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정수현의 바둑경영] 삼곤마(세 개의 대마가 몰린 형국)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국내 정치·경제·외교 상황과 닮아... 냉정하게 하나씩 풀어가야

▎2014년 8월 열린 국수산맥배 페어바둑에 참가한 린하이펑 9단(오른쪽). 린하이펑 9단은 위기상황에서 금방 쓰러질 듯하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결국에는 승기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 사진:중앙포토
총체적으로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우리 경제는 이미 적신호가 켜진 상태인데 여러 복병을 만나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이에 대한 강경책으로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런 와중에 국정농단이라는 돌발 변수가 나타났다. 바둑으로 치면 세 개의 대마가 몰리는 삼곤마(三困馬)의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우리는 한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높은 성을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삼곤마는 곤란해: 곤란한 일이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골머리를 앓는다. 만일 곤란한 일이 두 가지가 생긴다면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바둑에서는 두 개의 위험한 돌, 즉 양곤마만 있어도 위기상황이라고 본다. 양곤마가 몰리게 되면 무엇인가 큰 타격을 입고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곤마는 무사하기 어렵다’라는 격언도 있다. 그런데 만약 삼곤마라면 어떨까? 곤란한 일이 세 가지나 겹친다면 거의 수습이 불가능한 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수의 바둑에서는 삼곤마의 상황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고수들은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위기관리를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삼곤마로 쫓기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국면이 되면 괴롭기 짝이 없다. 바둑판을 통해 삼곤마의 상황을 보기로 하자.

[1도]와 같은 장면이 있다고 하자. 흑1에 두자 백◎의 두 군데 미생마가 공격당하는 형국이다. 이 양곤마를 동시에 수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상변에 백◎의 미생마까지 있다. 이 세 곳의 위험한 돌을 무사하게 처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이와같은 삼곤마 신세라고 하면 과장일까. 하지만 여러 문제가 뒤엉켜 우리를 추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결코 지나친 비유는 아닐 것이다. 지혜를 모아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이 단결해 추락하는 경제를 살려내야 할 상황에 정치가 발목을 잡게 생겼으니 유례없는 비상상황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2도]에서 삼곤마의 타개가 왜 어려운가를 보자. 백1로 오른쪽 미생마가 달아난다고 하면 흑2에 두어 공격할 것이다. 이번에는 상변 쪽의 미생마를 백3으로 달아나야 한다. 그러면 흑은 4에 밀어 공격해 온다. 이렇게 양쪽이 동시에 공격당하면 타개하기가 만만치 않다. 곤마가 하나라면 달아나거나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동시에 몰리면 타개책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아래쪽에 또 한 무리의 곤마가 있는 상황이라면 셋 중 하나는 쓰러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기서 보면 양곤마나 삼곤마의 상태가 되면 노력과 에너지를 분산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 곳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곳이 망가지게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삼곤마를 스스로 만드는 것은 바둑을 패국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삼곤마 상황이라고 해서 반드시 패배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공격능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냉정하게 잘 대응하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사회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전략을 찾아야 한다.

냉정한 마음가짐이 중요;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전략적 목표는 다중의 위기를 무사히 극복하고 다시 도약하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고 정치를 바로잡고 북핵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곤마의 위기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둑을 통해서 보면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삼곤마의 불리한 상황이라고 해서 너무 비관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이판사판으로 무리를 하게 되어 추락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또한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도 안 된다.

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위기상황에서는 기분에 따라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미 버린 몸이라는 생각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하면 얼마 못 가 일거에 무너진다. 냉정하게 판세를 읽으며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려야 한다. 승부의 저울추는 왔다 갔다 하는 법이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면 찬스가 온다. 불경기가 지나면 호경기가 오듯이 도약의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이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전체 판세를 읽으며 최대한 냉정·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왕년에 일본 바둑계의 최고봉으로 군림했던 린하이펑(林海峰) 9단은 불리한 가운데서도 꾹 참고 견뎌내는 전법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별명이 ‘오뚝이’ 또는 ‘이중허리’로 불렸다. 린하이펑 9단은 위기상황에서 금방 쓰러질 듯하면서도 무릎을 꿇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결국에는 승기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바둑을 둘 때 비슷한 실력이라면 냉정·침착한 사람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감정의 지배를 받아 흥분하거나 의기소침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수들은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대결했을 때 기계가 갖는 강점으로 감정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만큼 승부에서는 유리한 법이다. 여러 가지 위기를 만난 우리도 냉정·침착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감정적인 대응으로는 경제를 살리기도 어렵고 군사·외교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다른 방면에의 악영향 최소화: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흔히 ‘승부수’라고 하는 전략이 있다. 이것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써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옛날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 단식투쟁을 하여 상황을 극복한 것이 승부수 전략이다. 이 전략은 성공하면 위기극복의 묘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하면 패배를 앞당기는 패착이 되는 단점이 있다. 말하자면 리스크가 큰 전략인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배수진을 치고 필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그런데 양곤마나 삼곤마로 쫓기는 상황에서는 이런 승부수를 쓸 여력이 많지 않다. 우선은 대마의 안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따라서 모험을 걸기보다는 곤마들을 무사히 수습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때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한 쪽을 처리하느라고 다른 쪽에 악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거나, 군사·외교 면에 부정적 효과를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쪽을 해결하려다가 다른 쪽에서 피해를 많이 본다면 그것은 위기극복으로 하책 중의 하책이다.

[3도]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백은 일단 가장 중요한 곳인 오른쪽 돌을 백1로 달아나야 한다. 흑2로 공격해 온다면 백3·5로 자체에서 삶을 도모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백1 쪽에 크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고 수습한 모습이 된다. 아직 백이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이렇게 해 놓으면 백은 하나의 돌이 수습되어 기회를 엿볼 수 있다. 급한 문제를 하나 처리하고 나면 부담이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현 상황에서 우리는 정치적인 문제가 경제 등 다른 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또한 대북 문제도 우리 경제와 국가적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아야 한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61호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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