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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 (44)] 황혼 육아, 배워야 갈등 줄일 수 있어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dongho@joongang.co.kr
지자체 조부모 육아교실, 올바른 육아방식 알려줘 … 자녀도 부모의 육아 고충 이해해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실제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뉘 집 아이인지, 동네 사람이 다 알았고 부모가 집을 비우면 이웃집에서 돌봐주기도 했다. 숟가락 한 개 더 얹어 밥 먹이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을이 오간 데 없어지면서 조부모가 그 역할을 온전히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모(67)씨 부부는 ‘황혼 육아’에 여념이 없다. 직장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딸 부부가 수시로 세 살배기 아이를 맡겨두면서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딸 부부를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이를 돌봐달라면서 딸 부부가 아예 박씨네 집 근처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이같이 맞벌이 가구 상당수는 조부모에게 육아를 의존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중 절반이 일정 기간 또는 수시로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 조부모는 장점이 많다. 우선 꼬리를 물고 있는 육아시설의 아동 학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면 아이의 신체, 언어, 인지,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트레스 많은 ‘황혼육아’

문제는 손자를 보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요즘 조부모는 활력이 넘친다. 은퇴한 뒤에도 여가를 즐기며 호젓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더구나 친구들이 수시로 불러내는데도 손자녀를 돌보게 되면 자신의 노후를 희생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육아 방식이나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다. 너무 오래된 일이고 시대가 바뀌면서 육아 방법도 달라졌다. 특히 가부장적 문화에 익숙한 과거 세대는 자기 자식과도 정겹게 놀아준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러니 손자녀와 놀아 주고 싶어도 방법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방법이 다른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황혼육아에 따른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일부 조부모는 ‘이 나이에 놀지도 못하고 다시 아이를 봐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육아 방식을 둘러싸고, 아이를 맡긴 자녀와의 갈등도 빚어진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손자녀를 더 잘 돌봐주려면 시·군·구청에서 실시하는 조부모 육아교실에 참석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황혼육아가 늘어나면서 조부모 육아교실이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 차원에서 실시하므로 비용은 기본적으로 무료다. 어린 손자녀와 놀아주기는 물론이고 신생아 돌봐주기도 교육 대상이다. 손자녀 출산을 앞둔 조부모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은 서너 차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성장 마사지, 안전하게 돌보기, 대화법과 동화 들려주기, 목욕과 재우기 같은 신생아 육아 기술도 가르친다. 올바른 육아 방법 교육으로 양육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고 육아로 인한 세대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다. 가천대의 세살마을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조부모 교육도 이용할만하다.

조부모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잘 보살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대가 바뀌면서 양육 방식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컸고, 울거나 보채면 먹을 것을 주면 됐지만 공동주택 살이를 하는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응급처치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야할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재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손자녀가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조부모의 역할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출근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자녀를 유치원에 보내주고 데려오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방과 후 귀가했을 때 함께 놀아줄 수도 있다. 유치원에서는 요즘 조부모는 너무 젊어 할머니가 엄마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녀와 멀리 떨어져 살아도 조부모의 손자녀 돌봐주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자녀가 직장을 위해 손자녀를 일시적으로 맡겨두거나 주말에 놀러오는 경우다. 요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려면 아이들 수준에 맞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도 있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장수시대가 되면서 손자녀가 대학생이 되는 것은 물론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까지 보게 된다. 아이를 잘 돌봐주면 노후에 손자녀와의 관계도 좋아지게 된다.

자녀도 부모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만큼 예를 갖춰 부탁해야 한다. 부모님이 경제적 자립 정도가 취약하다면 적정한 수준의 용돈을 드리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육아 방식에 대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 이해해야 한다. 조부모는 “내가 너 키울 때는 이렇게 안했다”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무조건 반박만 해선 안 된다. 자녀도 부모에게 조리 있게 세태 변화를 설명하면서 남을 대하듯 부탁을 해야 할 것이지, 무조건 요즘 방식을 따르라고 할 일이 아니다. 결국 아이를 맡기는 젊은 부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은퇴해 여가를 즐겨야 할 부모의 황혼 육아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부모에게 불편한 점이 없도록 해야 한다. 조부모 역시 자녀를 위해 손자녀 육아를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좋다.

시어머니보다 친정어머니가 역할 커

특히 딸 입장에서는 마음 편한 친정어머니의 역할이 크다. 경력 단절 여성이 200만 명이 넘는 것은 사실 아이를 낳은 뒤 키울 방법이 마땅하지 않은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전통 사회에서는 조부모가 아이 양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결혼한 여성과 친정어머니의 관계가 밀접하다. 보건사회 연구원 김현식ㆍ김지연(2012)의 ‘부모동거가 첫째 자녀 출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친정어머니와 동거한 여성이 동거하지 않은 여성보다 첫 아이 출산이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친정어머니는 아이를 돌보는 조력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커 여성의 육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시어머니는 양육의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시어머니도 딸 입장에서는 친정어머니라는 점에서 양육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같은 연구결과가 얼마나 일반화될 수 있을지는 좀더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과 시어머니와의 차이는 여성에게 친숙하고 이용하기 편리한 돌봄 서비스가 출산에 매우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결국 산모가 마음 편하게 출산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정책적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부모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고 젊은 세대와 조부모 세대가 스스럼없이 아이 양육에 관해 서로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1381호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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