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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10) 횡행하는 엉터리 아이디어] 4차 산업혁명위원회? 녹색성장·창조경제 전철 밟나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com
유독 한국에서만 떠들석한 4차 산업혁명... 다양한 기술에 포괄적 개념 씌우며 본질보다 용어에 집착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디어”라고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말했다.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는 엉터리 아이디어가 활개를 친 결과였다. 그 엉터리 아이디어는 세계화, 세계 일류, 요소환원주의 등이었다. 틀린 아이디어가 횡행하는 현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제4차 산업혁명, 부동산 가격, 가계부채, 사내유보금, 신자유주의 등을 키워드로 한 오해와 공포가 우리의 에너지와 시일을 허비하게 하거나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843년 9월에 창간한 이유를 “도도히 전진하는 지성과, 우리의 진보를 가로막는 겁 많고 무가치한 무지와의 치열한 싸움에 참여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그와 같은 논전을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전인 2017년 2월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열린 ‘4차 산업 혁명, 새로운 성장의 활주로’ 토론회에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변화의 첫 번째 새 흐름은 4차 산업혁명이다. 기계에 지능이, 현실세계에 가상세계가 얹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미 피부로 느껴질 만큼 현실로 다가왔다.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 갖게 될 일자리 세 개 중 두 개는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일 것이란다. 4차 산업혁명의 전개 속도는 과거 변혁기의 선형적 속도와 달리 상상을 초월할 만큼 기하급수적이다.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 간 융합을 통해 개인뿐 아니라 경제, 기업,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한마디로 이 변화의 흐름은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태세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다보스 포럼 창시자 슈밥은 “우리는 아직도 새 혁명의 속도와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술회할 정도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책 [있는 자리 흩트리기]에서 인용한 문단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아이디어가 국내에 자리 잡고 확산한 사례 중 하나다. 곳곳에서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한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협회, 대학, 언론매체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일 부산시와 함께 개최한 ‘2017 부산 해양금융 컨벤션’에서 “금융당국은 선박펀드 등을 통해 해운사에 유동성 지원을 실시했고 앞으로도 점차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면서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조선·해운 관련 기술혁신형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같은 날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미숙련 일자리가 더욱 빠르게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글로벌 경제 및 금융의 도전 과제: 향후 10년의 조망’을 주제로 개최한 ‘2017년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성장과 더불어 그 혜택이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포용적 성장인데, 구체적으론 일자리 창출과 가계소득 증대가 주요 과제로 논의되고 있고 사회안전망 확충의 필요성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 4차 산업혁명을 다룬 책도 속속 출간됐다. 4차 산업혁명을 국내에 나온 책 제목으로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 4차 산업혁명의 충격
- 4차 산업혁명, 비즈니스 트렌드
- 빅데이터가 만드는 4차 산업혁명
-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의 미래
-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
- 4차 산업혁명, 앞으로 5년
- 제4의 물결이 온다: 4차 산업혁명, 부의 기회를 잡아라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 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 4차 산업혁명, 강력한 인간의 시대
- 제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한민국 미래교육보고서
-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 4차 산업혁명이 뒤바꾼 시장을 선점하라
- 블록체인 혁명: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거대한 기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4차 산업혁명이 한국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이자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강조하고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설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실행 과제로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고도화, 자율주행차 구현, 공공빅데이터 센터 설립 등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위원회 설립은 새 정부의 국정 과제를 수립하는 국정 기획자문위원회가 중심이 돼 논의하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지난 1일 ‘4차 산업혁명 창업국가 조성방안’을 주제로 부처 합동 간담회를 열었다. 이 합동 간담회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행정자치부, 중소기업청, 기획재정부가 참여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엉터리 아이디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아이디어가 적절한가.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번 회에서는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은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을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는 클라우스 슈밥의 책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 지난해 4월 나오면서 관심을 끌게 됐다. 슈밥은 “1760~1840년에 걸쳐 발생한 제1차 산업혁명은 철도 건설과 증기기관 발명을 바탕으로 기계에 의한 생산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기존 분석과 같다. 