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 (35)] 최적화? 만족화가 현실적인 최선 

 

조원경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적 합리성... 학습 통한 경험 증대와 창의력 향상 필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시작된 제3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로봇·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이 중심이 된 제4차 산업혁명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아시아 노동자의 임금보다 독일의 로봇이 더 싸지자 생산기지를 독일로 옮겼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에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테슬라 공장에서는 로봇이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제3차 산업혁명은 선진국의 일자리를 줄이고 중국과 인도의 일자리를 늘렸지만, 제4차 산업혁명은 중국과 인도의 일자리마저 없앨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적 노동도 대체할 가능성마저 커지고 있다. 그럼 인간은 기계의 지배를 받는 도구가 될 것인가? 로봇과 경쟁하는 인간의 생존 문제가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의 영역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에 패배할까.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을 가능성도 있으나 인간이 제대로 체계적인 학습을 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넘치는 정보 탓에 주의력 떨어져

“우리는 도구를 만든다. 그 다음 그 도구들은 우리를 길들인다. 도구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 도구의 주인이 돼야 하는 것이다. 도구의 주인이 되려면 오직 ‘학습’으로만 가능하다. 학습을 위해서는 정보 장악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얄팍한 잔재주를 버리고 더 넓고 깊게 공부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게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 길이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의 상황을 가위에 비유해 보자. 가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잘 드는 가위도 그렇지 않은 가위도 있다. 가위가 모든 것을 자를 수 있나? 그렇지 않다. 가위에는 두 날이 있다. 두 날 모두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한쪽 날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다른 날은 환경적 제약을 의미한다고 할 때 가위를 아무리 갈고 닦아도 자르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의사결정을 할 때 한정된 지식·시간·자원 속에서, 제한된 합리성 아래에서 행하는 게 보통이다.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의 지식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고. 과연 그럴까? 이제는 첨단 IT기기가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정보를 제대로 ‘선택’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가진 노벨경제학자를 초대해 보자. 행동주의 경제학파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우리 시대 최후의 르네상스맨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흔히 부딪히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 능력의 한계다.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시대에도 인간의 의사결정 능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정보는 디지털로 접근 가능하지만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에 의해 ‘학습’된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우리는 왜 종이책으로 독서를 하나? 정보처리 능력은 분별이며 판단이며 선택이다. 그런 판단은 학습된 내용과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열을 알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백을 알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후자가 적중률이 높다는 건 불문가지다.”

그렇다. IT기기가 첨단화할수록 인간의 ‘정보처리능력’도 정비례로 높아져야 스마트 시대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여기서 학습은 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읽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가능하다. 단순 정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정보가 아이디어가 되고 새로운 사업이 되는 것은 여전히 학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이디어의 생산성을 높이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

‘두 사람이 사과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가 서로 교환했다면 여전히 사과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두 사람이 아이디어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가 서로 교환하면 이미 두 개의 아이디어를 갖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벤처기업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이런 이유도 있다. 누군가는 아이디어의 빈곤을 정보 탓으로 돌리는데, 이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허버트 사이몬이다. 그는 정보의 풍요로움은 오히려 주의력의 빈곤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전통 경제학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강조하고 정보가 돈이라고 한 반면 그는 왜 이에 상반되는 이론을 제기했을까? 물론 그가 정보를 중시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그의 생각을 찬찬히 살펴보자.

경제학에서의 의사결정은 언제나 최적화를 지향한다. 최적화란 주어진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목적하는 바를 극대화 또는 극소화시키는 의사결정 구조를 다루는 방식이다. 최적화는 인간을 합리적인 경제인으로 전제하고 그가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는 전지전능한 상황을 가정한다. 그런 전제에서 특정 문제에 대한 모든 해결책과 대안을 탐색하고 평가해 최선을 선택하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결국 전통 경제학은 완전한 정보 속에서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수리적으로 분석하면 목적 함수와 목적함수에 포함된 결정변수의 값을 제약하는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목적함수의 값을 극대화 또는 극소화시키는 해법을 구하는 것이다. 최적화가 문제에 대한 모든 해결 대안을 열거하고 각 대안에 대한 예상결과를 평가한 후 최선의 것을 규범으로 선택하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의사결정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최적화는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상황 인식과 문제 해결 대안과 각 대안의 예상결과에 대해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는 경우에만 실행 가능한 방식이다.

