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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의 이 한 문장] 빨리 뛰려 말고 천천히 서둘러라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장
빠른 게 능사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속도가 중요하다. 많은 유파가 발을 빠르게 움직이라고 가르치지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싸움을 할 때에는 평소에 길을 걷듯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군사를 움직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적군의 허점이 보이면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신속하게 움직이되 대열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또한 상대방이 빠르게 공격해올 때에는 오히려 느긋하게 대응해 상대방에게 끌려다니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 바람의 장

칼싸움은 속도다. 적을 먼저 칼로 베면 이긴다. 속도를 높이는 것은 승리의 핵심이지만 눈에 보이는 속도에만 치중하는 것은 잘못이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속도로 움직여 전력을 극대화해 승리를 얻는 것이 요체다. 무사시의 말대로 익숙한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해 보이지만 일은 신속하다. 불필요한 동작이 없고 정확한 순서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요란하고 번잡스럽다는 자체가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속도가 아니라 정제된 호흡이 중요하다. 21세기 급변하는 시대에 기업 경쟁력의 핵심도 산업변화와 사업역량에 부합하는 적절한 변화의 스피드를 유지함에 있다.

조그만 촌락에서 출발해 600년간의 축적과정을 거쳐 글로벌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에 합당한 정치 체제를 구축하려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BC 44년 3월 15일 56세에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카이사르와는 상반되는 성향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는 10대 후반부터 77세에 사망하기까지 카이사르의 구상을 착실히 추진해 로마 역사상 최고 번영기인 200여 년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를 열었다. ‘천천히 서두른다(Festina Lente)’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에서 심모원려의 치밀한 체제 건축가로서 가졌던 특유의 속도감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기업 경쟁력의 핵심도 스피드다. 남보다 앞서나가야 생존할 수 있고, 앞서기 위해서는 빨라야 한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이야기처럼,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남보다 빨리 뛰지 못하면 제자리에 있게 된다. 달리는 앨리스처럼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에도 절대속도보다 상대속도가 관건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지식·시간·공간을 부의 미래를 결정짓는 3가지 심층기반으로 보고, 시대 변화에 따라 생겨나는 충돌의 극복을 변환기의 조직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분기점으로 평가했다. 지식의 충돌은 과거의 진부한 지식(obsoledge)에 매몰돼 미래변화를 위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는 현상이고, 시간의 충돌(clash of speeds)은 경쟁자보다 변화에 대한 느린 반응 속도를 의미한다. 공간의 충돌은 과거의 시장·고객·기술의 연속성이라는 좁은 공간(stretching space)에서 갇혀 미래를 좁게 바라보는 함정이다. 변환기의 기업은 미래를 위한 지식이 있어야 시장과 고객을 미래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고 변화의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다.

요체는 속도와 타이밍이다. 시대 변화에 뒤처지면 실패하지만 너무 앞서 나가도 실패하게 된다. 무지한 초보 뱃사공은 무작정 열심히 노를 젓는 반면 지혜롭고 경험이 풍부한 뱃사공은 밀물과 썰물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물이 들어온 타이밍에 노를 저어 적은 힘으로도 배가 적절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즉 멀리 내다보고 변화를 읽어내면서 상황과 여건에 맞는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성공의 요체다.

1373호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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