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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7) 노후자금 인출작전] 노후 자금 세 바구니에 담아라 

 

서명수 경제 칼럼니스트 seo.myongsoo@joongang.co.kr
노후 기간을 단기·중기·후기로 나눠 자산 배분... 후기로 갈수록 고위험 자산 비중 커져

개인이 가계 자산을 운용할 때는 사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는 요인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테면 지출 내역에서 돈이 새는 구멍을 찾아내 절약하고, 이 돈을 저축하는 식이다. 시장의 등락이나 금리 등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걱정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물론 이는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아 놓은 자금을 쓰는 노후생활 기간엔 적절한 운용방법이 아니다. 시장 움직임이 노후 자산을 들었다 놓았다 하기 때문이다.

노후 자산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장이다. 시장 하락이 퇴직 시기와 맞물리면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이 따른다. 원금에 손실이 생겨 노후 생활비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현역 시절엔 원금이 깨져도 회복할 여유가 충분히 주어진다. 하지만 소득 흐름이 확 줄어드는 노후엔 그럴 여유가 사라진다. 50% 손실 난 원금을 회복하려면 수익률이 50%가 아닌 100%여야만 가능하다. 그만큼 한번 깨진 원금을 되찾는 데엔 시간적·경제적 노력이 많이 든다는 의미다. 생활비도 겨우 마련하는 상황에서 투자 손실을 만회하고 수익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노후 생활 초기의 자산 상태가 죽을 때까지 삶의 질을 좌우한다. 그 시기에 인출이 많고 자산 수익률이 저조하면 자산의 고갈시점이 앞당겨진다는 연구 조사도 있다. 노후 자산의 운용은 현역 때의 자산 축적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노후 초기엔 안정성 위주로 바구니 꾸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장의 변동성을 감안한 노후 자산운용 전략 중 하나가 노후 기간별 자산 배분이다. 노후 기간을 3등분 해 기간별로 투입 자산의 성격이 다른 바구니를 만드는 방식이다. 인출 초기엔 바구니에 안정성이 높은 자산을 담고, 시간이 갈수록 위험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노후 기간별 자산 배분의 요체다. 투자 기간이 길어지면, 이에 비례해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커지기 때문에 위험 자산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은퇴 후 1년부터 5년까지는 자금의 안정성과 유동성이 중요하므로 양도성예금증서(CD)라든가 국채 같은 현금성 자산으로 채운 바구니를 이용한다. 이 첫째 바구니는 원금보장을 지키면서 나머지 다른 바구니 속의 자산이 불어나는 시간을 벌게 해주는 게 임무다. 다음은 은퇴 후 6년부터 15년까지 10년 동안 쓸 둘째 바구니다. 은퇴 후 최소 몇 년간은 이 바구니를 쓸 일이 없으므로 좀 더 공격적인 자산운용이 가능하다. 둘째 바구니엔 채권 비중을 크게 해 주식과 섞어 담는다. 시장의 변동성을 누그러뜨리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 원금을 키우는 효과가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은퇴 16년 이후를 위한 바구니다. 은퇴 후 15년까지는 이 바구니를 건드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우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다.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 위주의 포트폴리오로 바구니를 꾸린다. 15년이란 세월은 시장 변동의 위험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만약 첫째 바구니의 자산을 5년 안에 써버렸을 경우 둘째 바구니에서 자산의 일부를 옮겨 충당하고, 둘째 바구니의 구멍은 셋째 바구니의 자산을 이전시켜 메울 수 있다. 다행히 시장이 좋아 각 바구니의 자산 크기가 커진다면 이런 재분배는 불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지난 이코노미스트 1379호에 소개된 A씨의 사례로 노후 기간별 자산 배분에 대해 설명해 보자. A씨는 퇴직 때까지 매월 지출에서 절약한 돈 149만원을 적립해 5년 후 9000여 만원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연금만으론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할 노후 자금인데, 30년 동안 소진시키지 않고 써야 한다. 1년에 300만원 씩 5년 동안의 초기 노후 자금 1500만원은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 형태로 첫째 바구니에 넣는다. 또 이후 10년 동안 쓸 중기 노후자금은 채권과 주식을 사 둘째 바구니에 배정한다. 나머지 후기 노후 자금 4500만원은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를 구매해 셋째 바구니에 담는다. 퇴직금과 개인 연금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 자금은 시간을 두고 여유있게 운용해도 되므로 둘째 바구니에 넣고 관리하면 된다.

둘째 바구니는 여유있는 생활 용도

자산 바구니를 이용한 노후 자금 운용은 돈이 많은 자산가에게도 통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기간이 아닌 자금용도별로 3개 바구니를 만들어 인출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첫째 바구니는 기본적인 생활자금용, 둘째 바구니는 해외여행 등 여유 있는 생활자금용, 셋째 바구니는 상속재원 마련용, 이런 식이다. 운용 대상 자산은 노후 기간별 자산 배분의 경우처럼 셋째 바구니로 갈수록 주식 같은 고위험 자산의 비중을 늘려가면 된다.

과거 은퇴 후 짧은 여생을 보낼 때는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했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은퇴하고도 30~40년을 살아야 한다. 은퇴 후에도 투자의 세계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돈의 가치 보전을 담보할 수 없다. 어쩌면 고령화·저금리 시대엔 적립보단 인출이 더 시급한 문제일 수 있다. 안정성만 고집했다간 노후자금이 일찍 바닥을 드러내 국민연금만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박스기사] 노후자금의 최대 복병 '물가' | 투자수익률이 최소 물가상승률보다 높아야

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 또는 구매력이 떨어지는 속성이 있다. 돈은 위대하지만 시간 앞에선 맥을 못 춘다. 경제성장에 따라 물가가 오르고 시중에 돌아다니는 통화량이 늘어나게 돼 돈 가치의 하락을 부른다. 돈 가치는 시간이 길수록, 물가상승이 심할수록 하락세에 가속이 붙는다. 주어진 물가상승 아래 현재 돈의 가치가 절반이 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72 법칙이다. 72란 숫자를 물가상승률로 나누면 원금의 가치가 반 토막이 될 때까지 걸리는 햇수를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률이 3%라면 24년 뒤 화폐가치가 절반이 돼 그 시점의 1000원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현재의 500원에 해당한다. 30대 중반의 월급쟁이가 24년 뒤의 노후자금을 5억원으로 계산했다면 목표는 10억원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돈의 속성을 감안하면 노후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분명해진다. 투자수익률이 최소 물가상승률보다 높아야만 목표 자금이 부족하지 않게 된다.

노후 준비 같은 장기 재무목표는 물가라는 변수를 꼭 챙겨야 나중에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만약 노후생활에 들어가는 시점에 자산 규모를 정해놓고 생활비를 계산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노후설계는 죽는 날까지 어떻게 하면 물가라는 훼방꾼을 철저하게 막아내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노후 자금은 기간별로 나눠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시간과 물가를 이겨낼 수 있는 주식과 채권 비중을 높여 가는 것이다. 노후설계는 인플레이션과의 장기전이다. 노후 자금의 일정 부분을 마지막까지 투자자산으로 보유해야 하는 이유다.

1381호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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