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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의 이 한 문장] 대열이 무너지면 숫자는 의미 없다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장
물고기 떼를 몰듯이 상대방을 몰고, 적의 대열이 무너졌다고 판단되면 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강하게 찔러 넣어야 한다. 이때 여러 명이 몰려 있는 곳을 무턱대고 공격해서는 안 되며, 적이 나오는 방향을 예측해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을 포착해 적을 무너뜨릴 허점을 찾아 공격해야 한다. -물의 장

혼자서 여러 명의 적을 상대할 때의 전술이다. 방어와 공격을 교차하면서 차례차례 대열을 무너뜨리면 혼자라도 여러 명을 상대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동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침착하게 공격하면서 적의 대열을 무너뜨리면 지체하지 말고 더욱 공격을 가해 승리를 굳히라고 가르친다. 여러 명의 적이지만 각각의 목숨은 하나다. 하나씩 공격해 기선을 제압한 후 대열을 무너뜨리면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은 무사시의 실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불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함이다. 상대방은 숫자를 믿고 교만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침착하게 방어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맞받아치면 의외로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일단 대열이 무너지면 숫자는 의미가 없다.

서양 역사에서 소규모 병력이 대군을 상대로 분전을 벌인 가장 유명한 전투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군대와 그리스 연합군 간에 테르모필레에서 벌어졌다. 페르시아 100만 대군에 맞선 그리스 연합군은 7000여명에 불과했다. 1대 100의 절대적 병력 차이로 평원에서의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그리스 연합군은 좁은 협곡에 진을 치고 페르시아 대군과 격전을 펼쳤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에도 좁은 협곡의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는 그리스 연합군의 방어망을 돌파할 수 없었던 페르시아 군은 첩자에게서 얻은 정보로 우회로를 통해 배후를 공격했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지휘하는 스파르타 정예병력 300명을 비롯해 1000명의 병사가 전사하며 패배하였지만 3일 간 진격을 저지한 투혼이 그리스 전역에 전해지면서 사기가 올라간 그리스 연합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해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1597년)이 대표적이다. 13척으로 적선 200척을 상대해 격퇴한 승리는 지형을 활용해 병력을 배치하고, 숫자를 믿고 덤비는 적들의 선봉을 공격해 기선을 제압하여 대열을 무너뜨리고, 승기를 잡았을 때 끝까지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다. 만약 넓은 바다에서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조선 수군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반대로 병자호란(1636년) 초기 경기도 쌍령전투에서 조선군 4만 명이 불과 300명의 청나라 기병에게 참패한다. 남한산성에 포위된 인조를 구출하기 위해 경상도에서 차출된 조선군 4만 명은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청군은 선봉대로 조선군을 공격해 조총을 난사하게 해 탄약을 소진시킨 후, 기마병 특유의 기동전으로 조선군 진지를 유린했다. 대열이 무너지고 혼란에 빠지면서 조선군은 서로 도망가려다 절반이 서로에게 밟혀 죽었다.

불과 40년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임진왜란의 대승과 병자호란의 대패를 생각하면, 승리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알 수 있다. 크다고 강한 것이 아니고, 많다고 강한 것이 아니다.

1363호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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