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대규모 투자 빌미로 정치·지정학적 야심 드러내 … 수송망·무역로(路)로서 가치에도 의문
중국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5월 14~15일)이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막을 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보호주의를 실천해온 장본인이었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 ‘반(反)보호주의’와 ’자유무역‘를 선포하며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자유무역은 원래 G7이 표방해온 무역규범이자 원칙이었지만, 트럼프의 관여로 그 원칙과 룰이 흔들리자 시진핑이 얼른 자기 것으로 가져와 일대일로, 즉 중국의 ‘철도주권(一帶)’과 ‘해양주권(一路)’의 겉 포장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일대일로 견제하는 인도

시진핑 주석은 5월 15일 포럼 폐막식에서 앞으로 일대일로 경제권의 인프라 투자를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하며, 2019년에도 일대일로 (국제협력 서미트) 포럼을 개최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일대일로란,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로 불린다. 중국 물류중심지 충칭을 거점으로 하여 신장위구르 지역과 카자흐스탄을 경유, 모스크바,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의 뒤스부르크까지를 연결하는 철도망과 중국 연안부로부터 동남아시아, 스리랑카, 아라비아 반도의 동서 연안, 아프리카 동부 연안을 잇는 시레인(sea lane : 해상교통망)의 두 개의 경제권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로서 인프라의 정비, 무역활성화, 자금의 왕래 등을 촉진하는 계획이다.

시 주석은 2013년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에프 대학에서 연설할 때 처음으로 철도망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고, 같은 해 인도네시아 의회에서 연설할 때 해상 실크로드 비전을 밝혔었다. 시 주석은 2014년 11월 중국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일대일로에 대한 구상을 제창했다. 그러나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면서 스리랑카, 미얀마, 필리핀, 몽골 등 ‘주변 저개발국’들과 서로 불신하는 가운데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 저개발 후진국 수뇌들, 즉 스리랑카의 위크레메싱게 총리,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 몽골의 에르덴바트 총리는 이번 베이징 일대일로 포럼에 참가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이 일단 자금을 뿌리며 영향력을 행사코자 하니, 그에 편승해 자국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을까 하는 기대에서 참가한 것이지, 중국을 신뢰하고 중국으로부터 진정한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참석한 것은 아닐 것이다.

스리랑카는 ‘해상 실크로드’의 요충지다. 시레인 상에서 보면 스리랑카는 페르시안 만의 호르뮤즈 해협을 빠져 나와 말라카(Malacca) 해협을 통과해 남중국해로 항햐하는 도중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는 섬이다. 중국은 스리랑카의 서남 해안도시이자 행정수도인 콜롬보에 1조6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콜롬보를 항만도시의 모델이자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콜롬보가 전략적으로 일대일로의 루트(root)가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스리랑카의 내전에도 개입, 스리랑카 정부 측에 무기를 제공하며 존재감을 높여 왔고 내전 종료 후에도 원조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제가 생겼다. 중국이 그동안 스리랑카에 대부해준 거액의 자금과 융자금을 갚으라고 재촉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리랑카가 중국에 빚지고 있는 채무는 9조원 정도다. 중국이 매몰차게 이것의 변제를 요구하고 있다. 왜일까.

