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옥 절반이 R&D센터... 산업용 신소재 개발로 미래 먹거리 확보
▎광교테크노벨리 신사옥에서 포즈를 취한 에이씨티 이보섭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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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의 광교테크노밸리에는 8층짜리 신사옥 5개 층을 연구실로 쓰는 회사가 있다. 총 직원 88명 중 절반이 연구원이며, 해마다 매출의 10% 이상을 신기술 개발에 재투자한다. 지난 15년 간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로레알 등 국내 외 유명 화장품 기업에 고기능성 화장품 원료를 공급해온 에이씨티(ACT, Advanced Cosmeceutical Technology)다. 2013년 코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는 현재 약 250개의 화장품 원료를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매출 176억원을 기록했다.지난 10월 12일, 에이시티의 성장을 이끈 이보섭(57)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소 원료개발팀에 19년 간 몸담은 연구원 출신의 기업가다. 연세대학교 화학과와 카이스트 유기합성 대학원을 나온 이 대표는 2001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서울 양재동에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사업 초기 납품 대금으로 어음을 받으면 바로 할인해서 직원들 월급 주기도 바빴다”며 “3개월치 월급 줄 정도의 여유 자금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사용되는 화장품 원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아모레퍼시픽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원료 개발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었고, 경쟁력 있는 원료를 만들면 해외에 수출도 가능할 거란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죠. 처음엔 연구실도 없어서 지인이 소개해준 연구기관 실험실에서 겨우 실험했고, 다른 회사 공장을 빌려서 원료를 만들었어요. 직원들을 데리고 남의 공장에서 밤을 새워 작업하기 일쑤였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품을 만들었지만 불량이라 판매를 못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돌아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직원들과 함께 눈물 젖은 우동을 먹으면서 ‘내 인생은 왜 이런가’라며 신세한탄도 많이 했습니다(웃음).”
캡슐화 기술로 15년 만에 고속성장하지만 이 대표는 사업 초창기 어려움을 딛고 에이씨티의 핵심 기술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화장품에 사용되는 유효성분을 안정화시키는 ‘캡슐화 기술(Capsulation)’을 비롯해 자연계에 극미량 존재하는 물질을 친환경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생물전환 기술(Bioconversion)’, 피부에 유효한 효능을 나타내는 물질만을 선별적으로 얻어내는 ‘천연물 추출·분리·정제 기술’,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제조하는 ‘고분자 합성 기술’이 등이다. 특히 아모레퍼시픽과의 프로젝트 성공을 계기로 완성한 캡슐화 기술은 오늘의 에이씨티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 “운 좋게도 창업 후 얼마 안 돼 ‘아이오페 레티놀 2500’에 사용되는 안정화 캡슐을 만들게 됐어요. 순수비타민 A인 레티놀(retinol) 성분은 원래 약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건데, 화장품에 그냥 집어넣으면 모두 파괴될 정도로 불안정해요. 또 레티놀은 피부에 순간적으로 흡수되면 자극도 심하죠. 19번 실험에 실패하고 20번째에 마침내 안정화에 성공했고 흡수 속도도 조절할 수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안정화 기술의 연구·개발에 더욱 주력하게 됐습니다.”끊임없는 노력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이 대표는 2003년부터 아모레퍼시픽에 홍삼 추출물 원료를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에이씨티를 본격적인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다. 고급 한방화장품 브랜드인 설화수에 들어가는 이 원료는 에이씨티의 또 다른 대표 기술인 생물전환 기술을 통해 얻어진다. 이 기술은 국내 화장품 업체 가운데 에이씨티가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생산 과정이 워낙 복잡해서 아무나 따라할 수 없다”며 “경쟁사는 물론 제약회사들도 기술 이전을 제안할 정도”라고 귀띔했다.“인삼을 베이스로 하는 몇 가지 원료를 갖고 있습니다. 그중 아모레퍼시픽에 가장 많이 공급하는 홍삼 추출물 원료가 대표적입니다. 먼저 친환경 인삼을 구입해서 홍삼으로 만든 후 거기서 진액을 추출합니다. 이어 추출한 진액에 효소를 넣고 생물 전환 기술을 통해 캡슐 형태로 만급니다. 그러면 원료의 성분이 거의 파괴되지 않고 피부에 흡수되죠. 원료를 가공하지 않고 화장품에 넣으면 성분이 밑에 가라앉아 버리거나 피부 속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캡슐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올해 초 이 대표는 자체 브랜드 ‘아쿠탑(AQUTOP)’을 출시하며 화장품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영어의 ‘aqua(수분)’와 ‘top(최고)’을 결합해 만든 브랜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이씨티의 원료 개발 기술력에 최근 화장품 트렌드인 보습력을 강조한 브랜드다.“한마디로 물이 다른 화장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화장품에 흔히 들어가는 정제수 대신 우리가 자체 개발한 ‘셀비오니끄 워터(celbioniqu water)’라는 특허 원료를 사용했죠. 여기에 금불초꽃 추출물, 카카오 닙스 추출물, 황금누에 추출물 등 다양한 성분을 접목시켜 보습력은 물론 주름 개선 기능이나 미백, 브라이트닝 기능을 강화했어요. 본격적으로 제품 라인업을 갖춘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능성 원료들을 꾸준히 개발해 아쿠탑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이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최근 에이씨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산업용 신소재 사업과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선 캡슐화 기술과 고분자 합성 기술 등을 활용해 휴대폰 액정에 들어가는 고경도 코팅소재를 비롯해 항균제와 소취제 같은 산업용 신소재 사업에 진출한다는 복안이다.이미 기술력을 인정받아 글로벌 기업들과 공동으로 샘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스마트폰·디스플레이·가전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식물조직배양 기술을 접목해 가정에서 쉽고 편리하게 산삼 배양근을 만들 수 있는 생활가전을 조만간 시중에 선보일 계획이다. 이 대표는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 에이씨티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며 “화장품을 비롯해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계속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체 브랜드로 화장품 시장에 도전장“국내 화장품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한국에서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자칫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어요. 근데 그럼에도 화장품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중국 시장 때문이죠. 현재 중국인 중 화장품을 쓰는 인구는 3억 명에 불과합니다. 조만간 이 인구가 5억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합니다. 중국 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고, 한국 화장품 업체들에게도 그만큼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겁니다. 에이씨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착실하게 씨앗을 뿌려왔습니다. 이제 열매를 거둬들일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내년부터는 연구 중심 기업에서 벗어나 영업력을 더욱 강화하고, 중국을 교두보 삼아 동남아시아·브라질·중동·인도 등지로 입지를 더욱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2018년까지 매출 1000억원대의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