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더 과감한 R&D 투자가 절실하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금은 익숙한 산업구조와 기술이 언제, 어떻게 와해될지 모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 표현은 올 초에 세계경제포럼(WEF)의 다보스 포럼에서 의제로 채택하면서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본래는 독일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2011년부터 준비했던 ‘인더스트리 4.0 전략’이 발단이었다. 연원이야 어떠하든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 하면 인공지능(AI)·로봇·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이 주축이 되어 생산과 소비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1차 혁명(증기기관과 기계화), 2차 혁명(전기와 대량생산), 3차 혁명(컴퓨터와 자동화)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산업혁명은 슘페터 용어로 표현하면 창조적 파괴와 다름 아니다. 창조적 파괴의 시대에는 방심하면 글로벌 기업이라 해도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디지털 카메라 기술 개발을 등한시하다 몰락한 코닥, 자신이 자랑하던 세계 최고 수준의 아날로그 기술에 갇혀 2014년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은 소니, 애플의 스마트폰 기술에 한순간에 도태된 노키아 등이 좋은 사례다.

이처럼 작은 충격에도 기업의 운명과 국가의 경제적 성패가 확연히 달라지는데, 4차 산업혁명의 창조적 파괴 속도와 파장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할 것이라고 본다. 믿거나 말거나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에 따르면 인공지능 혁명은 1차 산업혁명 당시에 비해 속도는 10배 빠르고 규모는 300배, 그리고 사회적 충격은 3000배나 더 크다고 한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은 선진국의 앞선 기술에 개도국의 제조효율에 기반한 생산으로 분업화된 지금의 국제무역 구조까지 뒤흔들 가능성도 거론된다. AI 로봇이 생산을 대신하는 스마트 공장이 구현되면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굳이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서 개도국에 가서 제품을 조립 생산해서 역수입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수출로 외화를 벌어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해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서는 섬뜩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만의 하나라도 우려를 해소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우리 스스로 창조적 파괴 관련 기술에 남 못지않게 투자하는 것이다. 이정동 교수 등이 쓴 [축적의 시간]에 나온 표현을 빌자면 실행 역량 중심에서 벗어나 개념설계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든 기업이든 불확실한 산업 혁명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혁신을 해야 하고, 혁신의 첫걸음은 연구와 기술개발에 대한 과감한 투자이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율이 높다고 알고 있지만 여기에는 착시가 있다. 각국에서 R&D 투자를 많이 하는 50개 기업을 추려서 이들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율을 보면 미국은 8.5%, 일본은 5%, 독일은 4.3%인데 비해 한국은 3%에 불과하다. 저량(stock)으로 보나 유량(flow)으로 보나 우리 기업의 R&D는 경쟁국 대비 매우 빈약한 상태이다. 그런데도 창조경제 기치를 내세웠던 현 정부는 대기업의 R&D 투자에 대한 조세유인을 오히려 줄였다. ‘인더스트리 4.0’의 진원지였던 독일은 물론이고 미국·일본·중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가 기업이 더 많은 R&D 투자를 하도록 조세혜택을 늘려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라서 은근 걱정이다.

1361호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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