읽고 생각하는 힘 키워야

과연 이게 현실적인가? 이런 배경에서 사이먼은 최적화(最適化)와 다른 각도에서 만족화(滿足化)를 주창했다. 사이먼은 1950년대에 의사결정 구조를 연구하면서 합리적 경제인과 완전한 합리성을 전제로 최적화를 추구하는 경우와 달리, 통상의 사회인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전제로 만족화라는 의사결정 과정의 새로운 영역을 확립했다. 만족화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할 때 모든 대안을 탐색하는 대신에 가능한 대안만을 탐색하고 이들을 개별 인간의 욕망 수준에 기초해 평가하다가 욕망 수준을 충족시키는 첫째 대안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즉, 만족화에서는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끼는 욕망 수준을 설정하고 대안을 탐색하고 평가해 나가다가 욕망 수준을 능가하는 대안이 발견되면 그것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만족화에서는 제한된 합리성만 추구할 뿐이다. 그에게서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생활인의 향기가 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만족화의 철학은 실제 세계에서 최적의 해(解)를 얻기에는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과 상충요인이 혼재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 정도면 족(足)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욕망 수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주관적인 것이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해결 대안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때 그 채택 대안은 최적의 답안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만족의 답안일 수 있다. 만족화는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방법이라는 면에서는 최적화보다 현실적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의사결정 과정에서 욕망 수준이라는 주관적·심리적 요소가 있어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다. 아무튼 사이먼은 오랫동안 경제학 영역의 최적화 방식을 원용해오던 세계에서 독자적인 의사결정방식으로 만족화 모델을 제시하고 행동과학이라는 학문세계를 열어온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만능 지식인이다. 다방면에서 뛰어났다. 우리는 각기 다른 분야를 칸을 나눠 공부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런 분야를 관통하는 주제나 인물을 만나고는 지식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아둔 구슬들을 꿰어서 예상하지 못한 목걸이를 만들 때 받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전체적인 그림을 조망하는 눈을 갖게 되기도 한다. 허버트 사이먼은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기존의 지식을 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정치학을 배워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후에 경영학, 조직학, 컴퓨터 과학, 인공지능, 인지과학, 경제학 등을 연구해 인류에 막대한 영향을 줬다. 누군가는 그를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는 인공지능 경제에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그의 논거가 무척 재미있다. “소득의 90%는 다른 사람의 지식을 활용한 것이다. 따라서 90%의 소득세율이 적절하다. 그러나 기업가에게 약간의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70%의 세율로 일률적으로 과세하고, 그걸 기본소득으로 나누어 갖는 것이 좋겠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허버트 사이먼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BM의 딥 블루는 사람들이 만든 위키피디아를 통째로 소화해 제퍼디 퀴즈에서 인간을 이겼다. 구글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과정을 기록해서 가장 똑똑한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구글의 자동 번역은 수많은 사람이 번역한 문서를 축적해 가능해졌다. 과거에 바둑을 둔 수많은 사람, 과거에 책을 쓰고 번역한 수많은 사람, 현재 인터넷을 검색하는 수많은 사람이 모두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과실에 대한 1/n의 권리가 있다. 그래서 허버트 사이먼은 제4차 산업혁명에서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고, 사람들의 생존과 안정을 보장해 사회 붕괴를 막는 수단이고, 경제 성장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제도로 본다.

이런 르네상스인은 삶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삶은 여러 사람의 경험을 차용해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면에서 삶은 뭔가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모두 디자인을 하고 있다.”

