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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 (27)] 규제경제학 창시자 이론으로 김영란법 뜯어본다면… 

 

조원경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
조지 스티글러의 규제포획이론... 규제기관 내부의 자정 노력 필요

▎김영란법 시행 첫 날인 9월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김영란법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돼 있다. / 사진:김영록 기자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범인은 공항 보안요원을 상대로 살인 행각을 벌였다. 그는 반자동 AR-15 소총과 탄창을 3개나 소지하고 있었다. 공항 검색요원 중 1명을 죽이고 10명을 다치게 했다. 몇 년 전 실제 상황이었던 이야기다. 우리는 조승희란 대학생 범죄자가 숭고한 대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버지니아텍 사태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총기 사고는 미국에서 흔한 일이기에 총기에 대한 규제를 두고 미국 사회는 언제나 논란을 벌인다. 미국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왜 총기 소지 규제에 소극적인지 논란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독점 기업이라고 모두 규제할 필요는 없다

정부는 바람직한 사회·경제 질서를 위해 기업이나 개인에게 특정 활동이나 행위를 제한하거나 금지한다. 이것이 규제의 본질이다. 이로 인해 기업과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행동에 제약과 통제가 가해진다. 그런 규제를 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찬반논쟁을 벌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규제를 할 때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나? 정부 규제는 폴 사무엘슨이 서로 상충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하나는 효율성이고 하나는 공정성이다. 다시 말해서 독점이나 외부 비경제에 따른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소득 분배의 불공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당성을 둔 것이다.

공직자 등의 비리를 규제하는 강화된 반부패법으로 첫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을 딴 일명 ‘김영란법’이 9월 28일부터 시행됐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처벌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있다. 이는 기존의 형법상 뇌물죄보다 한층 강화된 것이다. 그동안에는 ‘스폰서 검사’나 ‘벤츠 여검사’ 사건에서처럼 공직자가 금품 수수를 했더라도 공직자의 직무와 상관이 없다며 무죄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단체로 식사 대접을 받았을 경우 1인당 접대 비용은 n분의 1로 상한 여부를 따진다. 기존에는 부정청탁의 대가로 금품이 오갔을 경우에만 뇌물수수·배임수재 등으로 처벌했지만 김영란법에서는 돈이 오가지 않은 부정청탁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 법의 국회 통과 이후에도 강한 찬반 논란이 일었다. 이 법으로 인해 식사 대접, 명절 선물 등이 줄어 내수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발과 부패 척결이라는 법 취지를 지켜야 한다는 찬성 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내수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음식점이나 택배 업체는 물론 명절 때 선물을 공급하는 농수축산물 유통 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것은 고스란히 서민의 피해로 돌아간다는 반대 논리도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 적용 범위와 액수 등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경우에는 정상적인 경제 행위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합헌으로 결정됐고 이제는 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도록 구성원들의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김영란법을 생각하며 한 노벨경제학자를 떠올려 보자. 그의 이름은 198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다. 그는 정부의 규제를 분석 대상으로 하는 규제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스티글러는 1960년대 초부터 규제 정책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1971년 ‘경제 규제의 이론’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사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독점력을 가진 기업을 규제하고 담합한 기업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런 생각을 바꾸었다. 대기업 예찬론자였던 슘페터와 법경제학을 창시한 시카고대의 아론 디렉터의 영향도 그의 생각을 바꾸는 데 일부 작용했다. 보다 중요했던 것은 스티글러 스스로가 연구한 대기업에 대한 계량적·통계적 분석 결과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력이 집중됐다 해도 독점적 행동이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질 좋고 값싸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장지배적 기업이라고 해도 잠재적으로는 경쟁 상황에 처한 것처럼 행동할 수 있어 독점 금지 조치는 불필요하고 오히려 독점에 대한 규제를 가할 경우 자칫 경제에 피해를 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누가 누구를 포획했다는 말인가?

