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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현장을 가다 | 다이슨] 위험·실패 감수하되 완벽함 추구 

 

맘스베리(영국) =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직원 3분의 1이 엔지니어·과학자... 기능 따로 디자인 따로 통하지 않아

▎다이슨 창업자가 주요 제품에 들어가는 디지털 모터를 다루고 있다. / 사진: 다이슨 제공
영국 런던에서 차로 두 시간여 걸리는 남부 윌트셔의 시골 마을 맘스베리. 무릎 높이 정도의 낮은 대문마저 집집마다 활짝 열어놓고 지내고, 선술집 다락방이 마을 대표 여관일 만큼 호젓한 이곳에 첨단 가전제품 업체인 ‘다이슨’이 있다. 1993년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를 내놓으며 유명해진 이 기업은 한국에선 ‘날개 없는 선풍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이슨 본사는 독특한 형태의 청소기들이 번쩍이며 입구부터 전시돼 있지 않았다면 항공 관련 회사로 착각할 법한 외관이었다. 정문 앞 정원에는 1950년대 해리어 점프 전투기며 40년대 활약하던 1인용 투명 헬리콥터(벨47) 등이 전시돼 있다. 탁 트인 새 구내 식당의 천장에는 6.5t이나 되는 잉글리시 일렉트릭사의 라이트닝 전투기가 냉전시대 때 활약했던 모습 그대로 매달려 있다.

다이슨 본사에서 만난 모터·동력시스템 개발 최고 책임자 매트 차일드는 “나도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공학자 출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회사엔 F1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던 이를 비롯해 미생물학이나 음향 공학 전공자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전 직원의 3분의 1인 2000여명이 엔지니어·과학자라는 것이다. “항공기를 개발하다가 왜 청소기나 선풍기 같은 소형 가전을 만드는 회사로 옮겼느냐”고 묻자 “내가 만드는 건 가전이 아니라 최첨단 디지털 초소형 모터”라고 답했다.

모터·배터리도 직접 개발


▎다이슨은 젊은 과학자·엔지니어들로 가득한 본사를 ‘맘스베리 캠퍼스’라고 부른다. 전투기를 천장에 달아 놓은 구내식당.
창업주인 제임스 다이슨(69) 회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는 남들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ignore) 문제를 푼다”고 강조했다. 다이슨이 지난 4월 내놓은 헤어 드라이어는 이런 다이슨식 문제 해결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막스 콘체(47) 다이슨 최고경영자(CEO)는 “4년 동안 600개의 시험 모델을 거쳐 나온 제품”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헤어 드라이어는 모터가 윗 부분에 달려 있다. 때문에 사용할 때 무겁고, 귀에서 가까워 소음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손잡이 쪽으로 모터를 달기 위해 다이슨은 주먹 만한 모터를 동전 크기로 줄인 초소형 모터 개발에 들어갔다. 인종·연령·성별에 따라 다른 모발 상태를 반영하기 위해 5000만 파운드(약 900억원)를 들여 모발 과학 연구소를 세웠다. 머리 말리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량 등을 시험하는 기계도 만들었다. 강한 모터를 만들었더니 소음이 너무 심했다. 그러자 아예 임펠라(톱니바퀴처럼 생긴 모터 부품)의 날을 11개에서 13개로 늘려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소리가 나도록 했다. 새 헤어 드라이기의 이름이 ‘수퍼소닉’, 영어로 초음속인 이유다. 차일드는 초소형 임펠라를 보여주며 “항공기 엔진 부품을 축소시킨 것 같은 모양 아니냐”고 자랑스러워했다. 다이슨은 청소기·선풍기 등을 만들지만 이런 식으로 모터부터 무선청소기의 충전용 배터리까지 모두 자체 개발한다. 가전 제조사라기보다는 첨단 모터와 배터리 회사인 셈이다. 다이슨 회장은 “1999년부터 모터를 자체 개발했다”며 “영국 시골의 작은 회사가 하기엔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10년 동안 3억 파운드(약 5400억원)를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정교하고 강력한 모터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의 중심에는 ‘기술 우선주의’가 있다. 다이슨 회장도 발명가이자 현역 엔지니어다. 매주 500만 파운드(약 74억원)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지난 9월 2억5000만 파운드(약 3724억원)를 들여 새로운 RDD(연구·디자인·개발) 캠퍼스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미래 먹거리인 로봇과 에너지 저장장치, 인공지능 등 최첨단 프로젝트를 연구한다.


▎다이슨 본사의 음향테스트실. / 사진: 뉴시스
다이슨은 날개 없는 선풍기와 소형 청소기 등의 첨단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연구소 이름에 디자인이 들어가 있는 것과는 달리 다이슨에는 디자인 연구실이 별도로 없다. 콘체 CEO는 “디자인과 기술 개발을 따로 보지 않는다. 모든 디자인은 그 기능을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형태다. 디자인 따로, 기능 따로는 다이슨 방식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날개 없는 선풍기의 가운데가 뻥 뚫린 것도 공기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지, 디자인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회사 곳곳에 있는 항공기며 헬기 등을 둔 것은 기능과 디자인이 하나로 결합한 ‘디자인 아이콘’을 수시로 접하는 것 자체가 디자인 공부라는 철학에서다.

다이슨은 최근 ‘2세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창업주 제임스 다이슨(69)의 장남인 제이크 다이슨(43)은 “혼자 힘으로 서고 싶어서 2004년부터 조명 회사를 운영했지만 1년 반 전 다이슨에 회사를 매각하고 합류했다”고 밝혔다. “다이슨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서 더 늦어지면 아예 가업을 이어받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했다. 제이크 자신도 37년 동안 수명이 유지되는 반영구 LED 조명을 만든 발명가이자 엔지니어다. 그는 다이슨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아들이 승계 준비하는 가족경영


▎다이슨이 지난 4월에 내놓은 헤어드라이어 ‘다이슨 수퍼소닉’.
다이슨이 가족경영을 택한 이유도 ‘기술 중심주의’ 때문이다. 아버지 제임스 다이슨 회장은 “나는 당분간 은퇴할 생각이 전혀 없다. 요즘도 엔지니어 책임자로서 시제품 만드는 데 골몰한다”면서 “다이슨이 (상장하지 않고) 가족기업으로 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야 주주들을 신경쓰지 않고 큰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자유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또 기술에 근거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이슨은 홍보 등 사무직 직원을 뽑을 때도 다이슨 청소기 부속을 조립하는 시험을 치르게 할 만큼 기술을 중시한다.

부자(父子)는 경영 철학도 꼭 닮았다. 글로벌 1등 기업의 비결을 묻자 아버지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 끊임없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들은 혁신의 비결로 ‘위험 요소를 감수하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계속 노력하는 것’을 꼽았다.

1361호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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