슈밥의 견해는 2차 산업혁명에서부터 기존 이론과 갈라진다. 그는 2차 산업혁명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전기와 생산 조립라인의 출현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또 3차 산업혁명은 1960년대 반도체와 매인프레임 컴퓨팅, 1970~80년대 PC, 1990년대 인터넷이 주도한 컴퓨터 혁명이자 디지털 혁명이었다고 규정한다. 이어 그는 4차 산업혁명은 21세기기와 함께 나타났으며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더 저렴하면서 작고 강력해진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이 물리적 기술, 디지털 기술, 생물학 기술이 융합되며 전개된다고 말한다. 물리적 기술로는 무인운송, 3D 프린팅, 로봇공학, 신소재 등이 개발 중이고, 디지털 기술로는 사물 인터넷, 블록체인, 주문형 경제 등이 활용·전개되고 있으며, 합성생물학, 개인맞춤 의료서비스, 유전자가위, 바이오프린팅 등 생물학 기술이 응용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과거 인류가 겪은 그 무엇과도 다르다”며 “규모와 속도, 범위를 고려하면 가히 역사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더스트리 4.0과 다른 점은: 독일은 이미 세계 최고인 제조업의 경쟁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 위해 2012년부터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사물 인터넷을 통해 생산기기와 생산품 간의 정보교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완전자동·최적화 생산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정책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모든 산업 설비와 부품이 각각의 인터넷주소(IP)를 갖고 무선인터넷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이 시스템이 구축된 공장을 지능형 공장이라고 부른다. 인더스트리 4.0에 필요한 분야는 센서, 공장자동화 로봇, 빅데이터 처리, 혁신 제조 공정, 물류, ICT 등이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은 스마트 공장의 도입을 통해 전 세게적으로 제조업의 가상 시스템과 물리적 시스템이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그러면 상품의 완전한 맞춤생산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운영모델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연해서 “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기와 시스템을 연결하고 스마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훨씬 넓은 범주까지 아우른다”며 “유전자 염기서열분석에서 나노기술, 재생가능에너지에서 퀀텀 컴퓨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거대한 약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이 모든 기술이 융합해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분야가 상호교류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종전의 그 어떤 혁명과도 궤를 달리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4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분야와 발견이 끊임없이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며 “디지털 제조와 생물학 분야의 합작이 실제로 성사가 됐다”고 전한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의) 신개발과 신기술은 하나의 공통된 특성이 존재한다”며 “디지털화와 ICT의 광범위한 힘을 활용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김진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는 최근 언론매체 기고에서 4차 산업혁명을 두고 한국이 유독 떠들썩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든 클라우스 슈밥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린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며 “4차 산업혁명이란 우리 언론에는 많이 등장하는 용어이지만 선진국에서는 쓰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호들갑은 출판에서도 확인된다. 아마존에서 ‘4차 산업혁명(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 제목에 들어간 책을 검색하면 슈밥의 책을 포함해 단 두 권만 나온다. 김 교수는 또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슈밥이 열거한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은 디지털 혁명의 심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본질보다 용어에 집착한다”며 “요즘의 변화를 어떤 용어로 서술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변화를 이끄는 기술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비판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을 벌이다가는 4차 산업혁명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같은 결과에 이를 공산이 크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가 실패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녹색성장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할 수 있는 비중이 너무 작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창조경제는 추진할 알맹이가 없는 아이디어였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종류가 다른 많은 과제를 한 조직이 끌고 가려 한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고 성과를 내기 어려운 아이디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설파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 아래 많은 신기술을 모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거대한 흐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그는 “신기술이 융합돼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수사적인 주장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은 겹치는 부분은 있지만, 해외에서 별개의 프로젝트로 추진되고 있고 그런 방식이 맞다. 별개의 프로젝트를 굳이 4차 산업혁명 위원회라는 큰 조직을 새로 꾸려 추진할 필요가 있을까. 이는 마치 축구와 야구 모두 구기운동이라는 이유로 축구·야구위원회를 새로 조직하는 것이나 비슷한 발상이 아닐까. 세계 주요 국가가 4차 산업혁명에 흥분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측정하지 못하면 개선하지 못하고 평가하지 못하면 추진하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씌워서 벌이는 일은 측정도 평가도 흐릿할 수밖에 없다.

1388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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