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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보스와 참모의 관계학(18) | 태종 이방원과 하륜] 참모의 제1 조건, 보스의 성향 꿰뚫어야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하륜, 태종의 총애 속에 탄탄한 성공의 길 걸어 … 보스와 참모 궁합 잘맞아야 뜻 이뤄

촉한의 황제 유비는 자신의 수석참모인 제갈량을 두고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한 이 말은 보스와 참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물은 물고기 없이는 의미를 실현할 수 없듯이, 보스와 참모는 진정한 한 팀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 연재에선 한 팀을 이루는 바로 그 과정에 주목한다. 어떻게 보스를 선택하고 참모를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역사 속의 사례로 살펴본다.


▎하륜의 출생지(진주성 영남포정사 옆).
1398년(태조 7년) 8월 26일.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李芳遠, 1367~1422년)은 정변을 지휘하기 위해 경복궁 남문 앞에 군막을 치면서 바로 옆에 장막을 하나 더 설치하라고 지시한다. 누구를 위한 군막인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들어와 당연하다는 듯 그 가운데 앉았다. 이방원의 핵심참모로서 충청도 관찰사로 내려가 있던 하륜(河崙, 1347~1416년)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에게 이방원의 책사, 모사꾼 이미지로 익숙하지만 하륜은 사실 그렇게 음지의 인물은 아니다. 이기론과 심성론 등 성리학의 주요 이론들을 세밀하게 정리한 논설을 남겼을 정도로 학문이 깊었고, 경력이나 능력 면에서도 정도전에 뒤지지 않았다. 다만 스승인 목은 이색을 따라 조선 건국을 반대하는 진영에 속하게 되면서 조선 초기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1393년(태조 2년) 고려의 신하들을 포용하려는 태조에 의해 경기좌도 관찰출척사에 임명되면서 비로소 조정에 출사했다. 그는 무악 천도론을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해박한 풍수이론을 바탕으로 계룡산 천도작업을 중단시켰고(태조 2년, 12월 11일), 명나라와의 외교적 난제를 해결하는 등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정도전에게 눌려 별다른 입지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언제부터 이방원의 참모가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왕위에 욕심을 갖고 있던 이방원은 자신을 도와줄 능력 있는 참모가 필요했고, 하륜 또한 자신의 경륜을 펼칠 수 있는 정치적인 힘을 바라면서 손을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륜은 태종 이방원의 즉위와 함께 좌정승, 영의정부사를 역임하는 등 1416년(태종 16년) 70세의 나이로 치사할 때까지 임금을 보좌해 국정을 이끌었고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의 기틀을 다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도전의 비전과 설계를 협소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이후 조선왕조의 근간을 이룬 통치체제, 인사제도, 신분제도, 경제사회 제도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치게 되면서 정도전의 빈자리를 나름대로 메우는데 성공한다.

피의 숙청서 살아남은 하륜의 처세술

그런데 하륜에게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업적 외에도 탁월한 처세술에 있다. 보통 보스의 비밀을 많이 알고 정권 출범에 지분이 많으며, 뛰어난 지략이 있어서 정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참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의 손에 제거되곤 한다. 보스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륜이 모셨던 보스인 태종 이방원은 의심이 많은데다 왕권을 위해서는 누구든 가차 없이 처단하기로 유명한 임금이다. 그는 처남 4형제와 사돈(세종의 장인)을 죽였으며 자신을 옹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숙번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었다. 이거이 부자 등 태종의 손에 숙청된 공신의 숫자는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상황이 이와 같은데도 유독 하륜만은 부침 없이 관직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심지어 태조 이성계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는 탄핵에서조차 살아남았다. 이방원이 변함없이 하륜을 신뢰하고 비호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하륜이 태종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실현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조선을 건국하며 재상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했던 정도전의 구상과는 달리 태종은 군주가 중심이 되는 통치체제를 추구했다. 하륜은 이러한 태종의 뜻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육조직계제(임금이 의정부의 재상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육조를 관할하는 것) 도입 등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태종이 원하던 일을 대신 나서서 주도해주었을 뿐 아니라 견고하고 세밀한 시스템까지 구축해준 것이다.

다음으로 하륜은 태종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행동했다. 드러내놓고 부(富)를 탐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대표적인데, 그는 국유지를 마음대로 차지했고 뇌물을 받는 일도 잦았다.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었지만 자신은 재물 외에 다른 것에는 욕심이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백성들의 지지 또한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명재상 소하(蕭何)가 백성들의 높은 칭송을 발판으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의심을 사자 백성의 땅을 강제로 빼앗는 등 스스로 명성을 더럽힘으로써 한 고조 유방을 안심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를 탐하고 탐욕으로 백성의 비난을 받는 재상이 왕권을 위협할 일 같은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륜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욕심이 많고 재물을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효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

왕에 대한 진언은 개인적 통로 이용

임금에게 진언할 때는 단독으로 은밀하게 한 점도 중요하다. 이것은 공식적인 회의 보다는 개인적인 통로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는 것을 선호한 태종의 스타일에 맞춘 것이다. 하륜은 태종의 뜻에 반대하거나 설득해야 할 때, 태종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해야 할 때 공개적인 자리를 택하지 않았다. 신하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지 않았지만 동시에 임금으로서의 권위를 매우 중시했던 태종의 성향을 볼 때,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의견을 제시해 입장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륜이 무사할 수 있었던 요인은 태종의 사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신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탁월한 참모라 할지라도 보스가 죽고 나서 그의 후계자에게까지 변함없는 헌신을 바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경험이 부족한 후계자가 곧바로 노회한 신하들을 감당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태종이 처남들을 죽이고 핵심측근을 귀양보내며 사돈에게 사약을 내린 것도 모두 후계자가 이들에게 휘둘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후계자에게 부담을 주지 못하도록 아예 숙청시켜버린 것이다. 하륜의 경우는 태종보다 스무 살이나 위로 이를 염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하륜은 보스인 태종과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자신의 생존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새 왕조가 안착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물론 하륜에 대해서는 태종의 총애를 믿고 부정부패를 자행했으며, 임금의 눈치나 보며 아첨한 신하라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태종과 하륜 두 사람 모두 상대를 통해 원하던 바를 이뤘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더군다나 하륜은 결단을 내리고 계책을 세움에 있어 다른 사람들이 헐뜯거나 칭송한다 해도 조금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비난 앞에서도 후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것이라며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길에 대한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무릇 참모가 자신의 능력을 남김없이 쏟아내고,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보스와 궁합이 잘 맞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보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보스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보와 자원, 권위와 힘을 적절히 활용해야 보다 나은 성과를 이뤄낼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스가 지향하는 바와 특성· 욕구·업무스타일·성격 등을 잘 파악해야 하는데, 바로 이 부분에 하륜의 사례가 주는 교훈이 있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85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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