중국은 채무를 경감해주는 대가로 스리랑카의 남해안에 있는 함반토타 항만에 대해 ‘99년간의 운영권’과 ‘치안경비의 권한’을 달라고 스리랑카에 요구하고 있다. 이는 항만의 치안과 경비를 ‘전면적으로’ 중국이 행하겠다는 의사표시다. 이에 대해 스리랑카 항만국장은 “이제 스리랑카는 중국의 식민지가 되어 버릴 것이다. (중국의) 어떤 배가 항구에 들어오게 될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스리랑카 지역 신문인 ‘더 선데이 타임즈’는 “중국 잠수함이 출현하는 등 중국이 항구를 군사적으로 이용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역의 한 승려는 “우리 지역은 아무 이익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중국이 스리랑카를 점유하려는 데는, 일대일로의 전략적 루트를 확보하는 일 말고도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스리랑카를 ‘쿠바화(Cuba化)’하는 중국의 국제전략이다. 즉 중국의 대(對)인도 전략으로 스리랑카를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 스리랑카는 미국으로 비유하면 쿠바와 같다. 인도는 서남아시아에서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고 따라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언제나 주도권 싸움을 벌여 왔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베이징에서 이번 일대일로 포럼에 참가하기는커녕, 5월에 두 번이나 스리랑카를 방문, 1만 동의 주택건설지원을 약속하면서 “인도-스리랑카 양국은 중요한 파트너로서 함께 경제적인 발전과 번영을 이룩해 가자”고 호소했다. 스리랑카를 놓고 인도와 중국이 쟁탈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미얀마의 마찰도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중국은 ‘진주 목걸이’ 전략과 더불어, 미얀마의 서부 항구도시 챠우퓨에서 중국대륙으로 직접 2400km의 파이프라인(가스와 원유 수송)을 뚫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미얀마는 상당한 파이프라인 사용료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멀리 돌아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더 나아가 챠우퓨를 대형 선박이 들어올 수 있는 대규모 경제특구로 개발하고, 그 파급효과가 미얀마 전체에 미치게 해 미얀마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얀마에 대한 이 약속을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경제특구 예정지는 아직 맨땅인 상태고, 파이프라인 작업에도 중국인 기술자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작업 노동자들도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 공급받고 있다. 미얀마 현지 주민들은 고용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아웅산 수치(71) 국가고문(사실상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할 수 있다. 아웅산 수치는 2016년 정권 출범 이래 이전 정권과 달리 중국에 기운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또한 저항하는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힌갸족을 진압하기 위해 중국의 무력을 빌리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선택지를 줄인 채 중국에 의존적이기만 한 미얀마를 대하는 중국 측은 별로 급할 게 없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두테르테노믹스(Duterteno mics)’를 내걸어 사회기반을 확충하고 각종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힘쓰고 있다. 두테르테는 향후 3년간 철도건설, 공항 정비, 간선도로의 확장 등에 약 80조원을 투입, 경제성장률을 7~8%로 유지하면서 인프라 정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두테르테 정권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라(Build, Build, Build)’이다.

두테르테 친 중국 행보에 비판 여론 드세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약속받는 대가로 남중국해 영토 문제를 중국에 양보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필리핀 내 비판적 여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남중국해 분쟁지 내 산호초에서 중국 소속 크레인과 선박이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는 모습.

두테르테는 2016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으로부터 인프라 정비를 중심으로 20조원이 넘는 경제지원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두테르테는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조성과 군사화를 전면 부정하는 2016년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외면’하면서 영토 문제를 중국에 양보하기로 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이 풍요롭게 잘 살게 되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장소는 중국에 팔아 버려도 좋다”고 강변하며 남중국해 주변 관련국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필리핀 영(領)이었던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도 중국에 완전히 무단점유 당했다. 그러나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필리핀이 80조원을 투자해봤자,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민간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사회기반·인프라 투자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국가의 부채만 늘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필리핀의 야당도 공세로 돌아서고 있고, 국민여론도 비판적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 일대일로 전략의 충실한 추종자인 필리핀도 내부갈등과 다툼이 불거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일대일로로 인해 몽골 국내 사정도 복잡하다. 몽골은 중국 정부가 많은 자금을 융자해 주어 숨통을 튼 나라였다. 그러나 중국은 돈을 대 준 대가로 몽골의 정치와 종교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건물 벽에는 ‘중국의 스탠더드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첨병이 되라’는 현수막을 붙이기도 했고, 달라이라마 14세가 몽골을 방문하는 일을 절대 금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달라이라마를 입국시켰다가 몽골과의 교섭을 완전 중단하겠다는 중국의 협박을 당한 몽골 정부는, 외무상이 나서 “차후 달라이라마 14세가 몽골을 방문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이 때문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불교도인 몽골에서 중국에 대한 불만과 원성은 높아만 가고 있다. 몽골 국립대학 경제학부의 하시츄룬 교수는 “경제에 있어 중국의 중요성은 높지만, 몽골에 있어 중국의 존재는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요컨대 지금은 몽골이 저개발 상태라 중국이 어느 정도 위안화를 뿌리고 투자도 해주면 몽골은 낙수효과라도 건지려고 중국 편에 서게 되지만, 중국은 원하는 것을 취하면 몽골 시장에 별 매력을 못 느껴 투자나 융자를 중단할 수 있다. 몽골 인구는 약 300만 명으로 한국의 한 개 도시 수준이고, 지하자원도 없어 실리적인 중국이 몽골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리 될 때 정치-종교적 문제로 중국과 몽골 관계는 악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