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청년창업이 만병통치약?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오늘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했다. 사뭇 다른 길거리 풍경이 신선했고, 더위도 정점을 지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건물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자 청소 적재물을 잔뜩 실은 화물차가 입구를 막고 있는 게 아닌가. 경음기를 누르려는 순간, 운전자가 차량 위에 올라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을 했다. 잠시 차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작업 장면을 지켜봤다. 가득 실은 화물 위로 밧줄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묶다가 중간중간 힘을 주면서 매듭을 지었다. 안전운행에 필수 조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제 읽는 기사가 떠올랐다.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스펙용 창업을 한다’ ‘창업은 실패했는데 금전적 손실은 없었다?’며 청년창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이었다. 최근 정부의 창업정책이야말로 이제 중간 매듭을 지어가면서 숨 고르기를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일자리는 창업이나 중소기업에서 나온다”며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적인 저성장 시대에 당연한 말씀이다. 우리 정부 역시 창조경제의 핵심 과제로 창업정책에 많은 예산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의 방향이 아니라 정책 실행 과정과 운영에 있다. 애초 사업성 없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창업하거나 대기업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으려고 창업한 사람에게도 정부의 창업 지원금이 흘러가는 사례가 허다하다. 한 해 1000여 개 기업이 새로 생기지만 실제 매출이 발생하는 곳은 절반도 안 된다는 점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창업은 기술과 자본과 경험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열정만으로 도전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크리스 주크와 제임스 앨런은 [창업자 정신]에서 현장 경험에서 형성된 직감을 중시하는 현장 중시(Front-line obsession)를 창업자 정신의 결정적 특성 중 하나로 제시했다.

창업이 일자리 창출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지만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하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더구나 정부가 앞장서 청년창업을 선도하고 장려하는 건 분명 장·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청년창업이 서비스업이나 자영업 등 생계형 창업에 머물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및 관련 기관의 창업지원 사업이 160여 개에 이르고 1년에 수조원의 자금을 쏟아 붓지만 누적 청년 자영업자는 줄어드는 건 왜 그럴까.

기공식만 있고 준공식은 없는 이런 현상은 참신한 아이디어나 혁신적 노력보다는 취업 도피처 내지 대안 정도로 청년창업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지난 정권에서 ‘무늬만 벤처’라는 비아냥 속에 국민의 지탄을 받은 벤처 1세대의 도덕적 해이 탓에 막대한 예산이 사라지고 상실감만 커진 일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대학원 진학과 창업이 취업대란의 대안으로 등장하는 오늘의 현실은 심히 우려스럽다. 앞서 언급한 청년창업에 관한 문제점은 사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예상됐던 일이다. 어느 유명인의 묘비명처럼 ‘내 그럴 줄 알았다’인 것이다.

중소기업청장의 지적대로 ‘신규 고용 창출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기술·아이디어 중심 창업은 매우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느린 것 같지만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1350호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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