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선택에서 초능력 발휘이번 대결에서 패한 커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세계 최고수로서 한 판도 건지지 못한 데 대한 자괴의 눈물일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에 패한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알파고는 ‘수를 선택하는 기술’에서 인간이 따라가기 어려운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으로 치면 알파고는 의사결정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상식이지만, 의사결정을 하려면 대안을 탐색하고 그 대안들에 대한 수 읽기를 하고 결과를 비교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 중에서 알파고는 대안을 찾고 결과에 대한 손익을 비교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프로기사들이 둔 바둑의 방대한 빅데이터로 학습을 했음에도 알파고는 딥러닝을 통해 프로의 수법을 초월한 능력을 발휘한다.알파고의 능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안탐색에서 사람보다 더 창의적이라는 점이다. 언뜻 기계가 인간보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지난해 이세돌과의 바둑은 물론 지금까지 둔 60여 판의 바둑에서 인간은 생각지 않는 독특한 발상을 선보였다.[1도] 이번에 세계챔프 5인과 대결한 바둑이다. 이 장면에서 알파고는 백1에 두었다. 이것은 ‘3-3침입’이라고 불리는 수다. 책에 있는 수지만 이처럼 주변에 돌이 없는 상태에서는 두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그런 상식을 깨고 때 이르게 ‘3-3’에 두었다.알파고가 이 수를 두자 프로기사들은 “곧바로 3-3에 들어갈 수도 있구나” 하며 흉내를 냈다. 커제 9단도 이번 대결의 제1국에서 알파고의 이 수법을 구사했다. 이것을 본 알파고 개발자 하사비스 박사는 세계 최고수가 알파고의 수법을 따라 두는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2도] 알파고가 보여준 창의적 발상의 백미는 중반 무렵 백1에 붙이고 백3으로 껴 붙인 수다. 아마 수많은 프로기사는 이 장면에서 이런 수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둔다면 그냥 백3에 두는 수나 다른 수를 고려할 것이다.[3도] 이어서 흑1에 단수하고 백2로 뚫었다. 흑3으로 빵따냄을 하자 백4로 두어 상변 흑진이 간단히 부서지고 말았다. 흑의 최대 자산인 상변의 집이 깨졌으니 백이 우세해진 건 당연하다. 이후 정상급 5인방은 머리를 짜내며 공격을 했으나 찬스를 잡지 못했다. 알파고가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 발상으로 우세를 확립한 바둑이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손익 판단’ 능력알파고의 뛰어난 능력을 또 하나 든다면 바로 ‘손익 판단’ 능력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누구나 예상된 시나리오를 놓고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의사결정에서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어려울 때 공격적 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지,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바둑에서 이런 손익 판단이 고수들에게도 어려운 문제가 된다.이런 경우 프로기사는 몇 가지 방법을 쓴다. 당대 최고수에게 물어보거나, 기존의 정석과 비교한다. 또는 그 방안을 쓰기 전과 후를 비교해 손익을 판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정책을 썼을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놓고 그 정책을 쓰기 전과 비교해 유리해졌는지, 불리해졌는지를 견주어보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을 쓰는 것은 그만큼 사안에 대한 손익 판단이 어려움을 반증한다.그런데 이러한 손익 판단에서 알파고는 특별하게 승리 가능성에 따라 평가를 한다. 예를 들어 세 가지 대안이 있다고 할 때 승리 가능성을 A는 60%, B는 45%, C는 55%와 같이 정량화된 수치로 산출한다.하지만 인간은 연산 능력에 한계가 있어 이것을 하기가 힘들다. 많은 데이터와 치밀한 수 읽기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려고 한다면 알파고 식으로 승리 가능성을 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과서에 없는 수를 둬라세계 최고수 커제를 울린 알파고의 비법을 벤치마킹해 보자. 그것은 창의적 발상과 계량적 손익 판단이다. 미래사회에서 창의적 발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교과서대로 달달 외운 지식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남이 생각하지 않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차별화된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며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창의적 발상이 나올까.알파고의 답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다. 사람들은 오랜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형성된 고정관념에 의해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관념이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둑에서 ‘빈삼각은 나쁜 모양이니 두지 마라’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빈삼각이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 ‘빈삼각을 둘 줄 알아야 한다’라는 격언도 있다. 빈삼각이 나쁘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면 빈삼각의 묘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항상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나 규칙이 타당한지를 검토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손익 판단에서는 알파고처럼 수치로 성공 가능성을 환산해보는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경영전략이나 상품의 성공 가능성을 ‘00%’식으로 표시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들을 뽑아 점수를 매겨야 할 것이다. 고객의 선호도, 상품의 효용, 수익성 등과 같은 요인의 점수를 뽑아봐야 한다. 단순히 유용한 상품이니 고객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세상의 수많은 상품은 이런 판단 하에 출시되지만 실제 결과는 예상과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을 수치화한 자료를 산출할 수 있다면 의사결정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