삶은 새로운 뭔가를 디자인하는 과정

아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는 디자인에 대한 원론적이고 총체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 세계는 아이디어를 디자인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살아남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아이디어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매사를 주의력 있게 관찰하는 것이 기본이다. 다음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다름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치 있는 쓰임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상을 관찰할 때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보이되 더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의 고민 해결사가 되고자 한다면 공감능력을 키워야 많은 문제가 보인다.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어떻게 그걸 해결하는 일이 필요할까 하는 아이디어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게 바로 허버트 사이먼의 디자인적 사고다. 그는 노력과 경험을 강조한다. 어떤 주제를 완전히 습득하기까지 약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두뇌에는 5만개가 넘는 지식덩어리들이 모여 잘 분류돼 있게 된다. 그 정도의 수준이 돼야 인지적 무의식이 각각의 지식을 필요로 할 때마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직관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련한 전문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답에 도달할 수 있다. 그들의 직관은 그래서 더 이상 신비의 영역이 아니다. 사이먼은 인간을 확률이나 통계에 능수능란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확률·통계에 약하다고 최적의 해를 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진보 노력을 폄하하지 않는다. 사이먼은 인간은 감정이나 편향된 인지 방식 때문에 덜 합리적으로 행동할 뿐더러 확률·통계에 어둡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실성 있는 이론 절실

A고등학교와 B고등학교의 2학년 학생 수는 각각 200명이다. 두 학교의 2학년 학생 400명에게 같은 모의고사를 치르게 했다. 2학년 남학생끼리 비교했더니 A고등학교의 평균 점수가 B고등학교의 평균 점수보다 5점 높았다. 2학년 여학생끼리 비교해도 A고등학교의 평균 점수가 B고등학교의 평균 점수보다 5점 높았다. 그렇다면 A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전체의 평균 점수는 B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전체의 평균 점수보다 높을까? 이 문제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고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소수에 그친다. 정답은 ‘A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전체의 평균 점수가 B고등학교 2학년 학생 전체의 평균 점수보다 높겠지만 낮을 수도 있다’이다. 두 고등학교 모두 여학생의 평균 점수가 남학생의 평균 점수보다 높고 A고등학교의 여학생 수보다 B고등학교의 여학생 수가 훨씬 많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 투자의 대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행운에 속지 마라]는 책에서 “과거의 뛰어난 실적을 당사자의 능력으로 돌리는 분석은 그가 앞으로도 잘하리라는 예상으로 연결된다”며 “이 예상은 약하디 약해 쓸모가 없을 정도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확률·통계에 약할 뿐더러 현실은 확률·통계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더 많다는 것을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현실의 제약을 전제로 확률·통계적인 분석을 통해 가능성을 계산해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만족해에 머물지 않고 최적해를 이뤄나가는 것은 인간의 진보의 모습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각박한 현실에서 허버트 사이먼에게서 배울 것은 많다. 그중 하나가 이타성에 대한 고찰이다. 유감스럽게도 사이먼의 주장은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수학적 이론을 선호하는 경제학자에게 ‘정리(Theorem) 없는 이론’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사이먼이 주장한 이론의 정당성과 중요성은 인식됐지만 비합리성이나 이타심에 대해 다룬 적합한 이론이나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로서는 그의 이론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의 마음을 수학적으로만 재단할 수 있나? 사이먼은 2001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연구 성과는 행동경제학 이론 안에 폭넓게 이어지고 있다. 그의 의미심장한 말을 되새기며 경제학이 따뜻한 사회를 일구어 나가도록 노력해 보자. 그의 메시지는 이런 게 아닐까?

“마음의 성격을 이해하는 일은 사회제도와 사회행동, 경제학이나 정치학에서 원활한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 ‘선험적인’ 가정의 기초 아래 2세기 동안이나 이 문제를 얼버무려왔다. 이런 가정은 이제는 알맹이가 없다. 이성에 대한 선험적인 가정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실성이 있는 이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내 마음의 만족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때로는 나의 이익의 극대화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은 적응한다. 다 길들이기 나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공감과 배려의 정신이 솟구친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 1916년 6월~2001년 2월) - 독일계 미국인으로 행동과학적 조직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저서 [경영행동]에서 불완전 정보와 다원적 선택이라는 조건 하에서의 인간의 행동방식으로 ‘만족화(滿足化) 행동원리’를 주장했다. 조직론의 체계적 이론화와 의사결정자 모델이론 확립으로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의 연구는 20세기 후반의 정치학·경영학·심리학·경제학을 비롯해 사회과학 전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료 제임스 마치(James March)와 함께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발굴하고, 신고전파 경제학의 온전한 합리성과 의사결정 행위자의 효용 극대화라는 전제에 이의를 제기했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 있다.

1364호 (2016.12.1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