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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때론 황금과 식량을 바꿔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바둑 고수들의 ‘바꿔치기’... 비즈니스에서도 지나친 욕심은 금물

▎삼성그룹은 2014년 11월 한화그룹에 방산과 화학 부문을 넘기고 1조9000억원대의 대금을 받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 사진:중앙포토
바둑에서는 ‘바꿔치기’나 ‘교환’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바둑용어 사전에도 이 단어들이 나와 있다. 전쟁의 게임인 바둑에서 바꿔치기를 자주 얘기한다는 것이 좀 특이한데, 이것은 실제 전쟁이나 경영 싸움에서도 바꿔치기가 필요함을 시사해 준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바꿔치기나 거래는 거의 필수적인 활동이다. 바둑의 바꿔치기 전술을 알아보고 비즈니스와의 관련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바꿔치기의 기술: 바꿔치기를 영어로는 ‘trade’라고 한다. trade 하면 보통 ‘거래’나 ‘무역’을 떠올릴 것이다. 바둑의 바꿔치기는 일종의 ‘거래’인 셈이다. 바둑팬들은 바꿔치기라는 말이 귀에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흑백 간에 서로 불만 없는 바꿔치기’라든가 ‘이세돌의 대형 바꿔치기가 통했다’와 같은 표현을 흔히 듣는다. 예전에 한 언론에서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논쟁을 바둑의 바꿔치기에 비유해 기사를 썼다. 필자가 쓴 [현대바둑의 이해]에서는 아예 한 챕터를 ‘바꿔치기 전술’에 할애했다. 바꿔치기가 이처럼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고수들은 누구나 바꿔치기에 능하다. 전투의 이세돌, 계산의 이창호 등 모든 기사들이 바꿔치기의 명수들이다. 그리고 프로기사들은 언제든지 바꿔치기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전에 나온 바꿔치기의 예를 하나 보자.

[1도]는 KB바둑리그에서 한국 랭킹 12위인 나현 7단과 13위인 조한승 9단이 대결한 바둑이다. 두 기사 모두 타이틀을 획득한 적이 있는 상위 랭커들이다. 조한승 9단이 백1로 뛰어 달아나자 나현 7단은 흑2에서 4로 백 두 점을 절단한다. 갑자기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것 같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2도]에서 백1에 끊자 나현 7단은 흑2로 백돌 두 점을 압박했다. 이에 대하여 조한승 9단은 두 점을 살리지 않고 백3으로 끊어 위쪽 흑돌을 공격했다. 이에 흑4로 백돌을 잡고 백은 5·7로 흑돌 네 점을 잡아 바꿔치기가 이루어졌다. 백돌 2점과 흑돌 4점을 교환하는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보면 서로 전의(戰意)를 불태우며 칼을 뽑았는데 결과는 물물교환 형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싸움을 거래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아마추어들이 보기에는 이런 식으로 꼭 바꿔치기를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고수들은 이런 결과를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프로기사들은 많은 장면에서 이런 식으로 바꿔치기를 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바꿔치는 이유: 바둑 실력이 낮은 하수들에게는 바꿔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물을 내주고 상대방으로부터 대가를 받는 활동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중급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기 것을 살리는 데 집중하며 가치를 교환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실상 기브 앤 테이크의 사고를 하지 않으면 바꿔치기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자기 것을 내놓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거래가 성립될 것이다.

그런데 바둑 고수들은 왜 굳이 자기 것을 내 주며 바꿔치기를 할까? 물론 고수라고 해서 항상 바꿔치기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바꿔치기를 하는 몇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어쩔 수없이 자기 것을 버리고 교환을 해야 할 경우다. 가령 살리는 것이 어렵다면 그것을 버리고 다른 대가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비니스에 비유하자면 사업이 잘 안 되어 살리기 어려운 부분을 타인에게 넘기고 대신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로는 돌을 살리거나 자기 집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 것을 버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 때다. 이것은 장사에서 황금과 식량을 바꾸는 것과 같다. 자기가 얻는 효용이 제공하는 것보다 크다고 볼 때 일반적으로 거래는 성립한다.

[3도]는 최근에 둔 신예 기사들의 시합바둑에서 나온 장면이다. 흑1로 두어온 데 대하여 백은 3에 두면 위쪽 대마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마를 살리지 않고 백2로 두어 버리는 작전을 택했다. 흑3에 이으니 위쪽 백돌 아홉 점이 잡혀버렸다. 백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실이다. 이 백돌을 잡아 흑이 35집 이상 벌었다. 백은 어떤 대가를 얻었을까? 백은 이 과정에서 박약해진 왼쪽 흑돌들을 공격할 기회를 잡았다. 다음 A에 씌워 왼쪽 흑돌을 크게 포획하는 작전을 썼다. 이 흑돌들을 잡는다면 이것도 30집이 넘는 수익이다. 백은 이렇게 바꿔치는 쪽이 대마를 살리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고수들이 바꿔치기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대판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흔히 자기 것을 전혀 내놓지 않으려고 하면 큰 싸움이 벌어지는 수가 많다. 이 쪽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상대편도 양보하지 않고 강하게 나오게 되어 있다. 이럴 경우 치열한 혈전이 벌어져 한 쪽이 패망에 이르기 쉽다. 고수들은 이와 같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 바꿔치기를 한다. 요약하면 불가피하거나 이익이라고 볼 경우, 그리고 파국을 피하려고 할 때 바꿔치기를 한다. 이렇게 보면 바둑에서 바꿔치기는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생존과 타협을 위해 자유롭게 구사해야 할 기법인 셈이다.

경영도 바꿔치기: 바둑 고수들이 바꿔치기에 능하듯이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도 바꿔치기에 능해야 한다. 경영자는 특히 고객과의 가치교환을 하는 비즈니스가 주 업무이니 바꿔치기 사고에 더욱 더 능숙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경영자들은 회사에 이익이 된다면 다양한 교환을 불사한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회사끼리 주력 종목을 바꿔치기하는 빅딜도 고려한다.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바꿔치기, 즉 거래적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것은 전혀 주지 않고 남의 것만 가질 생각을 하면 비즈니스나 인간관계에서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두쇠와 같은 인색한 행동을 하면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배척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바꿔치기를 할 때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교환을 할 때는 당연히 내 쪽의 이익이 크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욕심을 부리면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방도 바꿔치기로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 할 것이므로 이 쪽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면 교환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따라서 자신에게 조금 유리한 방향으로 거래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기본적으로 바둑에서는 쌍방의 이익이 비슷하게 교환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석으로 알려져 있는 수많은 모양은 비슷한 이익 배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이 유리하다든지 하면 그 정석은 바둑시장에서 순식간에 퇴출되어 버린다. 정석이 아닌 전투나 집짓기에서도 서로의 이익이 엇비슷하게 거래를 하는 것은 거의 철칙이다.

바둑에서 고수들은 매우 능한, 그러나 하수들은 쉽게 구사하지 못하는 바꿔치기 전술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생과 경영도 끊임없는 가치 교환의 과정이다. 바둑 고수들처럼 언제든지 바꿔치기를 할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을 가진다면 운신의 폭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54호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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