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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2+2=5’라고 쓰는 세상이 온다면…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984]로 본 빅브라더의 실체 … 프라이버시를 잃으면 자유 자체를 잃는 것

엘리베이터 맞은 편 벽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고 있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그 얼굴 아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그린 1984년 4월의 풍경은 이렇게 음산하다. 텔레스크린으로 집안과 건물 안을 감시하고, 텔레스크린이 없다면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음성을 녹음한다. 사상 경찰은 곳곳에 깔려있다. 멀리서 헬리콥터는 지붕 사이를 쉬파리마냥 날아다니다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엿본다. 24시간 감시당하는 생활. 사생활이란 없다.

1949년 소설 [1984]이 출간될 때, 오웰이 그린 35년 뒤의 세상은 ‘디스토피아’였다. 1984년 세계는 3개 전체주의 국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다. 3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이를 빌미로 독재로 국민을 통치한다.

프라이버시가 없는 세상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1989년 구 소련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는 사실상 무너졌다. 소설의 암울한 예언은 빗나간 것일까. 아니다. 빅브라더는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촘촘히 설치된 폐쇄회로 TV(CC-TV)를 정부가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은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구글에 알린다. 내가 쓴 카드 내역은 카드사에 통보된다. 교통카드는 나의 이동 정보를 교통당국에 전달한다. 도감청은 일도 아니다. 내가 한 대화를 카카오톡이 알고 있고, 나의 관심사는 네이버에 저장돼 있다. 빅브라더는 정부가 될 수도, 기업이 될 수도 있다.

[1984]의 무대는 오세아니아 ‘에어스트립원’의 중심도시 런던이다. 윈스터 스미스는 기록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그는 당의 명령을 받아 신문인 [타임스]에 실린 과거 기사를 수정한다. 아니 변조한다. 당이 원한다면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고쳐써진다. 당원들은 자기 생각을 할 수도,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도 없다. 1984년 4월 4일. 스미스는 엄청난 일탈을 시도한다. 일기를 쓰기로 한 것이다. 발각되면 사형, 적어도 강제노동 25년형을 받는 사상죄다. 스미스는 숨막히는 사회를 더는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일기장에 남긴다. ‘빅브라더를 타도하자’

오세아니아의 적은 ‘골드스타인’이라는 반역자다. ‘형제단’이라 불리는 국가전복세력의 수괴다. 당은 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 국민의 충성심을 극대화한다. 개인의 성욕도 통제된다. 아이를 낳는 일을 제외하고 섹스는 허용되지 않는다. 개인이 섹스를 통해 쾌락을 느끼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럼에도 스미스는 줄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스미스는 내부 당원인 오브라이언을 만나고, 그를 통해 지하단체인 형제단에 가입한다. 스미스는 이제 저항을 행동으로 옮긴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생활, 즉 프라이버시는 없다. 아니 프라이버시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기 때문이다. 비단 조지오웰의 상상의 세계에서만 그럴까. 사람들은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귀찮다는, 별문제가 있겠느냐는 변명이 뒤따른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생각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을 ‘프라이버시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는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투자에 인색하고, 심지어 매우 작은 눈앞의 이득을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쉽게 팔아버리기도 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손상영 연구위원이 작성한 ‘온라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철학적 배경과 산업적 접근’ 보고서를 보자. 손 위원은 163명에 대해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개인정보인 ‘체중 정보’를 판매할 때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를 평균 146만원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막상 현금을 내밀자 참가자의 70%는 단돈 100원에 정보를 판매했다. 또 실험참가자들은 ‘체중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2만4000원이라고 했다. 개인정보의 판매가격과 이를 지키기 위한 가격의 차이는 61배나 됐다.

프라이버시의 역설

해외연구는 더 많다. 젠스 그로스클래그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고 한 응답자의 63%가 암호기술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44%는 이메일 필터링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50%는 민감한 정보를 담은 서류를 파기하는 데 종이분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실험을 보자. 피츠버그의 대학생 47명을 대상으로 실험해보니 대부분의 학생은 자신의 퀴즈 성적과 체중에 대한 정보를 1달러 이하에 팔았다. 반면 이런 정보를 보호하는 데는 1달러도 안 쓰겠다고 답했다. 프라이버시의 역설은 경제학의 시각으로 볼 때 ‘시간선호’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정보강화를 위해서 당장 내 손에서 나가는 1달러는 크게 보이는 반면 개인정보유출로 훗날 내가 입게 될 피해는 작게 느껴진다.

‘프라이버시의 역설’은 개인정보가 중시되는 시대가 도래면서 잔뜩 긴장해 있던 기업들에 기회가 됐다. 개인정보 제공에 깐깐할 것 같았던 소비자들은 약간의 금전적 보상에 의외로 쉽게 빗장을 풀었다. 주요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몰의 팝업창에는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하면 소액의 상품권을 주겠다’는 내용이 많이 뜬다. 상품권은 기껏해야 1000원 내외 소액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에 클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제공된 정보는 보험, 펀드 등 금융상품이나 신상품 등 각종 마케팅에 사용된다.

프라이버시의 역설은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빌미가 된다. 시민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수집되는 것을 의외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앞에 ‘국민 보호’나 ‘공공안전’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더 쉽게 물러난다. 지난해 통과된 테러방지법의 정식 명칭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다. 테러방지법은 발의 15년 만에 통과됐다. 반면 지난해 제정 14년 만에 애국자법을 폐지했다.

개인정보 공개를 꺼리면 개인정보의 가치가 커진다. 상업적 가치가 생기면 거래가 이뤄진다. 이는 새로운 경제형태를 만드는데, ‘프라이버시 경제’라 부른다. 사용자들이 개인정보를 포털사나 통신사가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직접 관리하면서 정보공개 여부와 이에 따른 혜택에 대한 선택권을 갖는 경제를 말한다. “개인정보 사용에 동의하면 1000원 상품권”이 대표적인 프라이버시경제다.

암호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애플바움은 “예전에는 자유라고 표현했던 것을 요즘은 프라이버시라고 표현한다. 프라이버시를 잃으면 자유 그 자체를 잃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수동적 감시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있는데, 감시는 결국 통제”라고 말했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인 도청을 다룬 영화 [시티즌포]의 한 장면이다.

스미스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둘 더하기 둘을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다.’ 그냥 물러설 빅브라더가 아니다. 체포된 스미스는 모진 고문을 당한다. 고문은 인간의 속마음까지 지배한다. 스미스는 무의식 중에 ‘2+2=5’라고 쓴다. 자유를 향한 스미스의 투쟁은 여기서 끝났다.

1385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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