스티글러가 추구한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그는 경제적 자유보다 효율성을 중시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기초로 1930년대 이후 미시경제학적 지식세계를 지배한 에드워드 챔벌린과 같은 좌파사상과 싸웠다. 시장경제의 경쟁 조건은 불완전하고 독점적이기 때문에 정부가 대기업의 독점적 성향을 막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전기요금에 대한 규제, 최소임금제나 임대료 규제 등 어떤 것도 규제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욱 키운다고 주장했다. 규제의 치명적 위험성과 시장의 우월성을 주장한 그에게서 반(反)규제 경제학자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는 그런 노력으로 한때 강렬했던 규제에 대한 열광을 식히고 반규제론자로 거듭나게 된다.

이쯤에서 스티글러의 반규제 지상주의에 반대표를 던지는 여론도 살펴보자. 서민을 위한 임대료 상한제의 효과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스티글러가 계량분석을 통해 밝힌 것은 규제는 시장경제의 결과를 개선해 보편적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할 뿐이라는 것이다. 부를 재분배하고 공동체에 비효율을 떠넘기는 것이 규제라고 본 그는 너무 과격한 시장주의자인가? 그에게서 규제를 싫어하는 정부 불신의 향기가 난다. 그는 규제의 원인을 부의 재분배를 위해 정부로부터 편익을 얻기 위한 이익단체 간 치열한 경쟁 탓이라고 인식했다. 그는 이런 경쟁을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비난했다. 모든 규제가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그는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됐을까?

그는 ‘포획이론(capture theory)’으로 명명되는 독특한 모형을 제시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포획한다는 것일까? 그의 포획이론은 일반인의 상식적인 생각과 다르다. 포획을 당하는 주체는 규제자인 정부다. 포획을 하는 주체는 피규제자인 기업이나 이익집단이다. 누구는 피규제자가 규제자를 포획한다는 말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경찰이 범죄자를 포획하듯이 규제 권한을 가진 규제자가 피규제자를 포획하는 것이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반대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공공의 이익 보호는 환상일 뿐


정부의 각종 규제는 공익을 위해 만들며, 규제 권한을 부여받은 규제기관이 규제 업무를 수행한다. 규제기관은 피규제자가 없으면 조직과 인력이 유지될 수 없다. 그리고 피규제자는 일반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나 특정 이익집단인 경우가 많다. 피규제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제기관에 로비를 할 수밖에 없고, 규제기관은 피규제자를 보호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곳으로 바뀌게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일반 개인의 이익은 무시되고 박탈감이나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사회를 부조리한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규제정책이 실제로는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이에 대해 스티글러의 규제회의론을 들어 보자.

“규제정책의 도입이 공공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중의 요구에 합치할까요? 환상일 뿐입니다. 소비자를 위해 가격과 투자정책을 규제하는 기관들이 본래 목적과 달리 생산자를 위해 활동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는 포획현상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포획현상은 정부 실패의 한 단면이죠. 한국에서 발생했던 저축은행 사태를 보세요.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권을 가지고 저축은행의 부실과 비리를 철저히 단속해야 마땅한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의 부실을 사전에 인지하였음에도 방치했고, 전직 금융감독원 인사들은 여러 불법적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금융기관 감사는 금융감독원 출신이 맡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죠. 피규제자인 저축은행은 감사직을 미끼로 금융감독원 인사들을 포획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저축은행의 감사들은 저축은행 비리를 앞장서서 덮어주는 선봉장으로 전락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한국 언론 기사를 보세요. 모 저축은행의 경우, 임직원들이 영업정지 전날 밤 친인척과 VIP에게만 예금을 인출해 주었잖아요. 당시 그 저축은행에는 금감원의 감독관이 3명이나 파견돼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고객예금을 무단으로 송금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공문만 보냈을 뿐 사실상 특혜 예금인출을 방관했어요.”

이쯤에서 피규제자에 포획된 규제기관은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스티글러의 생각은 어떨까?

“포획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든 규제기관을 없애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규제기관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차단할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규제기관 내부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게 제 이론의 본질입니다. 규제기관들이 포획현상에서 벗어나 공익에 봉사하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역사적 포획이론의 사례를 한번 들어 보자. 경쟁에 직면한 양초업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태양을 가리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하면 양초업자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이 19세기 프랑스에 있었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보호주의자들이 내놓는 대책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무의미한 주장인지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그중 포획이론을 내세운 양초업자들의 주장 한 대목을 보자.

