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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보스와 참모의 관계학(21) | 김종서와 단종] 모든 것을 혼자 하려는 참모는 위험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최고 실력자 김종서 제거되자 무방비가 된 단종 … 보스에 충성할 인재들로 보호장치 구축해야

촉한의 황제 유비는 자신의 수석참모인 제갈량을 두고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한 이 말은 보스와 참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물은 물고기 없이는 의미를 실현할 수 없듯이, 보스와 참모는 진정한 한 팀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 연재에선 한 팀을 이루는 바로 그 과정에 주목한다. 어떻게 보스를 선택하고 참모를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역사 속의 사례로 살펴본다.


▎세종시 장군면에 있는 김종서 장군의 묘.
1453년(단종 1년) 10월 10일 밤. 수양대군의 가노 임어을운이 내리친 철퇴에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金宗瑞, 1383~1453)가 쓰러졌다. 한밤중에 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며 찾아온 수양대군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이다. 김종서가 죽자 더 이상 수양대군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의정 황보인 등 반대편에 섰던 대신들이 모두 참살되었고 라이벌인 동생 안평대군은 귀양을 갔다가 사약을 받았다.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조카 단종 역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종서의 죽음을 시작으로 세종-문종-단종으로 이어지는 적통 승계의 질서가 붕괴되고 조선은 정변으로 권력을 탈취한 수양대군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다.

만약 이날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제거하지 못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김종서가 건재했다면 과연 수양대군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김종서 한 사람에게 모든 명운이 걸려 있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양상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김종서에게는 고명대신(顧命大臣, 임금이 죽을 때 뒷일을 부탁받은 신하)이라는 권위와 정당성, 현직 정승으로서의 권한, 조야에 두루 떨친 명성 등 능히 수양대군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이 그의 최측근이기도 했다. 수양대군이 “가장 간사하고 교활한 자로는 김종서 같은 자가 없다. 만일 저 자가 먼저 알게 되면 이 일은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그를 베고 나면 나머지는 평정하고 말 것도 없다”(단종1년 10월 10일)고 말하고 제일 먼저 김종서를 공격한 것, 그것도 김종서가 방심한 사이를 노려 피습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힘을 두려워해서다.

그런데 김종서만 죽이면 일이 쉬울 것이라는 수양대군의 말 속에서 우리는 김종서가 실패한 이유 또한 발견할 수가 있다. 김종서 외에는 수양대군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임금의 신하가 없다는 뜻이며, 임금을 보호할 수 있는 세력이나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김종서가 그 자체로서 든든한 보호막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왕을 보호하는 임무와 힘이 모두 그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음으로 해서 그가 쓰러지자 임금을 지켜줄 보호막도 동시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오만한 성격의 김종서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누구보다도 김종서 본인의 책임이 컸다. 그는 강직하지만 오만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자기 재주에 대한 자부심이 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깔보기도 했다. 예조판서 시절 ‘말이 광패하다고’ 탄핵을 받은 것도 그래서였다.(세종 26년 12월 18일) 그를 차기 재상감으로 염두에 두었던 황희가 엄하게 훈육하며, 오만하고 신중하지 못한 성격을 바로잡아보려 했지만 김종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함길도에서, 그리고 조정에서 그는 독선적이고 거만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등을 돌리게 하였다. 수양대군에게 기습을 허용한 것도 결국 자신의 능력을 자만해 방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종서의 큰 문제는 자신이 모든 업무를 관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린 임금의 후견인이 되어 줄 대왕대비나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장성한 숙부들이 호시탐탐 보위를 노리고 있는데, 동료 대신들은 무능해 보이고 믿음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간곡하게 어린 손자, 어린 아들을 부탁한 주군 세종과 문종을 생각해서라도 자신이 일일이 다 챙겨야 안심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한 사람에게 권한과 임무가 집중하면, 그리고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다 보면 위험 역시 함께 증가한다. 혹시라도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하면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공백이 생겨서 일 자체가 마비되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김종서가 쓰러지자 조정 내에 단종을 지켜줄 힘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건국 초기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 한 사람을 제거하자 반대세력이 일거에 무력화된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김종서가 평소에 혼자 모든 것을 떠맡으려 하지 않고 단종을 지켜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더라면, 예를 들어 자신이 없더라도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반군을 제압하고 임금을 보호할 수 있는 호위체제를 만들어놓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조정의 힘을 결집해서 왕권을 든든히 떠받치고 수양대군과 같이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종친들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역사는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참모 자신이 보호막 돼선 곤란

또한 이 과정에는 단종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 즉위 초반 단종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던 김종서보다도 수양대군에게 더 친근함을 표시했다. 김종서의 반대에도 명나라로 사신을 가는 것 등 수양대군이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었고, 수양대군이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눈감아주었다. 김종서는 어려운 원로대신이고 수양대군은 자신을 귀여워해 주던 삼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분명 오만하고 독선적인 김종서로선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역시 김종서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요소였다.

요컨대 갑작스러운 리더십 교체가 이루어져 후계 계승이 불안정할 때, 보스의 보호자 또는 후견인이 되어 주는 참모가 있다. 주로 조직 내에서 영향력이 크고 충분한 경륜을 가진 인물이 이 역할을 맡게 되는데, 전임 보스의 권력을 원활하게 계승하고 업무와 조직을 장악해 새 보스가 안착할 수 있도록 보좌한다. 그런데 이러한 참모는 현재의 보스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임 보스가 후계자를 위해 안배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새로운 보스와의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이러한 유형의 참모는 과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명분 아래 권한과 업무를 독점하고, 권력투쟁에서 보스를 지킨다며 독선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참모의 사사로운 욕심이 아니라 충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이는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들의 반감을 사서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반대파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만 사라지게 되면 조직 전체를 혼돈에 빠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보스의 보호막도 제거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보스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참모는 자신 자체가 보호막이 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더라도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는 보호 장치를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보스가 마음껏 뜻을 펼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고, 공동체와 보스에게 충성을 바칠 인재들로 진용을 갖추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보호자로서의 책무이다. 그렇게 되면 보스를 위협하는 요인들 역시 자연스레 사라지고 만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88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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