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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탁 기자의 바이오 이노베이터 (1) | 남학현 아이센스 사장] 흐르는 물처럼 멈춤 없이 순리대로 도전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실험실 벤처에서 혈당측정기 글로벌 기업으로 매출의 85% 해외에서 올려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이 주목받는다. 바이오 강국을 꿈꾸며 숱한 실패를 딛고 도전을 이어온 혁신기업과 CEO를 소개한다.


2000년 광운대 화학과의 차근식·남학현 교수가 공동창업한 아이센스의 주력 제품은 혈당측정기다. 당뇨병 환자가 혈당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진단기기다. 연구실에서 일하던 석·박사 과정 제자 6명도 창업에 참여했다. 3년짜리 정부 연구 과제를 진행했던 게 사업으로 이어졌다. 생체물질을 분석하는 초소형 기기를 개발하는 과제였는데, 2년차부터 사업화할 중소기업이 과제를 주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과제가 좋고 연구비도 많기에 차 교수와 남 교수 모두 계속 하고 싶어 했다. 정부 담당자에게 문의하자 직접 회사를 설립해서 과제를 주관해도 된다는 답이 왔다. 남학현 아이센스 사장은 “평생 연구해왔던 익숙한 분야인데다 성장 가능성도 큰 아이템이라 사업에 뛰어 들었다”고 말했다.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지 16년이 지났다. 대학 실험실 벤처기업은 지금 직원 400명,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업계에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당시 한국 혈당측정기 시장은 로슈·존슨앤드존슨·애보트·바이엘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굴지의 대기업이 활동하는 시장에 사업에 문외한인 교수 두 명이 창업해 시장에서 자리잡았다. 지금은 한국 시장점유율 2위를 달리며 1위 로슈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의 성적은 더 좋다. 세계 80여개국에 수출하며 매출의 85%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남 사장은 성공 비결을 묻자 “물처럼 살면 된다”고 말했다. 회사 사무실과 실험실엔 경영철학이나 달성해야 할 실적에 대한 어떠한 구호도 찾아 볼 수 없다. 경영자의 역할은 임직원에게 합리적인 업무를 제공하며 기업을 이끌어 가는 것으로 충분하단 생각에서다. “물은 섭리를 따라 움직입니다. 낮은 곳을 향하지요. 가다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갑니다. 하지만 멈추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갑니다. 순리를 지키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지요. 우리 회사도 그렇게 걸어왔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전진


그는 연구 아이템을 들고 사업을 시작한 학자 출신 기업인이다. 처음엔 매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했다.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펀딩을 받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라 채용한 직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영자라는 걸 실감했다. 사업 아이템은 혈당측정기다. 남 사장은 성능이 더 우수한 혈당측정기를 앞세우면 시장을 파고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2003년 개발에 성공한 자가 혈당측정기 ‘케어센스(CareSens)’를 들고 시장 개척에 나섰다. 남 사장은 “경쟁력을 갖춘 만큼 기대가 컸지만 이름 없는 벤처기업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제약회사와 병원에 납품할 길을 못 찾았다. 담당자를 만나지도 못한 채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이미 탄탄한 유통망을 구축한 대형 업체의 영업력을 과소평가한 결과다. 하루가 다르게 재고가 쌓이는 암담한 상황에 예상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한국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글로벌 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직영 체제로 전환했다. 하루 아침에 공급할 제품이 사라진 대리점 사업자에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다급해진 대리점 사업자들이 아이센스에 주목했다. 좋은 제품이 쌓여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결과적으로 아이센스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전국 유통망을 확보했다. 남 사장은 “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사업을 시작한 탓에 고생이 많았다”며 “지금은 국내외 영업 조직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 위기는 2007년에 찾아왔다. 한창 회사가 잘 나가던 시기다. 혈당측정은 진단용 스트립에 혈액을 묻혀 진단기기에 넣어 분석한다. 혈당측정기와 달리 스트립은 소모품이라 꾸준히 매출이 나오는 제품이다. 사업 초기 아이센스는 광운대 앞 임대 공장에서 하루 3만개의 스트립을 생산했다. 기업이 성장하자 2007년 강원도 원주에 공장을 지었다. 은행에선 환율상 이익을 볼 수 있다며 엔화 대출을 권유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갑자기 부채가 두 배로 늘어났다. 급하게 공장을 가동했지만 안정화에 시간이 걸려 불량률도 높았다. “회사가 이렇게 망하는가 싶었습니다. 부채 생각만 하면 등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1년 만에 불량률이 크게 줄며 사업이 정상화 됐습니다. 장부 빚은 여전히 두 배였지만 매월 납부하는 이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착실히 부채를 줄였고, 2009년 코스닥에 상장하며 자금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한국의 규제 피해 유럽에서 원격진료 시범 사업

아이센스 성공의 가장 큰 힘은 기술력에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았기에 영업망을 갖출 수 있었고, 빠른 시기에 불량률을 줄였기에 환율 타격에서도 벗어났다. 지난 16년 간 아이센스는 1~2년마다 꾸준히 신제품을 출시했다. 데이터 저장, 저혈당 알림 등 기능을 강화했다. 지금은 코딩이 필요 없는 혈당측정기, 무선 통신이 가능한 혈당측정기, 현장검사용 혈액분석기 등 바이오센서 특허 146개(해외 83개, 국내 63개)를 확보했다.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알 수 있는 혈당측정기, 피부 아래에 작은 센서를 넣어 주기적으로 혈당을 재는 연속 혈당측정기 같은 제품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도 도움이 됐다. 2004년 코트라의 소개로 미국 혈당측정기 제조 업체인 아가매트릭스에 납품을 시작했다. 세계 5위 혈당측정기 판매 업체인 일본 아크레이도 아이센스의 주요 고객이다. 이 회사는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에 스트립을 납품하고 있다. 2010년에는 뉴질랜드 정부의 입찰에 참여해 스트립 독점 공급권을 따냈다. 핀란드에선 색다른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해 당뇨환자의 건강 정보를 원거리에서 자동으로 분석하는 기술이다. 한국에서 규제 때문에 막혀 있는 원격진료 분야다. 남 사장은 “한국이 막히면 규제가 적은 유럽에서 살길을 찾아야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살아 남을 수 있다”며 “기술 개발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이며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1357호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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