격을 후려쳐온 글로벌 IT 기업은 비난받지 않았다. 오히려 플랫폼 비즈니스 전략의 정석으로 인정 받았다. 글로벌 시장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중소기업만 한다는 법이 없다. 경쟁 제품의 출시를 누구도 죄악시하지 않는다.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는가, 독과점 행위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는지가 판단 기준일 뿐이다.

글로벌 IT 기업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도 있다. 여기엔 창의성과 기술력이란 차이가 있다. 구글의 딥마인드,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가 좋은 예다. 합법적으로 자체 개발이 가능하면 무자비하게 시장을 빼앗지만, 모방 기술로 접근하기 어려우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하며 시장 지위를 지켜나간다. 글로벌 IT 산업을 이끌어 가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이면엔 이렇게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한국에선 먼저 생각하고 시작한 사업 모델은 무조건 보호돼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후발 대기업을 비난하고 언론과 사회도 여기에 편승한다. 그러면 이번 맞춤법 검사기처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쟁 제품이 봉쇄된다. 불공정한 행위는 뿌리 뽑아야 하지만 사회에 팽배한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논리엔 문제가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통용되는 논리는 아니고 소비자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는 경제의 과도한 정치화의 한 현상이다.

경영학에서 이노베이션은 발명과 다르다. 발명이 새로운 것을 착안하는 것이라면 이노베이션은 이를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조직적인 노력이다. 아이디어만으로는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남들이 따라오기 힘든 기술력과 대기업도 함부로 건들기 어려운 수요를 만들어야 인정받는다.

1350호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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