“태양의 자연광(自然光)을 차단해 인공조명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게 되면 프랑스에서 수많은 산업이 발달하게 될 것입니다. 양초산업이 살면 유지(油脂)를 제공하는 소와 양이 더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목장·육류·모직·가죽·비료를 비롯한 농업자원이 늘어날 것입니다. 항해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척의 배가 고래를 잡으러 떠날 것이고, 머지않아 우리는 프랑스의 명예를 지킬 수 있고 청원인들의 애국적 자존심에 부응할 수 있는 해군을 갖게 될 것입니다. 파리의 상점들은 또 어떻겠습니까? 샹들리에, 램프, 천정등, 촛대의 금장식, 구리, 크리스털이 넓은 상점에서 반짝일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신다면 우리 조명업자들의 청원으로 생활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프랑스 국민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불공정한 상황을 시정할 법을 하나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탄원은 우리 국민 모두가 낮에는 모든 창문과 모든 틈새를 막고 커튼을 쳐서 햇빛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하는 법률을 제정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부디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양초업자 일동.”

부당한 지대 추구 행위에 대한 일그러진 자화상

태양광을 가려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 양초업자들은 규제포획을 시도한다. 경제 주체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을 흔히 경제학에서 지대추구 행위라고 한다. 로비·약탈·방어 등이 만연해 경제력 낭비 현상이 사회 도처에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대(rent)란 한 사회 안에서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이권을 뜻한다. 아무리 정직하게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기존 기득권자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는 경쟁적인 지대추구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지대 추구 행위는 고던 툴록의 논문(1967년)에서 비롯됐다. 특정 경제 주체가 면허 취득 등을 통해 독과점적 지위를 얻게 되면 별다른 노력 없이 차액지대와 같은 초과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각 경제 주체들이 이와 같은 지대를 얻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살벌하게 경쟁을 벌인다. 결국 규제포획이론과 상응되는 말이다. 툴록 논문에서 독점이나 관세 부과에서 발생되는 생산자의 이윤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치열한 노력과 경쟁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 또 다른 형태의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사회적 비용은 독점을 만들거나 적당한 관세부과를 위해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하면서 지불하는 유·무형의 여러 가지 자원 손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대추구 행위는 후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과거 정부 주도의 고도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독점 혹은 관세 유지와 관련돼 나타난 정경유착에 의해 기업들의 지대추구 행위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김영란법은 로비스트들의 규제포획과 지대추구 행위를 근절하려는 취지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문제는 앞으로 이 법을 통해 큰 부작용 없이 그러한 행위를 근절시켜야 하는 데 있다. 누군가는 선과 악 흑백논리가 아닌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가의 측면에서 이 법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장기적 관점에서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자며 이 법을 바라본다. 공식적인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패인식 지수는 매우 낮다. 국민들은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정부패가 반드시 척결돼야 한다고 본다. 스티글러는 규제포획이론을 주장한 자유주의자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스티글러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자유주의의 한계를 인정한 법이다. 그 법이 우리 사회의 정화 노력에 일조해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를 바란다.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1911년 1월~1991년 12월) :미국의 경제학자로 198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시카고 경제학파의 핵심적인 인물이다. 스티글러는 1971년에 발표한 규제의 경제이론에서 규제포획이론을 발표했다. 규제포획은 이익단체나 다른 정치적 참여자들은 정부의 규제적·강제적 권력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법과 규정을 바꿀 거라는 주장이다. 스티글러의 가장 큰 업적은 논문 ‘정보경제학(The Economics of Information)’에서 드러난다. 밀턴 프리드먼은 스티글러가 경제학의 한 분야를 새로 창시했다며 이를 높게 평가했다. 이 논문으로 스티 글러는 정보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62년 발표한 논문 ‘노동시장에서의 정보(Information in the Labor Market)’에서 마찰적 실업 개념을 고안해냈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 있다.

1354호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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